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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변이 여부 들여다 보면 자살 40% 막을 수도 있다

중앙선데이 2015.11.01 00:36 451호 25면 지면보기

‘굿모닝 베트남’에서 쾌활한 배우였던 로빈 윌리엄스는 알코올 중독과 심한 우울증으로 결국 자살했다



‘굿-모닝 베트남!’. 한 옥타브 높은 오프닝 멘트와 경쾌한 음악으로 시작되는 야전 방송은 전쟁 중인 미군에게 큰 힘이 된다. 영화 ‘굿모닝 베트남(1987)’에서 배우 로빈 윌리엄스는 아침 햇살 같은 하이 톤의 목소리로 쾌활한 연기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그는 심한 우울증과 싸우고 있었다. 알코올 중독으로 악화된 우울증은 결국 2014년 8월, 그를 자살로 내몰았다. 고(故) 최진실씨 등 유명 연예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인 8명 중 1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 자살자의 80%가 우울증 환자일 정도로 우울증은 위험하다. 우울증은 왜 생기는 걸까? 기분상의 문제일까, 아니면 두뇌의 유전 자 질환일까? 한 번 빠지면 스스로는 헤쳐 나오기 힘든 것이 정신질환이다. 평상시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이 이런 늪에 빠지지 않게 할까? 과학자들이 밝힌 해답은 ‘햇빛’이다.


[김은기의 ‘바이오토크'] 우울증 치료와 예방

  우울증엔 지위고하, 남녀노소도 없어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 했다. 디오게네스는 “그저 햇빛만 가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디오게네스는 햇빛이 그 무엇보다 건강에 중요함을 알고 있던 것일까? 햇살이 줄어드는 가을이 되면 유난히 가을을 타는 사람들이 있다. 공연히 예민해지고 기분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이런 ‘계절성 우울증’은 특히 북유럽에서 자주 관찰된다. 스웨덴 경우 6명 중 1명은 가을을 탄다. 이 사람들의 두뇌를 조사해보면 세로토닌이 낮아져 있다. ‘무드 호르몬’인 세로토닌은 정확히 햇빛 양과 비례해 겨울에는 여름의 13%로 떨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계절성 우울증은 별 문제가 안 된다. 정말 두려운 것은 치료를 요하는 ‘병적인 우울증’이다.



 

미 16대 대통령 링컨은 평생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하지만 공적인 의무감이 우울증을 견디게 했다.



1860년, 51세의 에이브러햄 링컨(16대 미 대통령)은 정치 인생의 절정기에 있었다. 하지만 전당대회 후 모두가 떠난 빈 강당 구석에 앉아 있던 그는 빈 껍데기처럼 고통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그는 후일 그의 삶 전체가 도통 재미없고 몸과 마음이 무기력한 상태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우울증은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에나 찾아온다. 국내성인 13%가 우울증이고 여성이 남성의 두 배다. 중년, 특히 50~59세 사이가 자살위험군(群)이다.



다양한 우울증 원인이 있지만 낮은 세로토닌이 주원인이다. 미국 전 지역을 미항공우주국(NASA) 위성으로 측정해보니 햇빛을 많이 받은 지역의 주민이 우울증이 적고 인지능력도 높았다. 결국 계절성 우울증이건, 병적 우울증이건 햇빛이 중요하다. 그럼 이런 햇빛을 어릴 적부터 쬐면 우울하지 않고 평생 쾌활하게 살 수 있을까? 영화 ‘희랍인 조르바(1964)’에서 배우 안소니 퀸은 크레타 해변의 밝은 햇살 아래서 흥겨운 댄스를 춘다. 지중해에 사는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밝은 햇살의 흥겨움이 몸에 밴 것일까? 실제로 그리스·이탈리아의 자살률은 한국의 15%도 안 된다.



2015년 ‘현대생물학’ 잡지에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하루 16시간 빛을 쪼이며 키운 쥐보다 8시간만 빛을 쪼인 쥐가 우울증상이 더 심하고 세로토닌도 더 낮았다. 더 놀라운 것은 햇빛을 덜 받은 쥐는 나이가 들어도 세로토닌이 낮았다. 즉 어릴 적 빛을 덜 쬔 쥐는 커서도 우울해진다. 두뇌가 자리를 잡을 어린 시절에 형성된 ‘우울증 회로’가 어른이 돼서도 작동한다는 의미다. 햇빛은 세로토닌 이외에 멜라토닌이라는 수면조절 호르몬도 같이 만든다. 이 멜라토닌은 세로토닌의 보조역할을 해서 둘 다 충분히 만들어져야 잠도 푹 자고 우울해지지 않는다.



