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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597> 화폐 도안

중앙일보 2015.11.09 00:10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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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민 기자

화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화폐 도안 속 모델 선정이나 고액권 도입 등 화폐와 관련한 모든 사안은 대중의 이목을 끌죠. 오늘날 화폐는 법적으로 가치가 부여된 돈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전통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시각 예술품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지갑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역사, 화폐에 얽힌 이야기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인도 지폐 ‘루피’ 15가지 언어로 금액 표시


프랑스 50프랑엔 생텍쥐페리와 어린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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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화폐 루피(Rupee)의 모든 앞면엔 마하트마 간디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사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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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은 산수풍경이나 생활상·국회의사당 등 다양한 도안이 사용됐으며 뒷면 왼쪽에 인도 헌법상 공용어인 15개 언어로 금액이 표시돼 있다. [사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화폐 도안의 역사와 배경=스웨덴 지폐는 세계 최초의 은행권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발행된 은행권들은 화폐 도안의 사회적·예술적 측면보다는 기능적 측면을 강조했다. 지폐 면에 발행자의 서명, 소지인에게 금이나 은화를 지급한다는 문언과 금액을 표시한 문자와 숫자만 표기됐다. 그러다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각 국에서 시각적인 조형성과 실용성이 강조된 현대적인 감각으로 화폐 도안을 바꾸기 시작했다. 디자인 선진국으로 꼽히는 이탈리아와, 헝가리, 벨기에, 노르웨이 등에선 화폐를 하나의 예술창작물로 인식해 화폐디자이너와 조각가의 사인을 화폐에 넣었다. 영국이나 네덜란드에선 화폐디자인에 대한 발행기관의 저작권을 나타내는 ⓒ마크를 넣기도 했다.

 유로화 도입 이전 유럽국가들의 화폐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항해술이 발달한 나라답게 탐험가를 앞면, 뒷면엔 배를 도안소재로 채택했다. 프랑스 프랑화에선 예술의 향기가 진하게 묻어났다. 작가 생텍쥐페리, 건축가 에펠 등 세계적 작가와 건축가들을 앞면 소재로 사용했다. 전쟁 영웅이기도 했던 생텍쥐페리는 1944년 공군기를 몰고 정찰 비행에 나섰다가 실종됐다. 프랑스 정부는 그의 순국 50년을 맞아 50프랑 지폐를 새로 만들고 그와 그의 소설 속 어린 왕자를 나란히 지폐에 넣었다. 스위스도 앞면 소재에 시인, 화가, 작곡가 등 문화예술인을 중심으로 도안을 만들었으며 독일도 통일 이후 발행된 지폐 앞면에 문학가와 수학자, 예술인 등을 채택했다. 네덜란드는 앞면 도안 소재로 인물상이 아닌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디자인을 사용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아메리카 지역 주요 국가들은 앞면 소재로 정치인을 사용하고 있으며 뒷면 소재로는 건축물(미국), 조류(캐나다), 조각물(멕시코)을 주요 모델로 삼고 있다.

 일본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정치가, 군인, 신사(神社) 등을 앞면 도안소재로 사용했다. 이후 1983년부터 발행된 새로운 지폐 시리즈엔 메이지(明治)시대 때 일본인들을 정신적으로 개화시키는 데 공헌한 교육 사상가와 문학가 등을 앞면 소재에 사용하고 있으며, 뒷면은 학이나 꿩 등 조류를 모델로 넣었다. 러시아는 구 소련에서 분리되기 이전 모든 권종에 레닌상을 사용했지만 93년부터 발행된 새 은행권엔 레닌상 대신 표트르대제 동상을 비롯한 각종 조각상을 앞면 도안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의 경우엔 각 나라에 서식하는 야생 동물이나 식물을 화폐도안으로 채택해 그 나라의 이미지를 부각시킴과 동시에 야생 동·식물의 보호와 관광자원 홍보를 도모하는 사례가 많다. 이처럼 화폐를 통해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면 화폐에 권위와 신뢰감을 주고 문화재는 그 나라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누굴까. 현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1926~현재)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바하마, 벨리즈, 피지 등 영연방국가와 영국령에 속하는 버뮤다, 지브롤터, 건지 등 20여 개 국 30여 종의 화폐에서 엘리자베스 2세를 만날 수 있다. 지난 1953년 직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2세는 검소하고 신중한 생활로 영국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생존 인물인 만큼 젊은 시절부터 할머니가 된 현재 모습에 이르는 다양한 얼굴이 화폐에 담겨 있다.


