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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나는 아줌마가 되지 않겠다

중앙일보 2015.11.03 00:22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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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중앙SUNDAY 기획에디터

월드컵 열기로 남녀노소 없이 후끈 달아올랐던 2002년. 고정관념을 깨는 광고 하나가 등장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카피로 유명세를 떨친 바로 그 KTF 광고다. 할아버지 대학생을 등장시켜 나이와 상관없이, 아니 나이에 주눅들지 않고 뭐든 도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이라는 틀에 맞춰 사는 삶에서 그만 벗어나자는 데 모두 공감했기에 그토록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이 먹어 아줌마·아저씨가 되고 할머니·할아버지가 돼도 젊은 생각으로 자기만의 삶을 사는 모습을 그때는 다들 꿈꿨는지 모르겠다. 생물학적 나이는 먹었으되 생각은 늙지 않는 그런 늘 청춘 같은 삶 말이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세상이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오히려 시계가 거꾸로 도는 느낌이다. 그때는 없던 ‘개저씨’(개와 아저씨의 합성어로 추태 부리는 중년 남성을 가리키는 속어)나 아줌마보다 더한 비하와 경멸의 뜻을 담은 ‘맘충’(자기 자식 챙기느라 남에게 피해주는 몰지각한 엄마를 벌레에 비유한 속어)과 같은 비속어가 난무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이성(異性)을 혐오스럽게 표현하는 이런 비속어를 사용하는 게 옳으냐 그르냐는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단지 나이 든 아저씨가 되고 애 딸린 아줌마가 됐다는 이유로 남에게 욕 먹는 행동을 거리낌없이 하는 사람이 눈에 많이 띄는 건 분명하다. 세상은 정신 없이 휙휙 바뀌는데 고작 남보다 더 먹은 나이 하나 붙잡고 대접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얘기다.

 미국 미네소타주 의학협회는 젊은이들 활동에 아무 관심 없고,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게 좋고, ‘좋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을 노인이라고 정의했다. 노인인지 여부는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마음가짐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물학적 나이가 전부가 아닌 건 꼭 노인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꽤 오래전, 그러니까 이미 결혼해서 애까지 낳은 후였는데 한 기업인으로부터 “언제까지나 절대로 아줌마는 되지 말라”는 농반 진반의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스스로를 아줌마로 규정해 부끄러움도 모른 채 내 것만 챙기고 내 주장만 하는 사람은 되지 말라는 뜻이었다. 지금도 가끔 얼굴이 두꺼워졌다고 스스로 느껴질 때면 이 조언을 떠올린다.

 결혼해서 애 키우면 무조건 아줌마고, 나이 들면 그냥 노인이 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짓는 순간 그렇게 될 뿐이다.

안혜리 중앙SUNDAY 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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