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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7만 점 누구나 활용케 빗장 풀어 디지털 시대 맞춰 박물관도 변신

중앙선데이 2015.11.08 00:42 452호 6면 지면보기
국립민속박물관의 문이 활짝 열렸다. 박물관 등록 소장품 총 6만 8934건 중 99%에 달하는 6만 8033건의 이미지를 4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것이다. 자료마당/박물관 소장품/소장품 검색 메뉴를 통해 검색하면 1000만 화소 이상의 고해상도 이미지는 물론 유물의 명칭과 크기 등 부가 설명을 함께 볼 수 있다. 별도의 로그인 없이 저장하거나 활용할 수 있을 뿐더러 사용 목적에도 제한이 없다. 누구나 자유롭게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니 가히 혁명적이다. 조건은 단 하나, 출처만 표기하면 된다.



이 담대한 결정을 이끌어낸 사람은 바로 천진기(53) 국립민속박물관장이다. 1988년 일용직으로 입사해 2011년 관장직에 오른 천 관장의 신념은 확고했다. “보통 박물관에 오면 관람객이 볼 수 있는 전시품은 소장품의 5% 수준입니다. 보여주고 싶은 유물은 많지만 시공간적 제약 때문에 전부 전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박물관이 갖고 있는 데이터를 전체 공개하면 얘기가 달라지죠. 모든 국민이 언제든 자유롭게 볼 수 있으니까요.” 안동대 민속학과 출신으로 연구하며 느껴온, 신뢰도 있는 자료에 대한 갈증도 한 몫 했다.


소장품 이미지 공개한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박물관의 문호가 넓어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은 올 초 프리어ㆍ새클리 갤러리의 아시아 유물 및 작품 4만여 점에 대한 이미지를 공개했다. 지난해엔 뉴욕 자연사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소장품 40만여 점, 바티칸박물관이 8만 점을 온라인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줄리언 레이비 박물관장은 “우리는 지금 디지털 시대의 정점에 살고 있다”며 “시대에 맞게 박물관도 변화하는 것”이라며 이를 ‘예술의 민주화’라고 표현했다.



천 관장은 “우리는 개인정보 및 저작권 침해가 우려되는 1%만 제외하고 모두 내놓았으니 한발 더 앞서간 셈”이라며 “이는 최초이자 최대 규모”라고 말했다.



“이제 박물관이 소장품 몇 점을 더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그걸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박물관의 미래가 달라지는 시대거든요. 해외 박물관의 경우 비영리 사용에 한하고 사전 허락도 받아야 하지만 우리는 상업적 이용도 전격 허용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연구와 활용의 길이 열릴 거라 생각했거든요. 중앙일보와 맺은 사진자료 교차 사용과 홍보 등에 대한 상호협력 협약(MOU)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는 원 소스를 제공하고 언론사는 이를 바탕으로 ‘아워 히스토리(Our History)’라는 콘텐트를 제작하게 됐으니 서로 윈윈하는 셈이죠.”



사실 여기까지 오는 덴 적잖은 뚝심이 필요했다. 1966년 개관한 박물관의 초기 자료 중에는 정보가 부족한 것도 있고 저화질 흑백 사진도 섞여 있다. 그렇기에 담당 연구관들은 “전부 공개하는 것은 무리”라고 막기도 했다.



하지만 천 관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고민을 많이 했죠. 섣불리 서비스를 시작한 뒤에 질타가 뒤따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걸 두려워하기 보다는 우선 공개하고 추후 사용자들이 원하는 방안을 보완해가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옳다고 봤어요. 어차피 보완작업을 해야 하는데 여러 사람의 피드백이 있으면 좋잖아요.”



타인능해(他人能解). 전남 구례 운조루의 쌀독에 얽힌 일화는 그의 철학이 된 듯하다. ‘굶주린 이는 누구나 가져갈 수 있다’는 배움이 ‘필요한 이는 누구나 가져갈 수 있다’로 현실화된 걸 보면 말이다. 이번 작업이 마무리되면 수장고를 오브제 삼아 개방형 수장고 전시를 하고 싶다는 걸 보니 그의 나눔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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