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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늘어 생긴 추가 수당, 경영 어려우면 안 줘도 돼”

중앙일보 2015.11.03 01:43 종합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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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반영해 달라며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회사의 경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국지엠 근로자 파기환송심 패소
고법 “회사 8690억 손실 났는데
연 416억 더 주면 재정적 어려움”
회사가 경영상 부담 적은 경우는
같은 재판부서 근로자 손 들어줘


 서울고법 민사1부(부장 신광렬)는 2일 한국지엠㈜·서울고속㈜의 근로자들이 낸 청구를 기각한 반면 남부발전㈜ 근로자들에 대해선 원고 승소 판결했다.

 한국지엠 근로자 5명은 2011년 회사를 상대로 “정기상여금, 개인연금보험료, 하계휴가비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이들의 청구를 받아들여 “회사는 미지급 법정수당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지난 6월 “근로자들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반되는지 살펴보라”고 파기환송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앞서 대법원은 2013년 12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원칙을 밝히면서도 그 예외조건을 제시했다.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받아들였을 때 회사가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할 경우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에 따른 추가 법정수당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고법 재판부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를 기준으로 근로자들의 청구가 신의칙을 위반하는지를 다시 따졌다. 추가 법정수당 지급으로 한국지엠이 향후 얼마나 재정적 부담을 안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추산했다.

 재판부는 “한국지엠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누계 당기순손실이 8690억원에 이르고 부채비율과 유동성도 동종 업계보다 열악하다”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반영해 매년 416억원의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하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된다”고 말했다. 이어 “원고들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된다”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기존의 1·2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서울고속 근로자 22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지급 소송 항소심에서도 원고 승소 판결한 1심을 깨고 미지급 법정수당 및 퇴직금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반영하면 회사가 추가 부담할 금액이 당기순이익 대비 최소 113%~최대 521%에 이른다”며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해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하지만 남부발전 직원 933명은 이날 “기본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산입해 미지급 법정수당을 지급해 달라”고 낸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경우 추가되는 액수는 2010∼2012년 합계 121억원으로 같은 기간 회사 당기순이익 3587억원의 3.38% 정도”라며 “예측하지 못한 재정부담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근로자들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될 정도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번 서울고법 판결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반영할 때 회사가 처할 경영상 어려움을 추산해 기준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하지만 ‘경영상의 어려움’을 과연 어느 수준까지 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법원 관계자는 “최근 대법원이 통상임금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만큼 ‘경영상의 어려움’에 관해 보다 구체적인 기준이 제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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