1962년 100환짜리 화폐에 모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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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화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현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 젊은 시절부터 할머니가 된 현재 모습까지 찾아볼 수 있다. [사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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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개척시대 때 탐험가들을 안내한 인디언 여인 새커거위아를 모델로 한 1달러 동전.



 ◆화폐 속 여성 인물들=전세계 230여 개 국가에서 1600여 종의 화폐가 통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 여성을 도안으로 그려넣은 화폐는 100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도 지난 2009년 6월 23일부터 조선시대 여류화가이자 현모양처의 표상인 신사임당 초상이 그려진 5만원권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부 여성단체들이 ‘가부장적 현모양처 이미지’라는 이유로 인물 선정에 반대하는 등 논란도 있었지만 여성 리더십이 중시되는 21세기를 맞아 신사임당은 결국 고액권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은행은 2007년 신사임당을 5만원권 인물로 선정한 배경에 대해 “우리 사회의 양성 평등의식 제고와 여성의 사회참여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문화 중시의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한편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신사임당은 우리나라 화폐 속 여성 중 최초일까. 아니다. 지난 1962년 한복 차림의 젊은 어머니와 색동 저고리를 입은 어린 아들의 다정한 모습인 ‘모자상’이 100환짜리 화폐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은행에서 발행하는 지폐엔 주로 대통령 초상이 사용됐는데 1960년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부가 무너지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이 들어간 화폐를 쓸 수 없게 됐다. 이로 인해 1960년부터 다음해까지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1000환권과 500환권이 새로 발행됐지만 100환권엔 마땅한 모델이 없다는 문제가 생겼다. 새로 들어선 군사 정부가 경제 개발을 장려하면서 화폐에도 저축을 홍보하는 이미지를 넣자는 의견이 나왔고, 예금 통장을 들고 환하게 웃는 어머니와 아들을 주인공으로 한 모자상 화폐가 탄생했다. 모자상은 조폐공사에 근무했던 여성과 그의 아들이 실제 모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자상의 수명은 짧았다. 1962년 6월 화폐 단위를 ‘환’에서 ‘원’으로 바꾸는 제3차 긴급 통화 조치가 실시되면서 모자상이 그려진 100환권은 발행 24일 만에 유통이 정지됐다. 모자상 화폐는 국내에서 가장 수명이 짧은 화폐라는 기록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해외 화폐 속 여성 인물은 누가 있을까. ‘광명의 천사’로 불리는 영국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은 영국 10파운드(발행연도 1975년)에 등장했다. 또 이스라엘 건국의 어머니인 골다 메이어(1898~1978)도 이스라엘 화폐 10쉐켈(발행연도 1985년)의 모델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여성 총리이며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고국에 돌아오면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오는 2020년부터는 미국 10달러 지폐에서도 여성 인물을 만날 수 있다. 지난 6월 미국 정부는 여성 참정권을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19조의 시행 100주년을 맞아 10달러 지폐에 여성을 넣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선호도 조사에선 미국 제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 엘리노어 루스벨트 여사(1884~1962)가 1위를 차지했다. 루스벨트 여사는 영부인 이전에 미국의 저명한 여성 사회운동가로 활약했다. 유통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미국 1달러짜리 동전에도 여성의 초상이 들어있다. 1979년 발행된 1달러 동전의 모델은 미국 최초의 여성참정권을 주창한 사회 운동가 수전 앤서니(1820~1906)였으며, 99년에는 서부 개척시대 탐험가들을 안내한 인디언 여인 새커거위아를 모델로 한 동전이 발행되기도 했다.

