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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다양한 흙수저론 … 버티면 도자기 된다는 ‘뜨거운 불속 수저’ 만화까지

중앙일보 2015.11.07 01:07 종합 20면 지면보기
인터넷에 ‘흙수저 빙고 게임’이 나온 뒤 일약 수저 계급이 화제가 됐다. 가로·세로 다섯 칸의 생활지표를 체크해서 한 줄이 완성되면 흙수저가 된다. 흙수저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나뉜 수저 계급의 최하 계급이다. 최근에는 새로운 버전으로 기름수저, 놋수저, 플라스틱 수저 등 다양한 버전이 만들어졌지만, 어쨌거나 이 수저 게임은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데 당장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스물다섯 칸의 게임에 적힌 내용은 ‘집에 욕조가 없다’ ‘집에 비데가 없다’ ‘집에 곰팡이 핀 곳이 있다’ 등 가계경제 수준을 가늠해볼 만한 항목들이다. 이 게임은 단순히 자신의 집안 경제 사정이 어렵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빈부 차이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사다리가 사라지고 고착화된 현실 사회의 좌절감을 드러내는 데 주로 인용된다.

 수저 계급론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는 영국 속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컴퓨터 게임 경험 때문에 무엇이든 등급을 매기는 데 익숙해진 네티즌들이 금수저 이상으로 다이아몬드 수저, 반물질 수저까지 만들어내고 아래쪽으로는 똥 수저, 지옥불 수저까지 만들어내는 식으로 번져 가고 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보건복지부의 복지 지원 기준이나 재산 금액을 들어 이를 구분하기도 하고 자신이 어느 계급에 속하는지 상담하는 글마저 더러 볼 수 있다.

 이런 분위기를 악용하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금수저들이 자신의 부유함을 인증하면서 흙수저들을 조롱하는 경우다. 일부 인터넷방송 진행자는 흙통령을 뽑는다며 경품을 내걸었다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어린 마음의 치기 어린 행동들에 불과해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는 행동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네티즌들은 현실을 ‘헬조선’으로 표현하며 분노하고 기성세대 또는 부유층의 꼰대스러운 조언을 ‘노오력’이라고 조롱한다. 특히 자신의 성공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줄 아는 일부 상속 졸부나 부동산 불로소득자들에게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3루타를 친 줄 알고 살아간다’며 거부감을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그렇게 분노하고 조롱하는 것만으로 끝내는 것은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공유하고,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며, 견뎌내고 있다.

 이른바 흙수저들이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만들어낸 비법인 흙수저 생존법이 인기다. ‘빨리 먹을 거라면 유통기한이 임박한 할인상품을 사라’거나 ‘겨울엔 내복을 입고 옷을 껴입어라’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 청소기보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이용하자’ 등 절약 요령과 근검정신을 일깨우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돼지 뒷다리 고기를 값싸게 사서 먹는 법이나 돼지 비계를 얻어 김치찌개에 고기맛만 내는 방법, 고시원 생활과 자취생들을 위한 팁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한다.

 밥통을 끌어안고 겨울 추위를 견디는 법이나 가스불을 켜서 몸을 녹이는 법 등이 소개되면서 ‘가난그릴스(유명한 자연생존 전문가 베어 그릴스를 패러디한 말)’라는 말도 나왔다. 사라진 사다리(신분 상승 기회)를 탓하다가 로스쿨 문제와 사법시험 존치론 논쟁으로 번지기도 하고, 로또 당첨을 상상하는 글도 자주 보이는데 유일한 흙수저 탈출법은 ‘결혼하지 않기’라는 글에 이르면 이 시대 청춘의 아픔이 참으로 안타깝고 서글프다.

 한탄과 자조, 그러면서도 네티즌 특유의 장난기 섞인 유머로 흙수저 이야기는 다양하게 변신 중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최근 인기리에 퍼지고 있는 ‘뜨거운 불속에서의 수저’ 만화다. 뜨거운 불속에서 버티다 보면 960도에서 은이 녹고 1063도에서 금도 녹지만, 1200도를 버텨낸 흙수저는 마침내 아름다운 도자기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끝까지 버티다 보면 금수저는 결국 금반지로라도 다시 남더라는 막줄(이야기의 반전을 주는 마지막 줄)이 있지만….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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