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람 난 남편 이혼 허용…법원 “혼인파탄 책임 상쇄할 만큼 자녀에 보호ㆍ배려”

중앙일보 2015.11.01 12:38
바람 난 남편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혼인파탄의 책임을 상쇄할 만큼 상대방과 자녀에게 보호ㆍ배려를 했고, 세월이 흘러 파탄 책임을 엄밀히 따지는 게 무의미한 경우에 해당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항소1부(수석부장 민유숙)는 남편 A(75)씨가 부인 B(65)씨을 상대로 낸 이혼 소송에서 A씨 청구를 기각한 1심을 파기하고 이들의 이혼을 허용했다고 1일 밝혔다.

두 사람은 45년 전인 1970년 결혼해 세 명의 자식을 낳고 살았다. 하지만 A씨가 TV를 던지는 모습이 자녀의 기억에 각인될 정도로 다툼이 잦았다. 이들은 80년 협의이혼 했다. 그러다 3년 뒤 B씨가 자녀들을 보기 위해 집으로 들어오면서 다시 혼인 신고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A씨가 B씨와 불화 끝에 집을 나갔고, 다른 여성과 동거를 시작했다. A씨는 94년 이 여성과의 사이에서 혼외자를 낳고 B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냈다. 하지만 기각됐다. 우리나라는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A씨는 25년간 사실상 중혼 상태로 지냈다. 그는 장남 결혼식 때 B씨와 한 차례 만났을 뿐 이후 만남도 연락도 없었다. 2013년 A씨는 다시 법원에 이혼 소송을 냈다. 하지만 역시 1심은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A씨는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2심은 지난달 23일 ‘혼인생활 파탄의 책임이 이혼 청구를 기각할 정도로 남지 않았으면 예외적으로 이혼을 허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인용해 “부부로서의 혼인생활이 이미 파탄에 이른 만큼 두 사람은 이혼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25년간 별거하면서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사라졌고 ^남편의 혼인파탄 책임도 세월이 흘러 경중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희미해졌다고 판단했다. 또 남편이 그간 자녀들에게 수억원의 경제적 지원을 했고, 부인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 축출이혼이 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

재판부는 “부인이 이혼을 원치 않고 있지만 이는 실체를 상실한 외형상의 법률혼 관계만을 형식적으로 계속 유지하는 것”이라며 “혼인생활을 계속하라 강제하는 것은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na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