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남 자체는 성과 … 위안부 해결시한 못 정한 건 한계

중앙일보 2015.11.03 01:52 종합 3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2일 오전 청와대에서 단독정상회담을 마친 뒤 확대정상회담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정상회담 전 방명록에 ‘內閣總理大臣 安倍晋三(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이라고만 적었다. 왼쪽 둘째는 윤병세 외교장관. [뉴시스]


2일 한·일 정상회담의 화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였다.

박 대통령 “아픈 역사 치유할 기회”
아베 “미래세대 장애 남겨선 안 돼”
인식 차에도 관계복원 단초 마련
내년 참의원 선거 표 의식한 아베
‘진정한 사과’ 표명은 힘들었을 듯


 위안부 문제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일외교의 최우선 과제이자 한·일 관계 복원의 관건이었다. 이날 박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98분간의 회담 끝에 “(위안부 문제) 협의의 조기 타결을 위해 교섭을 가속화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동안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유보적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진전된 합의다.

 하지만 이날 정상회담은 과거사에 대한 인식 차이를 재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확대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오늘 회담이 아픈 역사를 치유할 수 있는 대승적이고 진심 어린 회담이 돼 양국 관계를 발전시키는 소중한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 뒤 기자들에게 “미래 지향의 협력 관계 구축에 있어 미래 세대에게 장애를 남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사 청산’을 강조한 반면, 아베 총리는 ‘미래 지향’에 무게를 실었다.

같은 시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도쿄(東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 측이 위안부 문제에 관해 한국에 제안한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일본의 입장이 아니겠느냐”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정상 간의 합의에도 불구, 위안부 문제의 연내 타결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귀국 후 한·일 관계 진전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3년6개월 만의 한·일 정상회담은 관계 복원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장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진 않겠지만 정상 간의 만남이 잦아지면 현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측 관계자는 “아베 총리가 회담에서 향후 국제회의 등을 계기로 이런 만남(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안했고 그 기회를 계속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두 정상이 언제 다시 만날지는 분명치 않지만 이달 중순 예정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이 다시 열린다면 한·일 관계가 한걸음 더 나아갈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국민대 이원덕 일본학연구소장은 “이번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관계 정상화의 첫걸음을 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사 문제를 논의하는 만남 자체를 꺼렸던 과거에 비해 큰 발전”이라며 “향후 다자회의에서 만남을 이어 가면 내년에는 박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까지도 가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날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한 듯 청와대는 두 정상이 주고받은 위안부 문제에 관한 대화를 공개하지 않았다. 기자들의 질문에도 “할 말이 없다”고만 했다. 청와대는 회담 전 이번 정상회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따라서 두 정상의 공동발표문이나 기자회견도 마련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다 된 11시48분 회담이 끝났지만 두 정상은 오찬을 나누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기자회견은 하지 않았지만 위안부 문제가 60분간의 단독정상회담에서 다뤄지고, 확대정상회담에서도 논의됐다는 것은 고무적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일본 측 관계자도 “우리가 공동기자회견을 하지 말자고 제안하진 않았다. 하지만 특별히 공개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고 밝혔다.

 일본 국내 이슈가 아베 총리의 발목을 잡은 측면이 있다는 말도 외교가에선 나왔다. 내년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총리가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전향적 태도를 보이기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이 요구한 대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경우 일본 내 지지 기반인 보수 유권자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국내 정치가 한·일 관계 복원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건 사정이 같다”고 말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