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신자유주의는 애덤 스미스의 위작이다

중앙일보 2015.11.07 00:25 종합 31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전 국무총리

최근 천경자 화백의 부음 기사에서 ‘미인도 위작 사건’을 보고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를 생각했다. 미인도 위작 사건은 천경자 화백 본인이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그림을 소장 박물관이 진품이라고 반론하면서 작가가 절필까지 한 사건이다.

 미인도 위작 사건에서 애덤 스미스를 떠올린 것은 애덤 스미스가 현재의 신자유주의를 과연 자신이 주창한 ‘자유로운 시장경제’라고 인정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애덤 스미스가 신자유주의를 자신이 생각한 ‘진정한 자본주의의 위작’이라고 주장할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애덤 스미스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주장했는데,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의 폐해인 1대 99로의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이 전 세계에서 확대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그 결과인 금융위기는 그 대안을 모색케 하는 촉매가 됐고, 보수적 색채가 강한 다보스포럼조차도 2012년 회의에서 ‘대전환(Great Transformation)을 위한 새로운 모델의 모색’을 의제로 내걸게 됐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과 대안 모색을 위한 노력은 세계 각국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호주 퀸즐랜드대학의 존 퀴긴 교수가 『경제학의 5가지 유령들』에서 지적했듯이 신자유주의는 좀비처럼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2014년 다보스포럼은 세계경제 회복이 가시화된다고 하면서 금융위기의 사실상 종언을 고했고, 최근 미국은 금리 인상을 검토함으로써 금융위기 극복을 간접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일견 세계경제가 정상화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New Deal) 정책과 비교할 때 2007~2008년의 금융위기 극복 정책은 모두 그야말로 미봉책에 불과하다. 뉴딜 정책은 경기회복(recovery), 제도 개혁(reform), 경제 재건(reconstruction)을 표방하면서 경제운영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전환해 국가와 국민 모두의 장기 번영시대를 가져왔다. 그 반면 양적완화 정책을 기반으로 한 작금의 금융위기 극복 정책은 ‘경기회복’에 급급했을 뿐 1대 99의 양극화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의 근원적 문제점을 완화 또는 해소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보다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경기회복의 전망조차 여전히 불투명하다. 역사적 경험이 증명하듯 모든 미봉책은 동일한 위기를 반복하고 심화시킨다. 따라서 국가와 국민 모두의 안정적인 장기 번영을 추구한다면, 신자유주의 이후의 자본주의 모색은 결코 중단돼선 안 된다.

 
기사 이미지
 그러면 신자유주의 이후의 자본주의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 최소한의 기준을 애덤 스미스에게서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여야 한다. 1대 99 사회를 초래한 신자유주의는 진짜 자본주의가 아니다. 애덤 스미스가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주창한 이유는 소수의 특권세력이 독과점을 통해 부당한 부를 향유해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가난하고 비참하다면, 어느 사회라도 번영하거나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무제한적 자유방임은 허용해선 안 된다. 자본주의가 모든 경제체제 가운데 가장 우월해진 배경은 개인의 이기심이 자유롭게 표출된 데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폐해에서 확인하듯 도를 넘어선 자유방임은 자기 파괴를 가져온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도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적 이기심은 사회의 도덕적 한계 내에서만 허용된다”며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위협하는 몇몇 개인의 자유 행사는 정부 법률로 제한해야 한다”고 자유방임을 허용하지 않았다. 셋째, 정부 정책은 자본의 이익을 우선하기보다 사람과 사회의 안전과 안정을 먼저 생각하면서 추진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가 ‘경제적 효율’을 사실상 유일한 기준으로 내세운 결과 금융위기를 초래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자본의 “이익이 결코 공공의 이익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국도 IMF 위기 이후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모든 정권에서 신자유주의를 일관되게 추진해왔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이후의 자본주의 모색은 필수적이다. 한국 자본주의도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과거 정부의 정책 노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 이후의 자본주의를 모색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노력은 극히 미미했다. 그러나 우리가 국가와 국민 모두의 번영과 행복한 사회를 희망한다면, 수치로 표현되는 ‘경기회복’ 또는 ‘성장’을 넘어서 ‘모두가 행복한 자유로운 시장경제’라는 애덤 스미스의 자본주의 철학을 기준으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애덤 스미스의 위작이다. 이제 이념의 시대는 지났다. 실사구시만이 살길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국무총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