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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 첫 정상회담 싱가포르 현지 르포] 주석·총통 계급장 떼고 '시·마회담' 만찬은 더치페이

중앙일보 2015.11.07 01:51 종합 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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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둘째) 부부와 토니 탄 싱가포르 대통령(왼쪽 셋째) 부부가 6일 싱가포르 이스타나 대통령궁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마잉주 대만 총통은 7일 양안 회담을 위해 하루 일정으로 싱가포르를 방문한다. [싱가포르 AP=뉴시스]


6일 오후 8시 싱가포르 중심가 오처드 로드의 샹그릴라호텔. 임시 프레스센터가 차려진 4층 회의실 앞에 장사진이 벌어졌다. 이튿날 열릴 사상 첫 양안 정상회담 취재 등록을 하려는 세계 언론기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다.

“둘 만남 자체가 큰 의의”
서로 ‘선생’으로 부르기로
“베이징, 대만 총통 선거에
초특급 선거운동원 투입”
내외신 기자 수백 명 장사진


 내외신 기자 수백 명이 객실에 투숙했고 로비에는 TV 촬영 카메라 30여 대가 늘어서 하루 전부터 자리 선점 경쟁을 펼쳤다. 평소엔 없던 검색대도 설치됐다. 중국 본토에서 온 기자들과 대만 기자들이 수시로 명함을 주고받는 이색 풍경이 연출됐다.

 이번 회담은 최대한 양측이 동등한 입장에 서는 모양새를 갖췄다. 회담 후 이뤄지는 만찬비용을 반반씩 부담하기로 한 것이 좋은 예다. 국기를 게양하지 않고 배지를 달지 않기로 했고, 서로 ‘주석’ ‘총통’과 같은 공식 호칭 대신에 ‘선생’이라 부르기로 했다. 중국어에서 ‘선생’은 영어의 ‘미스터’와 같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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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이래 양안 관계는 꾸준히 개선돼 왔다. 도중에 대만 독립을 내세운 민진당 집권으로 굴곡을 겪었지만 2008년 마잉주 총통 집권 이후엔 경제·사회·문화 전반의 교류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양안 간 인적 교류는 한 해 500만 명을 훌쩍 넘었고 중국에 상주하는 대만인은 200만 명에 이른다. 일상생활에선 분단을 실감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은 건 이런 현실에 걸맞은 정치적 관계 설정이다. 양안 정상이 만나지 않고서는 풀 수 없는 숙제다.

 하지만 7일 회담에서 양안 미래에 대한 합의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긴 힘들다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한다. 양안 교류의 진전과 함께 경제적으로 대만은 중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만의 무역 총량 가운데 40%는 중국과의 사이에서 이뤄진다. 급속한 통일을 추진하는 등의 현상 변경을 서두르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중국의 대만 전략이다. 정융녠(鄭永年)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연구소 소장은 “7일 회담은 대륙과 대만의 지도자가 처음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는 것 자체에 큰 의의가 있지만 구체적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신 전격적인 회담 성사를 대만 총통 선거와 연관 짓는 시각이 나온다. 현재 선거 판도로는 야당인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로의 정권 교체가 이뤄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급격히 대만 독립을 추진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중국과 거리를 두는 노선임에 틀림없는 민진당의 집권은 중국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시나리오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선거를 두 달 남긴 시점에 잔여 임기 7개월에 불과한 마 총통과의 회담을 선택했다. 선거 판세에 최대한의 파장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자오완이 연합조보 칼럼니스트는 “베이징은 (내년 1월) 대만 총통 선거에 초특급 선거운동원으로 시 주석을 투입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선거 판세가 시 주석의 의도대로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지난 8년간 국민당의 지나친 친중국 노선에 대한 피로감과 견제 의식이 유권자 사이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대만 일간지 왕보의 정치담당 기자는 “대만인들 사이에선 중국과 더 이상 가까워지는 건 곤란하다는 경향이 있지만 경제 상황을 감안해 관계가 후퇴하기를 바라지도 않는 현상 유지 지향성이 강해 회담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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