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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줄이기 꼼수? 역풍 맞은 비아그라·보톡스 합병

중앙일보 2015.11.01 18:45
불똥이 세금으로 튀었다. 비아그라의 화이자와 보톡스의 엘러간 사이에 진행 중인 인수합병(M&A)이 미국에서 세금 도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미국 화이자-아일랜드 엘러간 합병이 ‘기업 이전(Corporate Inversion)’논란으로 바뀌고 있다”고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기업 이전은 법인세율이 높은 나라 기업이 낮은 국가의 기업과 짝짓기를 해 본사를 세율이 낮은 나라로 옮기는 행위다.

애초 두 회사가 우호적 M&A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자(지난달 29일), 월가는 “비아그라(발기부전)가 보톡스(주름 개선제)를 만난다”고 반겼다. M&A 대금만도 3300억 달러(약 376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월가 투자은행과 법무법인(로펌) 등이 두 회사 짝짓기를 중개하고 인수대금을 알선해주고 받은 수수료만도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게 뻔했다. 월가엔 ‘무위험 노다지(Risk-free Bonanza)’였다.

그런데 이틀 새에 두 회사 M&A가 세금 피하기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럴 만했다. 이런 리드 화이자 최고경영자(CEO)가 실토했다. 그는 29일 WSJ 등과 인터뷰에서 “미국 세금이 살길 찾아나서도록 한다”고 말했다. 미 법인세율이 너무 높아 아일랜드로 기업을 이전하겠다는 얘기였다. 지금까지 M&A를 추진한 CEO 입에서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그들은 세금 피하기가 진짜 목적이었어도 겉으론 경쟁력 강화 등 시너지 효과를 내세웠다.

미국 법인세율이 얼마나 높기에 리드가 드러내놓고 말했을까.

화이자가 지난해 재무제표를 통해 발표한 실제(실효) 법인세율은 25.5%였다. 반면 아일랜드의 엘러간은 14.5%였다. 약 11%포인트 차이다. 차이가 상당하다. 톰슨로이터는 “두 회사 M&A가 성사되면 화이자는 해마다 세금 10억 달러 정도를 절약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전체 순이익의 10% 안팎이다.

화이자가 M&A로 절세 이익을 얻는 만큼 미국 재무부는 손해다. 게다가 화이자의 CEO인 리드의 발언은 오바마 대통령의 심기를 정면으로 거슬렀다. 오바마는 최근 “세금 피하기 위한 기업 이전을 막겠다”고 공언하며 대책을 마련 중이다. FT는 “화이자의 시도가 기업 이전에 대한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30일 전했다.

아직 오바마는 법규 정비를 끝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오바마에겐 화이자를 보복할 수단이 없는 게 아니다. 포브스는 이날 전문가의 말을 빌려 “오바마가 화이자의 정부 납품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정부 의약품 조달 등에서 화이자를 배제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미 정부는 부상당한 참전 용사 등을 지원하기 위한 의약품을 대량 구매하고 있다.

화이자의 M&A는 글로벌 대응을 촉발시킬 가능성도 크다. 자난달 초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 실무팀은 기업이 국가간 법인세율 차이를 이용해 세금을 피하는 행태를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공개했다. 다국적 기업이 각국에서 어떤 비즈니스를 해 얼마나 벌고 있으며 세금을 어느 정도 내고 있는지 모조리 공개하도록 하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OECD는 “방안이 11월 중순에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정식 보고된다”고 했다. 화이자 M&A로 화가난 오바마가 앞장서 글로벌 기업 규제에 나설 가능성이 엿보인다. OECD는 “글로벌 기업이 나라별 법인세율 차이를 이용해 덜 내고 있는 세금이 연간 1000억~2400억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글로벌 법인세의 4~10% 정도 되는 거액이다. 주요 국가들은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화이자의 리드가 세금을 탓하며 M&A를 추진한다. 기업의 세금 회피를 겨냥한 글로벌 공조가 더욱 긴밀해질 전망이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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