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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는 숨 쉬면 죽어, 저승서 벌어 이승서 쓰는 직업”

중앙일보 2015.11.03 03:01 종합 2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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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제주도 해녀박물관에서 만난 서명숙 이사장. [손민호 기자]

서명숙(58) ㈔제주올레 이사장이 제주 해녀의 이야기를 담은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북하우스)를 펴냈다. 남의 얘기만 글로 썼던 기자생활이 지겨워 고향 제주로 내려온 뒤로는 몸소 겪은 일이 아니면 글을 쓰지 않겠다던 결심을, 해녀 앞에서는 접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책 펴내
해남 사라지고 해녀만 남은 사연 등
85세 할망서 신세대 해녀 애환 담아
“최근 남동생 결혼, 해녀가 올케 돼

 사실 서귀포 여자 서명숙에게도 해녀는 다른 세상 사람이었다. 소녀 서명숙에게 해녀는 “형편 어려운 동네 아주머니” 정도일 뿐이었다. 해녀가 눈에 들어온 건, 8년 전 고향에 돌아와서 올레길을 낼 때였다. 옛날 해녀가 물질 나가던 길, 망사리(그물망) 메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을 해녀에게 묻고 다녔다. 그들이 일러준 옛길을 찾아 이으면서 제주올레는 트레일(걷기여행길)의 꼴을 갖췄다.

 “제주올레는 해녀 덕분에 탄생했어요. 최근엔 해녀가 올케가 됐어요. 동생 동철(56·제주올레 1대 탐사대장)이가 최근에 가파도 해녀랑 살림을 차렸거든. 이 정도면 보통 인연이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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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해녀 채지애씨. 육지에서 미용사로 일했던 그는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 해녀가 됐다. [사진 북하우스]

 한때 2만 명이 넘었던 제주 해녀는 현재 4500여 명 수준에 머문다. 숫자도 줄었지만, 급속한 노령화가 더 문제다. 제주도는 해녀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참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 와중에 제주 곳곳에 해녀학교가 설립됐다. 이를 테면 해수풀 해녀학교는 매해 해녀 약 70명을 배출했고, 이들 중 20여 명이 현재 해녀로 활동하고 있다. 서명숙 이사장은 서귀포에 있는 법환 해녀학교를 졸업했다. 잠수는커녕 헤엄도 자신이 없었지만 “보고들은 얘기만으로는 해녀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책은 제주 해녀의 애환과 일상을 파고든다. 70년을 해녀로 산 삼달리 해녀 고인오(85) 할망(할머니)부터, 해녀 명함을 파고 다니는 신세대 해녀 채지애(33)씨까지 해녀가 털어놓는 삶은 하나같이 파란만장하다. 제주에서 해남(海男)이 사라지고 해녀만 남은 사연, 일본·중국·러시아 등 해외까지 진출한 이른바 ‘출가 해녀’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역사 이면의 진실을 조목조목 증언한다.

 서 이사장이 끝내 말하려는 바는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쓰는 고달픈 직업”을 가진 여자들의 삶 자체다. 사람은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는데, 해녀는 숨을 쉬면 죽는다는 대목(160쪽)에선 숱한 고비 넘긴 인생의 어떠한 경지마저 읽혔다. 책 제목이 ‘해녀’가 아니라 ‘숨’인 까닭이기도 했다.

 “나보다 더 힘든 삶을 산 해녀 할망들이 내가 힘들어 할 때 해준 말이 있어요. ‘살암시민 다 살아진다.’ 살다 보면 다 살게 된다는 뜻이에요.”

 책에서 나오는 인세는 모두 담돌간세 사업에 들어간다. ㈔제주올레는 올 초부터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 ‘담돌간세’를 벌이고 있다. 서 이사장의 동네 친구 허영선(58) 시인이 해녀에 관한 시만 묶은 『너를 품지 않고 어찌 바다에 들랴』도 곧 출간된다.

글, 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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