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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빈 1815, 유엔 2015

중앙일보 2015.11.09 00:19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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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정치외교학과 교수

1815년 10월. 20여 년을 끌던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유럽에 새로운 협력의 질서가 만들어졌다. 그 질서를 만들어낸 자리가 바로 빈 콩그레스(회의)였다. 100여 명이 넘는 각국 대표들이 협상의 진전은 없이 매일 밤 무도회만 열어 ‘춤추는 회의’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결국 그때 구축된 유럽의 협력 질서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100년 동안 유럽의 평화를 담보했다.

 이 새로운 질서의 핵심은 세력균형 원칙을 유지하는 데 있었다. 그 원칙 위에 나폴레옹 전쟁의 승전국인 영국·러시아·오스트리아·프러시아와 패전국이었던 프랑스 간에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 관리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름하여 ‘유럽협조 체제(Concert of Europe)’다. 이를 통해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촉발된 공화정과 왕정이라는 대립 구도는 보수 왕정질서의 복원으로 바뀌었다. 1815년 9월 러시아·오스트리아·프러시아 간에 체결된 신성동맹(Holy Alliance)에서 볼 수 있듯 ‘기독교적 가치’라는 공통분모를 활용해 유럽의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결의가 성립된 것이다.

 지난 10월 22~25일, 빈에서는 오스트리아 총리실과 미국의 추밀 재단이 공동 주관한 국제회의 ‘빈 콩그레스 200년’이 열렸다. ‘보다 안정된 세계질서의 원칙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달린 이 회의에는 미국·중국·러시아·유럽연합(EU) 등 주요 강대국은 물론 한국·일본·중동·아프리카의 정치지도자와 전문가 60여 명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필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회의의 주제는 강대국 협력체제의 구축, 난민 문제, 그리고 기술혁신과 경제사회적 불평등이었다. 이들 중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단연 강대국 관계와 안정된 세계질서의 원칙 모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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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1815년 빈 체제가 100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세력균형 원칙과 그 정당성에 대한 공감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현실을 다룬 이번 회의에서는 그 근본적인 원칙조차 합의하기가 쉽지 않았다.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들의 태도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암묵적 적대세력으로 간주하는 분위기 속에서 강대국 협조체계 구축은 쉽지 않아 보였고, 세력균형을 기본 원칙으로 지금의 국제질서를 설정해도 좋을지에 대해서조차 이견이 팽팽했다.

 앞서 말했듯 유럽 협조체제가 가능했던 것은 보수왕정과 기독교라는 가치를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1세기 강대국들 사이에 공동의 가치를 찾는 작업은 지극히 어려워 보였다. 미국과 EU 대표들은 민주주의, 인권, 법의 지배야말로 가치를 넘어선 보편적 이익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특히 이들은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과 중국의 난사군도 인공섬 건설 등을 예로 들 며 국제 규범이나 국제법적으로 수긍하기 힘든 반칙행위라고 날 선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과 EU 국가들이 유엔 헌장에 명시 돼 있는 원칙을 무시하고 자 신들에 대한 내정간섭을 일삼고 있다 는 게 그 골자였다. 미국과 유럽의 가치를 보편 가치로 환 원해 비서구 국가들에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서구 예외주의’의 오만을 표출하는 것 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박이었다. 더구나 미국이 국내 정치적 목적과 동맹 결집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희생양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그 게 전부가 아니다. 중간 세력 국가들 은 물론 심지어 약소국 들 마저도 강대국 협조체제 구상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오늘 날 과 같이 개별 국가의 주권 개념이 견고 한 세계화, 민주화 시대에 강대국들 이 국제질서 를 일방적으로 관리 하는 일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강대국 협의체의 현대판이 할 수 있는 유엔 안 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체제마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는데 별도의 강대국 협의체를 구축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냉소적 반응도 나왔다.

 그럼에도 남는 대안은 ‘팍스 유니버살리타스(Pax Universalitas)’, 즉 ‘유엔을 통한 세계 평화’ 뿐이었 다. 유엔 헌장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고 유엔 중심으로 협조체제를 마련하는 실마리를 찾자는 것이다. 기후변화, 대량살상무기, 저개발과 빈곤, 난민 문제 등 시급한 지구적 사안들에 대한 해결 노력은 모두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새로운 질서에 대한 공감대를 찾기는 불가능하다 해도 어쨌든 우리에게는 유엔이 있지 않으냐는 최소한의 희망이었다. 200년의 시간을 돌아 다시 제자리에 선 인류에게 미래에 대한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는 회의였 던 셈이다. 필자가 긴 시간 잠 못 들었던 이유다.

문정인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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