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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세계화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들

중앙선데이 2015.11.01 01:33 451호 20면 지면보기

그림 1 빅터 길럼, 『백인의 짐』, 『저지』, 1899년.



그림 1은 영국의 화가 빅터 길럼(Victor Gillam)이 그린 ‘백인의 짐(The White Man’s Burden)’이라는 작품이다. 1899년 미국의 보수적 시사 잡지 『저지(Judge)』에 실렸다. 1899년은 미국이 팽창정책을 본격화해 아시아에서 스페인을 몰아내고 필리핀을 지배하게 된 해였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빨간 외투를 입은 이는 영국인을 대표하고, 줄무늬 바지를 입은 이는 미국인을 대표한다. 앞서가는 영국인의 바구니에는 중국, 인도, 이집트, 수단 사람들이 들어있고, 미국인의 바구니에는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쿠바, 사모아, 하와이 사람들이 올라타 있다. 이 그림이 묘사하는 것은 영국과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이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앞서서 건설한 영국을 늦게 식민지쟁탈전에 나선 미국이 뒤따르고 있다. 이들이 경쟁적으로 나아가는 곳은 바로 ‘문명’이다. 화가는 영국과 미국이 미개한 후진국들을 개화시키는 과정으로 19세기 말 제국주의를 이해했다. 후진국 사람들이 고마워하지 않고 오히려 투정하기 일쑤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묵묵히 문명화된 세계로 이들을 이끌고 있다.


[세계화는 어떻게 진화했나] -33-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

이 그림은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이 같은 해에 발표한 동일한 제목의 시를 시각화한 것이었다. 『정글북』의 저자로 잘 알려진 키플링은 이 시에서 서구중심적이고 백인우월주의적인 색채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절반은 악마, 절반은 어린애’와 같은 식민지 주민들은 백인들이 가져다주고자 하는 문명 개화, 경제 발전, 질병 정복의 가치를 몰라보고 그저 원망과 불평만 쏟아낸다. 하지만 백인들은 이를 탓하지 말고 더욱 인내하고 노력해서 불쌍한 미개인들을 ‘빛’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당시에도 제국주의적 식민지 정책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키플링이 시를 발표한 해에 시사 잡지 『라이프(Life)』는 길럼의 그림과 정반대로 미국인, 영국인, 독일인이 각각 필리핀인, 인도인, 아프리카인의 어깨에 올라타 있는 그림을 표지에 실었다. 과연 어느 그림이 현실을 더 잘 반영하는 것일까? 오늘날 절대 다수의 역사가들은 후자의 손을 들어준다. 당시의 제국주의 팽창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선 제국주의를 서구 열강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편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강대국이 자국의 생산품을 판매하고 식량과 원료와 노동력을 공급받고 자본을 투자해 이익을 뽑아내는 대상으로 식민지를 이용하는 것이 제국주의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사회주의 혁명가 레닌에 의해 가장 강렬한 형태로 제기되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자본가 간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이윤율이 떨어지는 경향이 불가피하게 나타나는데, 이런 ‘자본주의 모순’을 해외 식민지를 통해 지연시키려는 행위가 제국주의 팽창정책이라는 것이다. 그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최후의 단계’라고 부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림 2 토머스 하이네,?『식민지를 지배하는 방식』, 『심플리치시무스』, 1904년.



그림 2는 독일 화가 토머스 하이네(Thomas T. Heine)가 잡지 『심플리치시무스(Simplicissimus)』에 실은 작품이다. ‘식민지를 지배하는 방식’이라는 제목이 달린 이 그림에서 영국의 상인과 군인과 성직자는 각자의 역할을 통해 아프리카인을 쥐어짠다. 그 과정에서 아프리카인의 입에 들어간 럼주는 금화로 재탄생한다. 지구상의 낯선 지역에 무역망을 만들고 무력으로 지배하고 개종을 시키는 모든 작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경제적 이익의 획득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화가는 식민주의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었을까? 아니면 식민지쟁탈전에서 뒤쳐졌던 독일을 대표해서 영국식 식민주의를 비판하고 독일식은 더 낫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심플리치시무스』가 현실비판에 치중한 잡지였고 한때 황제 빌헬름 2세로부터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기도 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화가는 국가를 막론하고 제국주의 정책 자체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졌던 것 같다.



그런데 식민지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서 19세기 말부터 여러 제국주의국가에서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식민지 지배가 본국에 예상만큼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았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오히려 손해가 더 컸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있었다. 경제적 계산 자체가 논쟁 당사자 모두의 동의를 얻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경제적 요인 대신에 정치적 요인에 초점을 맞추는 견해가 등장했다. 서구 국가들은 19세기에 경쟁적으로 공업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국가역량을 동원하는 추동력으로 삼곤 했다. 특히 뒤늦게 통일국가를 이루고 공업화에 박차를 가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이런 움직임이 가장 거셌다. 19세기 말이 되면 국가 간의 민족주의가 단순한 경쟁을 넘어 적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각국의 지배 권력이 식민지 쟁탈전에서 경쟁국들을 꺾음으로써 자국의 민족주의 열망에 부응하고자 한 것이 제국주의의 본질이라고 이 견해는 강조한다.



그렇다면 열강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의 인력만으로 어떻게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거대 지역을 통치할 수 있었을까? 기관총과 자본력과 같은 지배 수단을 갖추는 것도 중요했겠지만, 그보다 심리적 요인이 더 중요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식민지의 피지배자들이 제국주의 본국의 지배자를 어떻게 인식했느냐가 중요했다는 것이다. 지배자는 강인하고 진취적이고 판단력과 지식과 교양을 갖춘 존재임에 반해 피지배자는 스스로 피동적이고 나약하고 무지한 존재라고 여기게 되는 과정을 통해 심리적 통치 기제가 완성된다.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한 이런 열등감과 패배주의가 다수에 대한 소수의 지배를 가능하게 한 힘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림 3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1904년.



그림 3은 1904년 영국의 한 신문에 실린 삽화로,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서 있었던 호랑이 사냥을 보도한 것이다. 서구인들이 주도한 이런 행사는 제국주의자들의 강인함을 과시함은 물론, 야만에 대한 질서의 승리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1911년 영국의 조지 5세는 인도를 방문하면서 11일 동안 호랑이 39마리와 코뿔소 18마리를 사냥했다. 영국이 제국을 통치할 힘과 자격을 갖춘 국가라는 인상을 식민지 인도인들에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제국주의 시대에 서구 열강들은 지구 전역을 남김없이 분할하고 식민지화했다. 거기에 자국의 군사력을 동원해 강압적으로 통치체제를 구축했다. 자국의 제도와 기술과 자본도 들여왔다. 그리고 새로 도입한 체제가 기존 체제보다 우월하다고 교육시켰다. 세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제국주의 식민지정책은 피지배자들의 의사를 거스르면서 진행된 강제적 세계화 과정이었다. 식민지 주민들은 이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세계에서 통용되는 제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다. 일부 주민은 변화 속에서 기회를 포착해서 경제적 이익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이런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주권의 상실을 동반해 이루어지는 억압적 방식의 세계화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냉엄하다. 자발성에 기초하지 않은 세계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며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bks21@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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