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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 금지 20년 … 되돌아 본 ‘미술 여전사’ 이불

중앙일보 2015.11.03 01:13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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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로 가득한 비정형의 집 설치 ‘지하실’ 안의 이불. 162㎝ 크지 않은 키로 세상과 맞서 온 그의 모습 또한 작품 안에서 확장을 거듭한다.

“이 부드러운 조각을 입고 여러 나라를 다녔지요. 그리고 이건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전시 때 악취가 난다며 미술관서 철거를 요구했던 날생선 작업의 드로잉입니다.”

캐나다 밴쿠버 미술관서 회고전
괴물옷·날생선 설치 등 숱한 파격
“숨 차도 마침표 찍는 일은 없을 것”

 지난달 29일 캐나다 밴쿠버 미술관. 은발의 미술가가 좌중 앞에서 20여 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괴물옷을 입은 채 세계 각지를 누빈 퍼포먼스(‘몬스터’ 시리즈), 반짝이를 꿴 날생선 설치(‘화엄’) 등 이불(51)이라는 이름을 전복과 저항의 대명사로 세계에 각인시켰던 초창기 작업에 대한 설명이다.

 밴쿠버 미술관에서 이불 회고전이 내년 1월 10일까지 열린다. 2012년 도쿄 모리미술관을 시작으로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MUDAM), 버밍엄(영국)의 아이콘갤러리, 생테티엔(프랑스) 현대미술관 등을 순회한 전시의 종착지다. 이번 회고전은 미의 개념 전복, 신체의 한계와 인간의 조건에 대한 사유를 담은 초창기 퍼포먼스와 설치를 위한 드로잉부터 근작 ‘나의 거대 서사’ 시리즈까지 망라했다.

 이불은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운동 선수들에게 많이 생기는 질환이라더군요. 작업할 때 한 근육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다보니 무리가 왔다고 해요.” 8월부터 전시가 이어져 항생제로 버티다가, 겨울에 서울에 돌아가서나 수술한다고 했다. 왼쪽 가슴엔 돋보기 안경을 꽂고 있었다. “20대가 신선하고 50대는 진부하다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몸은 낡아도 사고는 늘 새로워집니다.”

 이불은 경기도 화정의 우사 옆 움막에서 살았다. 부모는 반체제 인사였다. “불가사의한 삶이었다. 주변 어른들은 대부분 정치범으로, 방물장수나 가내 공방으로들 연명했다”고 돌아봤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깊어진다. 아시아 출신에 여자, 게다가 이 사회에서도 거부된 일가붙이인 나는 소수 중에서도 소수였다. 소수의 언어는 세상에 잘 들리지 않는다. 나만의 언어를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유파도 사단도 없이, 논쟁과 비판에 홀로 맞서 온 여전사 이미지는 두 동생을 이끌고 혼자 힘으로 살아남아야 했던 소녀 가장의 모습과 겹쳐진다.

 지난달 19일에는 파리의 팔레 드 도쿄에서 ‘이불-새벽의 노래Ⅲ’가 개막했다. 연기 나는 괴물체 모양의 대형 설치를 출품했다. 천장을 뚫을 듯 상승 의지를 불태우다가 산산이 부서지는 파국을 겪고, 그 좌절 속에서도 다시 시작하는 인간의 낙관을 들여다 본 작품이다. “누구나 희망을 믿고 싶어하는 반면 좌절과 환멸도 느낍니다. 그 모든 것이 동시에 벌어지는 게 바로 삶이죠.”

 밴쿠버 전시 개막 후 그는 새 전시를 준비하러 뉴욕으로 날아갔다. 내년 3월엔 시드니 비엔날레에서 대규모 신작을 공개한다. 좌절과 환멸을 딛고 계속 전진하는 것이 인간, “숨이 턱에 찰 때도 있지만, 마침표를 찍는 일은 없을 겁니다.”

밴쿠버(캐나다)=글·사진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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