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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업’ 강국을 가다] 청년에게 창(創)을 허하라

온라인 중앙일보 2015.11.07 00:01
청년실업은 지구촌의 화두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어느 나라든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졌다. 취업문이 현저히 좁아진 시대, 결국 창업에서 탈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한국도 ‘창조경제’란 정책 기조 아래, 청년들의 창업을 장려하고 있다. 덕분에 신설법인 수는 매월 신기록을 경신 중이고, 벤처 투자액도 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양적으로는 손색이 없는데 현장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눈먼 돈’이 넘치지만 관리가 잘 안 되고 ‘숫자’로 확인 가능한 성과주의가 판을 친다. 진입장벽은 낮아졌지만 0.01%만이 ‘죽음의 계곡’을 넘는다. 지원책은 차고 넘치는데 ‘디테일’이 부족하다. 본지가 중국·영국·이스라엘·핀란드 등 6개국 10여개 도시를 돌며 그들의 창업 환경과 ‘창업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배워야 할 점을 정밀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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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장벽 낮아졌지만 생태계 조성 미흡 ... 무차별 지원금 대신 민간 투자심리 끌어내야

고진영(26)씨는 요즘 신바람이 난다. 친구 2명과 창업한 회사가 얼마 전 2000만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작은 벤처투자사(VC)가 고씨의 아이디어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1000만원 정도만 있어도 시작은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예상보다 큰 금액에 놀랐다. 고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창업동아리 선배들이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사업을 접는 경우가 많았는데 우리는 비교적 쉽게 출발한 것 같다”며 “앞으로 헤쳐가야 할 난관이 많겠지만 일단 기운은 난다”고 밝게 웃었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청년층(15~29세)을 대상으로 학력별·성별 체감실업률을 추정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기간 동안 청년층의 공식실업률 평균치는 9.7%였지만 평균 체감실업률은 22.4%였다. 체감실업률은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사실상 실업상태인 시간 관련 추가취업자, 잠재취업가능자 및 잠재구직자 등을 실업자로 간주해 계산한 실업률이다. 학력별로 체감실업률을 살펴보면 대학교 이상이 25.3%로 가장 높았다. 고등학교 이하는 21.4%, 전문대는 18.4%였다. 이러한 격차는 전문대나 고졸자의 취업률이 높고, 학력 인플레로 고학력자가 늘어난 것에 기인한다.

대졸 이상 고학력 청년 체감실업률 25.3%

고학력자는 쏟아지는데 기업들의 채용 환경은 몇 년째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청년 채용시장의 바로미터인 30대 그룹의 신규 채용은 2년 연속 감소했다. 삼성·SK그룹 등 13개 그룹이 연초 계획보다 신규 채용 규모를 확대하면서 소폭 늘긴 했지만 그래도 지난해보다 약 3%가량 줄어들었다. 벌이가 시원찮으니 사람 뽑은 것도 쉽지 않다. 우리나라 30대 그룹의 수익성은 2010년 정점을 찍은 뒤 4년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30대 그룹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7조5600억원으로 2008년(60조 1700억원)보다 4.3% 적었다. 가장 좋았던 2010년(88조2500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34.8%나 줄었다. 삼성·현대차그룹 정도를 제외하면 제대로 돈을 버는 회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심한 경기 침체로 기업마다 전 세계적인 수요 감소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질 기미도 잘 안 보인다. 올 상반기에도 30대 그룹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9%, 0.8% 감소했다. 순이익 역시 6.4% 줄었다. 이 때문에 매출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0.7%포인트 상승했다. 고용 여력이 없다는 기업의 볼멘소리도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곳곳에 눈먼 돈’ 차고 넘치는 창업 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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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청년실업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심각하다. 학력 인플레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부가 창업으로 정책의 방향을 돌린 건 매우 정확한 진단이다. 창조경제 기반의 창업 활성화는 박근혜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 중 하나다. 저성장 벽에 부딪힌 세계 경제, 제조업의 한계에 직면한 한국 경제의 상황을 반영한 정책이다. 잘 되기만 한다면 미래에 먹고 살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만들고, 청년 일자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다.

