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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복종과 배신의 드라마

중앙일보 2015.11.07 00:38 종합 28면 지면보기
중년의 그는 성장기에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다. 그의 아버지는 친구들 아버지에 비해 늙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인 듯 여겨졌다. 결혼 후 아이가 생겼을 때 그는 한 가지 결심했다. “아들이 부끄러워하는 아버지는 되지 말아야겠다.” 그제야 자신이 ‘젊은 아빠’가 되기 위해 친구들보다 서둘러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평생 자기가 꿈꾸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얼마 전 아들의 진로 문제로 갈등하다 아들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가끔씩 아버지가 정말 부끄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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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엄마와 딸의 갈등이 평생 가듯 아버지와 아들도 서로를 영원한 숙제처럼 여긴다. 영국 대상관계 정신분석학파가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를 깊이 연구했다면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집중했다. 라캉에 의하면 모든 이의 내면에서 아버지는 세 차원으로 작동한다. ‘상상적 아버지’는 아이의 오이디푸스 환상 속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불안과 박해감을 선사하는 대상이다. ‘상징적 아버지’는 아이의 욕망을 통제하고 질서와 규율을 정하는 대상이다. 아버지의 기능이나 역할을 설명하는 용어다. ‘실재적 아버지’는 주체의 생물학적 아버지라고 한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전체 작품을 꿰뚫는 주제는 ‘아버지란 무엇이냐?’라는 질문이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그에게도 적용되는 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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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복종과 배신의 변증법 속에서 성장한다. 상징적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아버지의 통제와 규율에 따랐지만 그럼에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약속이 처음부터 빈 것이었든, 약속의 대가가 소망에 미치지 못했든 아들은 실망과 배신감을 맛본다. 그때부터 아버지에게 부여했던 힘을 거두어들여 자기 세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아버지로부터 돌아설 때 상상적 아버지는 아들의 내면에 불안감, 박해감을 일깨운다. 그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아들은 아버지를 배신해도 괜찮은 사람, 공격자나 부끄러운 사람으로 만든다.

 개인이 아버지를 상대로 느끼는 복종과 배신, 이상화와 폄하의 심리 작용은 사회생활에서 그대로 재연된다. 대부분의 남자는 이상화된 삶의 모델을 가지고 있고, 조직 속에서 그런 사람을 찾아내 헌신한다. 남자는 자주 누군가가 등 뒤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책임과 의무만 이행하면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겠다고. 그럼에도 이따금 남자는 세상이 자기를 쓰고 버릴 거라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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