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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자본주의 대안 되려면 부패·빈부격차 해결해야

중앙선데이 2015.11.01 01:30 451호 14면 지면보기
중국이 기침을 하면 다른 나라들이 감기에 걸릴까. 아직은 아니다.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로 한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지만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이루어지면 세계경제 전체가 요동칠 것이다.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의 발권력을 가진 미국은 여전히 세계경제를 주무르고 있다. 비록 막대한 무역 적자에 시달리고 있지만 미국은 세계 이곳저곳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나라다.



이미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독일·일본을 추월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예측에 따르면 앞으로 5년 이내에 중국은 미국의 GDP를 따라잡아 세계 1위가 될 것이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세계은행 자료를 갖고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30년 한국·일본·중국·인도와 동남아 국가들의 총 GDP는 미국과 유럽을 합친 것을 넘어설 전망이다(그림 참조). 물론 경제력과 같은 하드파워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더라도 문화와 지력 등 소프트 파워에서 미국의 우세는 당분간 지속할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 다시 쓰는 아시아

21세기에 들어와 아시아가 자본주의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유럽, 북미 대륙과 더불어 아시아는 근대 산업 세계의 3대 지주 중 하나다. 비(非)서구 지역에서 처음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을 따라 한국·대만·싱가포르의 ‘세 마리 용’은 선진국 대열에 다가섰다.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베트남의 ‘다섯 마리 호랑이’는 신흥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친디아(CHINDIA)’로 호칭되는 중국과 인도는 세계 경제·정치대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자본주의는 아시아서 기원” 주장도자본주의는 유럽에서 발원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런던·파리·베네치아 등 유럽의 도시국가에서 무역을 통해 축적이 이루어졌고,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 시민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는 유럽에서 태동했다. 그러나 중국·인도·바빌론에는 15세기 이전부터 자본주의가 존재했다는 다른 설명도 있다. 유럽은 자본주의가 이미 싹튼 아시아와 중동 지역의 교역을 통해 자본주의를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전에 관한 한 사실(史實)이 중요하다. 역사의 과장이나 축소는 모두 피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중국은 로마·페르시아와 함께 대제국을 건설한 바 있다. 어느 문명이고 영락(榮落)이 있듯이 인류 두 번째 천년 중 첫 다섯 세기(서기 1000~1500년)는 아시아가 앞섰으나 다음 다섯 세기(1500~2000년)는 유럽이 아시아를 넘어섰다. 나는 역사학자 배러클러프(G. Barraclough)가 지적한 대로 모든 시대는 그 나름대로의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다는 입장에 동의한다. 그러므로 이른바 ‘문명의 역전’이란 것도 한 역사의 종말이라기보다 다른 역사의 시작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오래전 유럽이 아시아를 추월했으나 이제 아시아가 다시 유럽을 추격하고 있다.



유럽의 흥기는 아시아의 선진 문화유산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과학기술 혁명으로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인류 두 번째 천년이라고 할 서기 1000년께 중국과 중동은 상당히 도시화돼 있었던 반면, 로마의 인구는 45만 명에서 3만5000명으로 줄었다. 이슬람 지배 아래의 스페인 코르도바는 50만 명의 주민이 살았고, 바그다드는 100만 명에 가까운 시민이 운집한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9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동안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House of Wisdom)은 그리스·페르시아·인도 문명의 정수를 담은 서적을 수집·번역·종합했고, 유럽은 이를 과학기술 혁명을 통해 ‘지리상의 발견’으로 이어감으로써 아시아를 앞지를 수 있었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발전은 학문·예술·건축·제조·항해 등 모든 면에서 괄목한 것이었다.



세계 제국이라는 헤게모니 유지에서 중국이 실패한 것은 중국이 육상 세력을 넘어 해상 세력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명나라 전성기였던 영락제(1360~1424년) 시절의 정화(鄭和)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의 함대는 오늘의 미국 항모전단에 비유될 만한 것으로 무려 30년에 걸쳐 동남아시아에서 아라비아를 거쳐 아프리카 동부 등 30여 개 나라를 돌아다녔다.



대체로 서양인들은 콜럼버스를 가장 좋아하고 반대로 칭기즈칸을 가장 싫어한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자 유럽을 유린한 칭기즈칸에 대한 자존의 상실을 담고 있다. 만일 1405년에서 1433년 사이 일곱 차례에 걸쳐 동남아시아와 인도양을 횡단한 정화의 함대가 명나라 왕조로부터 제한을 받지 않았다면 정화는 동양판 콜럼버스가 되었을지 모른다. 한 역사가는 만약 중국이 항해 선단을 계속 해외로 보냈다면 콜럼버스가 카리브 제도에 어물거리고 있기 전에 중국의 정화 함대가 일본 해류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만에 배를 타고 들어갔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다양성이 개방성·적응력·변화력 키워유럽과 달리 아시아의 발전 경로는 내향적이었다. 유럽의 대항해는 외국 무역에 대한 국가 통제력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국내 교역은 강조했지만 민간의 해상 통상은 제한했다. 무슬림 상인들은 왕성한 해상 통상을 원했지만 국가의 해군력이 받쳐주지 못했다. 바로 유럽이 이 공백을 메웠다. 15세기 중반 중국의 해금(海禁) 정책이 유럽의 대항해와 함께 아시아에서 유럽으로의 헤게모니 이동을 가져오는 결정적 전기가 됐다.



세계화의 와중에서 자본주의는 시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기치 아래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정글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세계경제의 불안, 국가의 재정위기, 동서 문명 충돌, 지속되는 환경 재앙, 대규모 난민 발생 등이 나타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다. 이는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와 달리 개량을 통해 줄기차게 자기 변신을 시도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왜 자본주의는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의 자본주의로 존재할까. 영미식·독일식·지중해식·북구식·일본식·싱가포르식 등 자본주의는 마치 요리상을 펼쳐놓은 듯 다양하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내구력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는 바로 다양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다양성이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한 폐해를 넘어 개혁과 혁신을 위한 개방성, 적응력, 그리고 변화력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복수로서의 자본주의(capitalisms in plural form)가 있었기에 단수로서의 자본주의(capitalism in singular)가 굴러가고 있다’는 명제가 성립할 수 있다.



아시아 자본주의의 미래는 다양한 실험과 개조에서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아시아가 서구 자본주의의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서 개선할 점이 많다. 형식적인 선거 과정, 시민 참여 없는 거버넌스, 악화되는 소득 격차, 구조화된 부정부패, 고질적인 환경 파괴, 점증하는 사회 갈등 등을 극복해야 한다. 아시아 자본주의는 보다 민주적이고 정의롭게 되기 위해서 갈 길이 멀다. 자유·평등·복지·연대라는 보편적 가치의 바탕 위에서 지역·나라·지방마다 특색을 갖는 미래의 아시아 자본주의를 기대해 본다. 아시아 자본주의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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