그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지 3년,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확실히 이번 정부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평가다. 지표도 나쁘지 않다. 올 상반기 벤처투자 규모는 9569억원으로 전년 동기(6912억원) 대비 38.4% 증가했다. 벤처투자사도 517개로 전년 동기 대비 23.7% 늘었다. 벤처펀드 신규 결성 규모도 6256억원으로 2013년 발표된 ‘벤처창업 자금생태계 선순환 방안’에 따라 조성된 미래창조펀드(5952억원)의 영향으로 대규모 자금이 몰린 2014년 상반기를 제외하고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벤처기업 역시 처음으로 3만개 시대가 열렸다. 2013년 문을 연 창조경제타운은 누적방문자가 250만명에 육박하고, 제출된 약 3만건의 아이디어 중 10%가량은 컨설팅 또는 권리화 지원이 진행 중이다. 이 정도면 정부의 벤처 ‘씨뿌리기’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박용순 중소기업청 벤처투자과장은 “올해 벤처투자가 현재 증가 추세를 유지할 경우 2000년 벤처 붐 당시의 투자 규모(2조 211억원)를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 신설법인 수도 이를 뒷받침한다. 올 상반기 신설법인은 전년 동기(4만1485개) 대비 11.9% 증가한 4만6418개를 기록했다. 반기 기준으로 역대 가장 많은 수치다. 대표자 연령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40대와 50대의 창업이 가장 많았지만 증가율은 30대 미만이 28.7%로 가장 높았다. 이런 흐름은 하반기에도 이어져 7~8월에도 월별 신설법인 수가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씩 늘고 있다. 물론 이 숫자의 건전성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신설법인의 업종별 분류를 살펴 보면 음식점과 같은 서비스업이 60% 이상이다. 청년 창업이 늘었다고 하면 모두들 대단한 IT나 신기술에 도전하는 줄 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청년 창업마저 자영업으로 흘러가면 결국 50대 이상 은퇴 세대와 경쟁해야 하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결국 핵심은 벤처다. 고학력 취업자가 벤처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뛰어들만한 생태계가 갖춰져야 한다. 확실히 진입 장벽은 낮아졌다. 그러나 생태계가 건강해졌느냐고 묻는다면 현장의 평가는 박하다. 일단 돈이 많이 풀렸지만 제대로 관리가 안 된다. 2년 전 대학 시절 창업한 회사를 매각하고, 두 번째 창업에 도전한 김모 씨는 “사업계획서만 잘 쓰면 초기 자금 모으는 건 어렵지 않다”며 “이른바 ‘꾼’들이 지원금을 쓸어가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 기관과 지방자체단체가 주최하는 창업 경진대회가 수없이 많다. 중복 입상도 가능하고, 프리젠테이션을 잘하면 서너 곳에서 지원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중 실제 사업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말 그대로 지원금이니 보고서만 내면 끝나고, 애초에 취업을 위한 스펙용으로 생각하는 대학생도 있다. ‘창업 지원금을 받아 데이트 비용으로 썼다’는 한 청년의 고백이 나왔을 만큼 헛점이 많은 게 현실이다. 새는 돈이 이렇게 많은데 정작 필요한 사람은 제대로 쓰기가 힘들다. 못 쓰게 정해놓은 항목이 많은데다 요건과 절차도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인건비로는 쓸 수 없다거나 홍보비로 쓰려면 특정 업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식이다. 부당한 지출을 막으려는 취지지만 지나치게 용도를 제한한 경우가 많아 다 쓰지도 못하고 반납하는 경우도 있다.

