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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위치 알리고 입국·정착 돕는 앱까지 … 난민 문제 해결에 팔걷은 개발자들

중앙일보 2015.11.07 01:13 종합 17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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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 펀딩 서비스 킥스타터의 난민 모금 페이지. 킥스타터는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지난 10월 6일 시리아 난민을 돕기 위한 모금을 시작했다. [킥스타터·UNHCR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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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UNHCR)가 2012년 만든 ‘난민의 삶’ 앱. [킥스타터·UNHCR 캡처]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테크퓨지(Techfugees)들이 나섰다. 기술(Technology)과 난민(Refugee)의 합성어인 테크퓨지는 난민 문제를 풀려고 나선 개발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스마트폰 앱 같은 기술을 통해 난민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난민들을 연결하고 있다. 최근 네팔 대지진 등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데 활약했던 기술자들이 이젠 난민 문제에 팔을 걷어붙였다.

[세계 속으로] IT 전사들 난민 구제 나서
언어·의료·구직 등 다양한 정보 제공
헤어진 가족 찾아주는 웹 사이트도
국제기구·개인·난민 출신들 동참
영국 등 세계 각국서 아이디어 모아
소셜펀딩 통해 구호기금도 모금
“난민들 어려움 덜어주는 데 기여”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은 소통(communication)도 구호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권협약 19조에 따르면 소통은 인간의 권리로 의식주 못지않게 중요하다. 자신이 어디에 있고,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난민들에겐 생명줄과 같다. 이 지점에서 테크퓨지가 역할을 한다.

 지난 10월 1~2일 영국 런던에서 정보기술 관련 개발자와 비정부기구(NGO) 관계자 등 300여 명이 모여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아이디어를 모았다. 이들은 지중해에서 배가 난파돼 익사하는 난민을 막기 위한 지리정보 제공 기술과 이민 시스템 등 난민을 돕기 위한 기술 개발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테크퓨지들은 프랑스·이탈리아 등에서 회의를 열고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런던 행사에 참여했던 왓스리워드닷컴(What3word.com)의 위치 기반 지도 기술은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앱은 자신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표시하고 가장 쉬운 세 단어(SOS)로 지도 위에 글을 남길 수 있다. 영어를 몰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설립된 비영리단체 레퓨지유나이트(refunite.org)는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헤어진 가족들을 찾아주는 웹 서비스다. 이 단체는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고 잃어버린 이들을 찾을 수 있는 웹을 만들었다. 미국 공영방송 PBS에 따르면 이 사이트를 통해 1500명 이상이 가족을 찾았고, 매달 100명가량이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다. 스마트폰을 포함한 휴대전화를 모아서 난민을 돕는 지사이클(GeeCycle.org)이라는 사이트도 있다. 이 사이트는 기부를 받은 휴대전화에 난민용 앱과 비자 절차를 알려주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설치한 뒤 난민에게 휴대전화를 전달한다.

 개인도 테크퓨지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헝가리의 한 커플은 인포에이드(InfoAid)라는 앱을 만들었다. 국경 통과 방법 등을 여러 언어로 제공하는 앱이다. 헝가리 정부가 난민 유입을 막으려고 국경을 폐쇄한 반면 헝가리 사람들은 난민을 돕고 있다. 독일에선 알렉산더 주퍼만이 독일어를 온라인으로 수강할 수 있는 난민 앱을 출시했다. 브라질에서도 5명의 학생들이 모여 난민들이 보금자리와 구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앱을 만들었다.

 난민 출신이 난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 4년 전 시리아에서 탈출해 터키에 정착한 난민 모자헤드 아킬은 자신이 겪은 정착의 어려움을 담아 ‘게르베트나’(아랍어로 우리의 외로움이란 뜻)라는 앱을 만들었다. 아랍어로 만들어진 앱은 여행안내서인 론리 플래닛처럼 터키 입국부터 거주지 마련법, 취업 요령 등이 담겨 있다. 독일 난민 캠프의 한 난민이 만든 ‘베를린 도착하기’는 베를린의 난민 지원 정보를 담은 온라인 지도를 만들었다.

 국제기구도 난민 보호를 위해 기술을 활용한다. UNHCR이 만든 ‘난민의 삶’ 앱은 난민으로서 삶을 보여주는 일종의 역할 게임이다. 난민 8명의 삶을 가상으로 따라가며 전쟁과 박해, 테러로 인해 난민이 된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리아 난민 캠프를 촬영한 가상현실(VR) 영상도 있다. VR 헬멧을 쓰면 자신이 난민 캠프에 온 것처럼 생생한 3D 영상을 체험할 수 있다.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테크퓨지들의 아이디어는 직관적이다. 난민촌에 와이파이가 연결되도록 하고, 난민들이 e러닝을 통해 해당국 언어를 배우게 하며, 스마트폰으로 난민으로 인정받는 서류를 제출할 수 있게 하는 것 등이다. 근처에 난민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의사가 있는 병원을 안내하고, 난민과 일자리를 이어 줘 난민이 정착해 자립할 수 있는 기술적 노하우를 준다. 이들은 사이트를 통해 난민들이 잃어버린 가족을 찾을 수 있게 하고, 지중해에서 표류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런 움직임이 난민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난민이 발생하는 시리아나 사하라 사막 주변 아프리카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난민 발생을 막을 수 없다. 소셜크라우드펀딩은 목표액의 10%(4000만 달러)를 넘었을 뿐이고 국가들이 설립한 장벽을 테크퓨지들이 허물 수도 없다. 미국 시사 종합지 애틀랜틱은 “난민들이 텐트나 비누 아이콘을 클릭한다고 물건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테크퓨지 조직화에 앞장선 테크크런치의 공동 설립자 마이크 부처는 “우리도 기술이 난민 문제를 해결할 마법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지금은 2015년이고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잃어버린 가족을 찾도록 도와주고 인권 침해를 고발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이 난민을 구원하진 못하지만 난민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S BOX] 구글·애플은 플랫폼 제공

세계적 IT 기업들은 기술로 난민을 구하는 데 동참한다. 다수의 소액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펀딩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올해 난민 구호기금으로 74억 달러(약 8조4200억원)를 내놓기로 했지만 약속했던 지원에 비해선 40억 달러(4조5500억원)가 부족하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10월 초 크라우드펀딩 대표 기업인 킥스타터와 트위터 등에 난민 지원 모금을 요청했다. 얀시 스트리클러 킥스타터 최고경영자(CEO)는 “창의적 프로젝트를 위한 모금 활동에 주력했지만 미 정부가 연락했을 때 난민 프로젝트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킥스타터가 프로젝트를 위해 모금한 가장 큰 금액은 2000만 달러(227억원)였지만 난민 모금은 이미 4000만 달러(455억원)를 넘어섰다.

 애플·구글 등은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구글은 난민을 돕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기존 개발 소스들을 공개해 개인 개발자들이 난민을 돕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빅데이터도 활용된다. 구글은 크리시스인포허브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난민이 묵을 수 있는 그리스의 임시 숙소, 의료 서비스, 교통 수단 정보를 제공한다. 애플도 앱스토어에 난민 지원 광고를 배치하고 사용자들이 기부할 수 있도록 했다. 페이스북 창업주 마크 저커버그는 “연결성이야말로 난민을 도울 수 있는 최고의 무기”라며 유엔이 운영하는 난민 캠프에 인터넷 망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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