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리하게 ‘퍼스트 무버’ 되느니 ‘라스트 무버’ 장점 노려라

중앙선데이 2015.11.08 01:21 452호 20면 지면보기

푸마는 인도에서 운동화 판매에 주력한 나이키·아디다스와 달리 힙합 스타일을 좋아하는 젊은 층의 감성을 파고들어 의류·액세서리 등 생활 속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1 패션감각이 뛰어난 젊은 층을 모델로 내세운 푸마 광고.

2 푸마가 인도에서 문화 마케팅으로 추진한 인디 밴드 후원 프로젝트 ‘Puma Loves Vinyl’의 한 장면.



채용 시즌을 맞아 수많은 지원자들이 ‘나’를 파는 경쟁을 치르고 있다. 언변이 좋고 활발한 지원자가 유쾌한 첫인상으로 합격할 확률이 높지만 그 가치가 항상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외향적인 사람은 남의 말을 경청하거나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일할 팀원으로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오히려 남에게 폐 끼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더 나은 성과를 내곤 한다.


[마켓&마케팅] -21- 내향적 마케팅

아인슈타인, 워렌 버핏, 마크 저커버그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집에서 혼자 지내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외향성이 선호되는 사회에서 과소평가되고 있는 내향성에 주목하고 그 잠재력을 설파한 수전 케인의 저서 ‘콰이어트(Quiet)’가 2012년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바 있다. 성공한 리더가 공유하는 내향성은 소란스러운 마케팅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오늘날 브랜드가 지녀야 할 품성이기도 하다.

3 라이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Puma Social Club’



내향적인 사람은 행동에 앞서 충분히 생각한다. 위험요소가 있으면 과감하게 결정하기보다 꼼꼼하게 상황을 파악한다. 판단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대신 신중하고 안전한 선택을 해서 실패 확률이 줄어든다.



빨리 결정하고 먼저 나서는 기업은 시장을 선점하고 상징적인 이미지를 얻는 이점을 누리지만 성공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의 텔리스 교수는 선발기업(first mover)이 10년 이내에 실패할 확률이 47%인데 반해 후발업체의 실패율은 8% 수준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선발주자의 실패 원인으로는 시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미숙한 전략으로 달려든 성급함이 꼽힌다. 또 소비자들이 처음 접하는 상품을 홍보하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한데, 초기에 폭발적인 수요가 형성되지 않는 한 특별한 이점을 누리기 어렵다.



신중하게 접근하는 기업은 시장 선점의 기회를 놓칠지라도 완성도 높은 계획으로 역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시장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선발주자들의 시행착오를 학습하며 최적의 전략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발 브랜드는 제품 카테고리를 새롭게 정의해 경쟁의 룰을 재설계하는 기회도 가지게 된다.



푸마, 느린 공략으로 인도서 대성공 스포츠 브랜드 푸마(Puma)는 2006년 인도시장에 진출했다. 나이키보다 4년, 아디다스보다는 무려 11년이 늦은 시작이었다. 선발업체들이 기능성 스포츠용품 시장을 집중 공략한 것과 달리 푸마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 잡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12년 업계 1위 아디다스가 84억 루피의 매출을 올릴 때 푸마의 매출은 52억 루피에 머물렀다. 푸마의 마케팅 담당자는 두 가지 대안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대대적인 할인으로 빠른 확장을 꾀할 것인가, 느리더라도 애초의 전략을 유지할 것인가.”



푸마는 후자를 택했다. 패션과 문화적 감성을 추구하는 인도 젊은이들이 증가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년 인도 대도시에서 공연을 개최하고 인디 밴드의 LP 음반 제작을 후원하는 ‘Puma Loves Vinyl’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벵갈루루에 라이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Puma Social Club’을 오픈했다. 제품 가치를 호소하는 전통적 마케팅이 아닌 문화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인도 젊은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은밀한 방식을 택한 것이다.



매장 확장도 신중하게 판단했다. 유통시장이 포화상태라고 판단한 푸마는 단지 수를 늘리기 위한 매장 오픈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인도에서 아디다스가 750개, 나이키가 3000개 이상의 판매처와 거래하는 데 반해 푸마의 매장은 430여 개 정도다. 최근 3년간 경쟁 기업들은 수익성이 악화돼 수많은 매장을 철수시켰지만 푸마는 단 6개를 정리하며 실리를 챙겼다.



2014년 푸마는 인도에서 매출 76억6000만 루피로 업계 1위를 차지했다. 아디다스(71억9000만 루피), 나이키(62억4000만 루피)를 제쳤을 뿐 아니라 토털패션 업체 베네통(59억4000만 루피), 자라(58억 루피)를 크게 앞질렀다. 또 운동화 판매가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쟁 브랜드와 달리 신발 52%, 의류 38%, 액세서리 10%의 매출 구성을 이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면모를 갖췄다. 지난 7월에는 뉴욕의 아티스트 바쉬티 콜라(Vashtie Kola)와 함께 인도에서 영감을 얻은 패션 라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선발 브랜드들이 공격적인 확장으로 성장의 한계에 다다르는 동안 푸마는 침착하게 시장을 관찰하고 기다리면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는 새로운 분야를 정립했다. 최후 진입자(last mover)라는 핸디캡을 오히려 강점으로 전환시킨 현명한 판단이었다.

