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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국민을 신명 나게 하는 대통령

중앙일보 2015.11.09 00:24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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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국민들의 어깨가 점점 처져 간다. 사는 것이 원래 고해(苦海)라 힘들지만 요즘 부쩍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신명 나는 민족’이다. 신명은 한국인의 대표적인 문화 유전자다. 그래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2015년이 두 달이 남은 지금 국민들은 신명 나지 않다.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온갖 욕심·질투·시기·각종 질병 등이 퍼져 평화로웠던 세상은 험악해졌지만 상자 안에 남은 희망으로 사람들은 힘들어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 희망마저도 없어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국민들로부터 월급을 받는 정치권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로 국민들을 분열시켜 놓고 있다. 비가 쏟아진 지난 7일 서울 도심에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찬반 집회와 기자회견이 잇따라 열렸다. 찬성하는 단체들은 “종북 세력의 역사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대한민국 보위 조치”라고 주장했고, 반대하는 단체들은 “종북 몰이와 민생 타령은 정부가 늘 써먹은 위기 탈출 속임수”라고 맞섰다. 우려되는 것은 2017년 국정화 교과서가 나오더라도 정권이 바뀌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역사가 반복될지 두고 봐야겠지만 먹고살기 바쁜 국민들은 자식·취업·노후 걱정 등으로 한숨만 나오고 있다.

 경제는 빨간 신호가 켜진 채 고장 나 버렸다. 기술자들이 고치려고 달려들었지만 실력이 부족한지 영 신통치 않다. 환자가 아파 죽겠다고 하는데 의사는 치료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격이다. 청년실업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얽히고설킨 일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보다 신명 나게 살고 싶어 한다. 과거 우리가 신명 났던 일을 더듬어보자.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새마을운동은 국민들을 신명 나게 했다. ‘잘살아보세’는 복잡한 이론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국민들은 열심히 일만 하면 더 이상 배를 곯지 않았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도 국민들을 ‘신명의 바다’에 빠뜨렸다. 국민들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도 서울광장에 모여 미친 듯이 응원했다. 그리고 꿈의 4강 신화를 이루었다.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인은 신명 나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낸 민족이었다.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든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다. 19세기 중반 미국의 팽창기에 유행한 이론으로, 미국은 북미 전역을 지배하고 개발할 신의 명령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팽창주의와 영토 약탈을 합리화했지만 남북전쟁이 가져온 혼란을 새 땅을 찾아 먼 서부로 이주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미국인들은 당시 ‘Go West’를 외치며 신명 나게 서부로 달려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다.

 새마을운동, 2002년 4강 신화는 한국인들의 추억 속에 간직해야 할 ‘신명 아이콘(Icon)’이다. 이제는 새로운 ‘신명 아이콘’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님, 국민들을 신명 나게 살게 해 주세요.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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