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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조 쓰고도 출산율 바닥 … 저출산 대책 사령탑이 없다

중앙선데이 2015.11.01 01:30 451호 6면 지면보기

한국은 1960년에는 합계출산율이 6.0명이나 됐지만 83년 2.1명 미만으로 떨어진 후 저출산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2일 서울 관악구 난곡동 베이비룸에서 분유를 먹는 아기 모습. [뉴시스]



지난달 19일 정부는 3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 시안을 공개했다.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 지원 확대, 임신·출산 의료비 부담 경감 등이 내용이다. 현재 1.2명 수준인 출산율을 2020년까지 1.5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도 담았다. 정부 관계자는 “기혼여성 출산에 초점을 맞춰온 정책에서 젊은 층의 결혼을 유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10년째 겉도는 저출산·고령화 대책

그런데 반응이 시원찮다. 정책의 타깃인 젊은 층에서는 ‘전세 대출을 확대하면 뭘하나, 전세 물량이 없다’거나 ‘결혼을 꺼리는 진짜 이유가 뭔지 핵심을 못 짚었다’고 비판한다. 미혼인 김현영(34·여)씨는 “뭐가 틀렸는지 똑 부러지게는 모르겠지만 ‘과연 될까’라는 의문이 남는 감동 없는 대책”이라며 “‘만사결통(萬事結通)’이라는 미혼 남녀 단체미팅 프로그램까지 동원한 대목에서는 실소가 나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백화점식으로 늘어놓기만 했다”며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저출산 대책의 흑역사는 끝나지 않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1~2차 기본계획(2006~2015년) 동안 10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출산율은 반등하지 않고 있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대책을 수립하기에 약발이 먹히지 않는 걸까. 중앙SUNDAY는 저출산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전·현직 정책운영위원 및 분과위원들과 전문가에게 이유를 들어봤다.  
존재감 없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2005년 6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됨에 따라 같은 해 9월 발족했다. 대통령 직속기구다. 대통령이 위원장이 돼 직접 챙길 만큼 저출산 기조가 심각하다는 이유에서다.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교육부·여성가족부 등 14개 관련 부처 장관과 민간 전문가 9명이 위원으로 참가한다. 정책운영위원회와 분과 위원회에도 130명이 넘는 부처 관료와 전문가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작동한 적은 별로 없다. 특히 이명박 정부 말기에 구성된 3기 위원회는 회의를 한 번도 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유령 위원회 기조는 이어졌다. 지금까지 개최한 회의는 네 차례에 불과했다. 그나마 직접 위원들이 만나 의견을 교환한 것은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올해 2월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머지 세 차례는 서면으로 회의를 대신했다. 지난 2월 회의 역시 당장 내년부터 3차 기본계획을 실행해야 하기 때문에 열린 벼락치기 회의였다. 정책운영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한 전문가는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회의에 참석하려 해도 그런 기별이 없다”며 “위원회 존재 자체를 잊고 살다가 오랜만에 연락이 오면 ‘아, 이제 5년이 지나 새로운 계획을 내놓을 때가 됐나 보다’ 한다”고 털어놓았다.



저출산·고령화 기본법 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조직마저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시행령은 위원회를 지원하는 사무국(운영지원단)을 상설 조직으로 두도록 했지만 여전히 임시 조직 신세다. 복지부 과장 등 5명 내외가 부처 업무와 사무국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염민섭 운영지원단장(복지부 인구정책과장)은 “행정자치부와 사무국 상설 조직 설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 출범 10년 동안 사무국 설치 검토만 하고 있는 셈이다.



“회의에 가봤더니 분위기가 황당했어요. 200가지가 넘는 온갖 정책을 저출산 정책이라고 내놓고 각 부처 과장과 사무관이 설명을 합니다. 어린이나 청소년과 관련이 있으면 다 저출산 정책으로 밀어넣는 거예요. 가령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것 중에 청소년 교류 정책을 이야기하는데, 이게 제가 중학생 때 1기로 필리핀에 갔다온 프로그램이에요. 전혀 새로운 게 없는 거죠. 그러고 나서 민간 위원들에게 ‘질문해 봐라’ 하면서 끝나더라고요.”



2기 실행위원으로 참석했던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인구학) 교수가 전한 위원회 분위기다. 자주 열리지 않는 회의마저도 밀도 있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 교수는 “지금의 저출산 대책에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부처별로 쏟아내기만 하는 정책 효과에 대한 데이터, 즉 과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라며 “지난 10년간 두 차례에 걸쳐 10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붓는 동안 관련 연구비로 책정된 예산은 10억원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현재 4기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정책운영위원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익명을 원한 한 위원은 “부처별로 정책을 쏟아내면 국책연구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이 취합을 해 사실상 위원회에 통보를 한다”며 “위원회는 분과-정책운영-본 위원회 3층 구조로 돼 있는데, 이번 시안은 1층(분과)에서 알아서 만들고 일방적으로 발표를 해버렸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위원은 “4기 위원회가 문형표 복지부 장관 시절에 꾸려졌는데 메르스 사태로 장관이 바뀌면서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저출산 장관 임명하고 연구 늘려야 전문가들은 현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시스템으로는 저출산 위기를 타개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김한곤 영남대 사회학 교수는 “국가적인 역량을 총동원해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라며 “지금보다 더 강력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 교수는 “부처별로 취합을 하다 보면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정책이 뒤죽박죽 섞이게 된다”며 “일·가정 양립을 위해 복지부는 국공립 보육시설을, 여가부는 직장 어린이집을 늘리자고 엇박자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책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저출산 위기를 먼저 경험한 일본처럼 ‘저출산 담당 장관’을 두는 것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저출산 대책의 입안과 평가를 다양한 연구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정책을 만들고 평가까지 한 뒤 위원회에 단순 보고하는 식으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한 전문가는 “국책연구기관의 인력이 많지 않아 뻔하다. 대부분의 저출산 대책이 스웨덴이나 프랑스 같은 해외 사례만 분석해 붕어빵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국가적인 위기인 만큼 국책연구기관만 쳐다보지 말고 다양한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며 “한 기관의 연구에 의존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적인 접근을 하려면 우리 실정에 맞는 다양한 연구가 있어야 하고 효과에 대한 근거가 필요하다”며 “그래야 국민도 지금처럼 비웃는 게 아니라 납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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