4 스위스 기업 네슬레가 반감 고객 관리를 위해 본사에 설치한 ‘디지털 촉진팀’.

5 광고 건너뛰기 버튼을 누르지 않도록 재치있는 멘트를 곁들인 LG유플러스 광고의 한 장면. 6 미국 패션기업 아메리칸 어패럴이 SNS에 잘못 올려 비난 받은 챌린저호 폭발 사진.



‘내향적 마케팅’이 반감고객에게 민감 말수가 적고 할 말이 있을 때만 나서는 성향도 브랜드가 지녀야 할 덕목이다. 감성적인 젊은 고객들이 기업과의 대화를 즐길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신이 원하는 시공간에서 소비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주변에 어슬렁거리며 간섭하는 브랜드는 불쾌한 존재일 뿐이다.



네이버·유튜브같은 인터넷 매체는 5초, 15초 등 일정 시간이 지나면 광고를 중단하고 콘텐트를 바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건너뛰기’ 기능을 도입했다. 소비자에게 광고를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준 것이다. 건너뛰기를 당하지 않기 위한 기업의 노력도 처절하다. LG유플러스 광고에서는 모델이 “건너뛰기를 누르는 손은 나쁜 손”, “내가 이거 설명하려고 몇 시간 촬영한 줄 알아요?”라며 어르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과 쉽게 대화할 수 있지만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도 크다. 미국의 패션기업 아메리칸 어패럴은 2014년 독립기념일을 맞아 멋진 불꽃놀이 사진 한 장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가 소비자들의 공분을 샀다. 사진 속 장면이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고의 비극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사고가 발생한 후에 태어나 제대로 알지 못한 젊은 직원의 실수였다”고 해명했지만,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와 고객과의 소통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에 대한 비난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유쾌한 분위기를 즐기는 외향적인 사람에 비해 내성적인 사람은 부정적 상황에 민감하다. 누군가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느끼면 신경이 쓰이고 걱정된다. 기업도 칭찬보다 불만과 반감에 집중해야 한다.



네슬레는 2012년 소셜미디어 전략의 목표를 ‘팬 고객’이 아닌 ‘반감고객’ 관리로 전환하며 제품·기업에 대한 불만을 집중적으로 감지하는 디지털촉진팀(Digital Acceleration Team)을 신설했다. 스위스 본사에 위치한 이 팀은 전 세계 650여 개의 브랜드 SNS에 올라오는 콘텐트를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고객들의 메시지에서 일정 기준 이상의 부정적 표현이 발견되면 ‘코드 레드(Code Red)’가 작동된다. 최근에는 한 파키스탄 소비자가 “네슬레가 파키스탄에서 생산하는 생수는 정작 가난한 지역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글을 올리자, CEO 피터 브라벡이 2시간이 채 되기 전 “우리는 파키스탄 공장의 지역주민 1만 명 이상이 마실 수 있는 생수 공급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직접 응답하기도 했다.



공격적 마케팅보다 자연스런 호평 중요 자기주장에 집착하지 않고 실수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도 필요하다. 세계 최고의 엘리트 군단 구글은 반대되는 의견이나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줄 아는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을 채용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최근 새 CEO로 지명된 순다르 피차이도 나서지 않는 겸손한 성격으로 전형적인 리더 스타일은 아니라고 한다. 막강한 파워를 지닌 브랜드일수록 나르시시즘을 주의하고 직원 한 명 한 명의 몸에 밴 겸허함이 상품과 서비스를 통해 우러나오도록 해야 한다.



미디어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신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냉정하고 실리적인 소비자들이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이들은 기업의 메시지보다 전문가나 지인의 평가를 더 신뢰한다. 마케팅 활동에 대한 기업 내부의 반응도 긍정적이지 않다. 전 세계 600개 기업의 CEO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0%가 마케팅을 신뢰하지 않고 기업 가치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67%는 마케팅이 창조적 측면만 강조하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예술적이고 화려한 광고만 양산해 원칙을 잃어가고 있다고 답했다.



묵묵히 자기 일에 집중하면서도 남의 불편함에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다른 의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경쟁 사회로 치닫기 전 점잖음과 공손함을 미덕으로 여겼던 한국인의 품행이기도 하다. 공격적인 마케팅보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호평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자기 자랑은 내려놓고 고객이 먼저 제품과 브랜드를 발견하고 찾아오도록 하는 내향적 마케팅을 고려할 때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schoi@dongduk.ac.kr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