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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이 부른 우울한 통계 절도·사기, 노인만 늘었다

중앙일보 2015.11.06 02:45 종합 4면 지면보기
#1. 지난 6월 차량 전문 털이범을 검거한 청주 흥덕경찰서 경찰관들은 깜짝 놀랐다. 2년 전부터 범인을 추적하면서 20~30대로 추정했는데, 막상 잡고 보니 백발의 60대 남성이었던 것이다. 조사 결과 박모(65)씨는 2013년 7월부터 40여 대의 차량에서 1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관들은 박씨 집을 수색하면서 또 한 번 놀랐다. 박씨는 훔친 금품 41점을 내다 팔지 않고 집에 고스란히 쌓아놓고 있었다. 박씨는 “생계비를 벌기 위해 훔쳤는데 막상 훔친 다음에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몰라 그냥 보관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2. 퇴직 교사 천모(75)씨는 지난 2월 부동산업소 직원 이모(55·여)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천씨는 “서울 송파구 재건축아파트를 시가보다 싸게 구입해주겠다”는 이씨의 말에 1억4800만원을 건넸다. 하지만 이씨는 몇 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천씨는 2004년에도 부동산업자 김모(56)씨에게 사기를 당한 적이 있었다. 퇴직금 1억7000만원 대부분을 사기로 날린 셈이다.

 초(超)고령화 사회로 치달으면서 노인 범죄도 급증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들은 “과거엔 주로 범죄 피해자로 경찰서를 찾았던 노인들이 이제는 가해자로 잡혀 오는 일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말한다. 5일 본지가 입수한 경찰청의 노인(65세 이상) 범죄 통계에 따르면 전체 노인 범죄자는 2011년 6만8836명에서 지난해에는 8만7583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정용선 경찰청 수사국장은 “노인 인구가 늘면서 노인 범죄가 늘어난 측면도 있지만 문제는 노인 인구 증가율보다 노인 범죄자 증가율이 훨씬 가파르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65세 이상 노인은 2011년 565만5000여 명에서 2014년 638만5000여 명으로 12.7% 증가했다. 노인 범죄 자 증가율(27.2%)이 인구 증가율을 크게 웃돌고 있는 것이다.

 특히 노인 범죄 중 절도와 사기 범죄가 꾸준히 늘고 있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경제적 빈곤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전체적으로 절도·사기 범죄가 줄고 있는 가운데 유독 노인들의 절도·사기 범죄는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봉수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인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경제적 상황에서 오는 심리적 위축이나 고립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범죄 피해를 본 노인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사기 피해를 당한 노인은 2011년 1만306명에서 지난해 2만2700명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천씨처럼 노후를 대비하려다 퇴직금 등 평생 모은 목돈을 날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명교 경찰청 수사1과장은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조희팔 사기사건’ 피해자 중 상당수도 노후자금을 마련해 보려던 장년·노년층들”이라며 “노인이 노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범죄 역시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의 노인들은 의료기술의 발전 등으로 과거보다 체력이 우수하다”며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후에도 20~30년을 더 살아야 하기 때문에 경제 관련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제시했다. 조 교수는 “향후 치안 시스템을 수립하기 위해선 노인층에 대한 체계적 분석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유성운·주재용(한동대 언론정보문화4)인턴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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