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담대한 결정을 이끌어낸 사람은 바로 천진기(53) 국립민속박물관장이다. 1988년 일용직으로 입사해 2011년 관장직에 오른 천 관장의 신념은 확고했다. “보통 박물관에 오면 관람객이 볼 수 있는 전시품은 소장품의 5% 수준입니다. 보여주고 싶은 유물은 많지만 시공간적 제약 때문에 전부 전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박물관이 갖고 있는 데이터를 전체 공개하면 얘기가 달라지죠. 모든 국민이 언제든 자유롭게 볼 수 있으니까요.” 안동대 민속학과 출신으로 연구하며 느껴온, 신뢰도 있는 자료에 대한 갈증도 한 몫 했다.
소장품 이미지 공개한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천 관장은 “우리는 개인정보 및 저작권 침해가 우려되는 1%만 제외하고 모두 내놓았으니 한발 더 앞서간 셈”이라며 “이는 최초이자 최대 규모”라고 말했다.
“이제 박물관이 소장품 몇 점을 더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그걸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박물관의 미래가 달라지는 시대거든요. 해외 박물관의 경우 비영리 사용에 한하고 사전 허락도 받아야 하지만 우리는 상업적 이용도 전격 허용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연구와 활용의 길이 열릴 거라 생각했거든요. 중앙일보와 맺은 사진자료 교차 사용과 홍보 등에 대한 상호협력 협약(MOU)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는 원 소스를 제공하고 언론사는 이를 바탕으로 ‘아워 히스토리(Our History)’라는 콘텐트를 제작하게 됐으니 서로 윈윈하는 셈이죠.”
사실 여기까지 오는 덴 적잖은 뚝심이 필요했다. 1966년 개관한 박물관의 초기 자료 중에는 정보가 부족한 것도 있고 저화질 흑백 사진도 섞여 있다. 그렇기에 담당 연구관들은 “전부 공개하는 것은 무리”라고 막기도 했다.
하지만 천 관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고민을 많이 했죠. 섣불리 서비스를 시작한 뒤에 질타가 뒤따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걸 두려워하기 보다는 우선 공개하고 추후 사용자들이 원하는 방안을 보완해가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옳다고 봤어요. 어차피 보완작업을 해야 하는데 여러 사람의 피드백이 있으면 좋잖아요.”
타인능해(他人能解). 전남 구례 운조루의 쌀독에 얽힌 일화는 그의 철학이 된 듯하다. ‘굶주린 이는 누구나 가져갈 수 있다’는 배움이 ‘필요한 이는 누구나 가져갈 수 있다’로 현실화된 걸 보면 말이다. 이번 작업이 마무리되면 수장고를 오브제 삼아 개방형 수장고 전시를 하고 싶다는 걸 보니 그의 나눔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