 북한에도 여성이 등장하는 화폐가 있다. 1992년 발행된 1원짜리엔 가극 ‘꽃 피는 처녀’의 주인공인 꽃분이가 등장하며, 중국도 소수 민족인 야오족(瑤族)과 둥족(<4F97>族) 소녀의 도안을 1980년 1위안짜리 에 넣기도 했다.


대만 지폐엔 야구선수·위성안테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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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발행된 대만 NT(New Taiwan) 달러의 앞면 도안으로 사용된 ‘환호하는 야구 선수들(500 NT달러·위쪽)’과 ‘위성안테나(2000NT달러)’.

 ◆세계의 화폐 이야기=최근 다양한 형태의 전자화폐가 개발·보급되면서 일각에선 머지않아 전자화폐가 지폐나 주화와 같은 실물화폐를 대체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따라 실물화폐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각국 화폐 발행기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 대만의 경우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화폐 도안과 규격을 바꾸는 등 실물화폐를 대폭 보강하며 이를 통한 국민의식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대만은 현재 100·200·500·1000·2000 NT(New Taiwan) 달러 등 5종류의 지폐를 발행한다. 이 가운데 2000년 이후 새로 발행된 500과 1000·2000 NT달러 지폐 앞면 도안을 장제스(蔣介石) 전 총통 초상에서 각각 ‘환호하는 야구 선수들’의 모습과 ‘기초과학교육중인 아이들’·‘위성안테나’ 등으로 대체했다. 미래를 꿈꾸는 대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일반 대중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인도의 화폐인 루피(Rupee)의 특징은 언어다. 무려 15가지의 언어로 금액이 표시된다. 인도에선 힌디어, 영어, 벵골어 등 공식적으로 인정된 공용어만 15가지이고 지방별 고유 사투리 등 알려진 언어를 합치면 1600여 종에 달한다. 이처럼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국민이 지폐의 액면 금액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뒷면 왼쪽에 헌법상 공용어인 15개 언어로 금액을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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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유로화의 등장으로 독일의 마르크화, 프랑스의 프랑화, 이탈리아 리라화 등 유럽연합(EU) 가입국들이 독자적으로 사용하던 화폐는 역사의 유물로 남게 됐다. 단 영국과 스웨덴, 덴마크 등 10개국은 독자적으로 계속 자국 화폐를 사용키로 했다. 유로화의 주 도안소재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유럽 건축문화 변천과정을 상징하는 ‘7대 건축문화양식’으로, ‘다리’와 ‘문’·‘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안은 현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조형물이지만 그리스 로마양식부터 포스트모던한 현대 건축양식까지 건축의 흐름을 보여준다. 인류문화의 진화와 축적을 묘사함과 동시에 통합의 의미까지 담은 것이다. 다리는 유럽을 연결하고, 문과 창은 접근성과 투명성을 뜻해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솔직하게 공개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미국 달러화의 특징은 통일된 이미지다. 대부분의 국가에선 지폐 식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액면에 따라 지폐의 색상이나 크기를 달리하고 있지만 미국 달러는 모두 동일한 색상과 동일한 규격을 채택하고 있다. 앞면 도안은 1대 워싱턴(1달러)·16대 링컨(5달러)·7대 잭슨(20달러)·18대 그랜트(50달러) 등 전직 대통령과 초대 재무장관인 해밀턴(10달러), 미국 독립선언문 초안을 만든 프랭클린(100달러)의 모습을 담아 모델을 정치가로 통일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자료: 한국은행
참고문헌: 『세계 주요국의 화폐』(2013)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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