‘실적 내라’ ‘숫자 가져와라’ 성과주의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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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해주는 건 고마운데 정부나 지자체가 일하는 방식은 여전히 옛날식’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창조경제를 추진한다는 정부는 여전히 개발시대의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 비닐하우스를 지어 씨를 뿌리고, 직접 키우기까지 하는 방식이다. 10개 중 1~2개라도 성공하면 그 과실을 함께 나누는 건데 한국 경제가 한창 성장하던 시기 일부 대기업이 이런 보호 속에 성장했고, 이 대기업의 성공은 국가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예전엔 이게 통했다. 그런데 창조경제를 하겠다면서도 이 방식을 못 벗어난다. 부처는 물론 공공기관 전체로 퍼져가는 하달식 체계가 그대로다. 위에서 하라고 하니 왜 하는지도 모르고 결과에만 집중한다. ‘실적 내라’ ‘숫자 가져와라’는 식의 성과주의가 판을 칠 수밖에 없다. 보고를 해야 하니 얼마의 예산을 써서 몇 곳을 지원했고, 몇 건의 성과를 냈다는 식으로 숫자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해 3만개를 돌파한 벤처기업 수와 세계은행 기업환경평가 창업 부문에서 역대 최고 순위(17위)를 기록한 것 등을 언급했다. 대통령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면 공무원들은 그 숫자를 위해 일할 수밖에 없다. 김세진 앱센터 본부장은 “벤처가 성장하려면 기업이나 정부부터 예측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며 “새로워야 한다면서 정작 그것을 어떻게 뒷받침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 “죽음의 계곡 넘도록 지원하겠다”

정부가 지나치게 많은 걸 틀어쥐고 있으니 민간이 숨 쉴 공간은 부족하다. 정부가 마중물을 붓고, 시장의 심리를 부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민간자본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벤처 생태계가 자라나기 어렵다. 전문가들이 ‘정부는 제대로 된 판을 깔아주는 일’에 집중하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그 판의 핵심은 투자 환경과 룰이다. 벤처 생태계 선순환의 핵심은 성공 모델이다. 성공한 벤처기업가가 탄생하고, 그가 다시 벤처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한국은 벤처 탈출이 쉽지 않다. 미국은 벤처기업이 기업공개(IPO)에 이르기까지 6.8년, 인수·합병(M&A)에 5.8년이 걸리지만 한국은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성공 사례도 몇몇 게임회사나 소셜커머스가 거의 전부다.

맥킨지 컨설팅이 최근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벤처기업은 3000만∼7000만원 정도의 초기 자금은 쉽게 확보하지만, 신상품 개발 및 마케팅을 위해 필요한 1억∼3억원 규모의 투자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이른바 ‘죽음의 골짜기(death valley)’를 넘지 못하고 문을 닫는 벤처가 많은 이유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일단 국내에선 벤처기업이 M&A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 사실상 IPO가 유일한 방법이지만 그 기간을 버티는 게 쉽지 않다. 상황이 이러니 투자자 입장에서도 매력을 못 느낀다. 양적으로 성장한 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엔젤투자 규모는 여전히 작다. 투자자 수 자체도 적고, 실제 투자를 받는 일도 굉장히 까다롭다. 성공적인 투자 회수와 창업자의 탈출 경로 등 여러 각도에서 보완할 점이 많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은 10월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벤처기업이 지속적으로 수익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창업 이후 3~7년 차에 겪는 ‘죽음의 계곡’을 보다 쉽게 극복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정부는 창업 지원자금을 1조8000억원 수준으로 확대했고, 3~7년차 전용의 사업화 지원 프로그램도 신설했다”고 말했다. 진단은 정확한데, 결과는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본지는 중국·영국·이스라엘·핀란드 등 6개국 10여 개 도시를 돌며 그들의 창업 환경을 취재했다. 청년 창업 강국으로 이름을 날리는 나라와 기업들이다. 그간 과대포장된 곳도 있고, 덜 알려졌지만 의외로 배울 점이 많은 곳도 있었다. 우리로선 장점은 장점대로, 단점은 단점대로 흡수하면 된다.

-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jang.wonseok@joins.com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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