  환경과 유전자가 스트레스 저항력 결정우울증의 시작은 스트레스다. 특히 어릴 적 받은 스트레스는 성장 후 우울증·불안증을 만든다. 2015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잡지에 의하면 태어나서 하루 3시간씩 엄마와 떨어진 쥐는 우울증에 걸렸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손이 높아져 있었다. 그런데 왜 누구는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견디고 누구는 우울해지는가? 외부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능력은 환경과 유전자 차이다. 좋은 환경, 예를 들면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다면 심한 스트레스라도 별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다. 반면 선천적으로 스트레스에 약하게 변이된 유전자를 가진 사람도 있다. 세로토닌 전달유전자(SRT)에 변이가 있으면 같은 스트레스에도 세로토닌이 낮아져 우울해진다. 즉 평생 우울하게 살 확률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세로토닌을 높이는 항우울제 ‘프로작(Prozac)’이 70%만 치료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봐서 밝혀지지 않은 다른 원인도 있음을 추측케 한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자살 유전자가 존재하고 유전자가 자살 원인의 40%를 차지한다. 미 존슨홉킨스 의대 조사에 의하면 자살한 사람은 ‘SKA2’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있었다. 이 경우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에 대응하지 못해서 우울해진다. 실제로 이 유전자의 변이 여부를 조사해보면 자살 시도를 90%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우울증 쥐는 두뇌 앞부분인 전전두엽의 피질이 과도하게 예민해져 있어 작은 스트레스성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정상적인 쥐도 이 부분을 전기자극하면 우울해진다. 즉 전전두엽에 ‘우울증 회로’가 있는 셈이다. 결국 유전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외부 스트레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우울증·자살에 취약해진다. 이들을 자살로부터 구해야 한다.



얼마 전 필자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량이 전소했다. 중년 남자가 차량 뒷좌석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중도 포기하고 사라진 것이다. 한국은 1만 명당 27.3명이 자살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의 ‘자살왕국’이란 참담한 불명예를 10년째 이어가고 있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은 무슨 징조가 있을까? 느리고 멈칫멈칫한 목소리가 자살 시도자의 특징이어서 미 MIT공대 프로그램은 전화로도 자살 가능성을 진단한다. 또한 자살하려는 사람의 40%는 우울과 흥분이 뒤섞인 ‘조울증’ 상태를 보인다. 갑자기 운전을 과격하게 하고 뒤죽박죽의 행동을 보이거나 방 안을 빙빙 돌며 손을 감았다 풀었다 하는 등 돌발적이고 즉흥적 행동을 한다. 문제는 이런 전조 증상을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해서 주위 가족·친구만이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내 가족을 유심히 살피는 것이 그들을 살린다. 만약 내 가족이 이런 증상이 3주 이상 계속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텃밭을 돌보는 일은 우울증 개선·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생명체 살리면서 삶의 의미 되찾아우울증은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의 10%만이 의사를 본다. 현재 치료는 심리치료와 약물치료를 한다. 환자의 80%는 세로토닌 조절제인 ‘프로작’을 처방하며 70% 치료율을 보이고 있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세로토닌이 높아져 기분이 좋아진다. 일부 부작용, 즉 초조감·불면증이 보고되지만 자살시도가 50% 감소한다. 약물치료 이외에도 인공빛은 멜라토닌을 조절해서 불면증 해소와 계절성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 또한 뇌의 깊숙한 곳에 전기 자극을 주는 심부(深部)자극도 사용된다. 최근 광(光)유전학의 기술을 이용하여 우울증을 일으키는 부위의 뇌세포만을 빛으로 쪼이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우울증은 치료가 급선무다. 하지만 늪에 발을 들이지 않도록 평상시 예방이 최선이다.



 

햇빛을 쬐는 야외활동으로 자연·생명을 접하면 우울증을 개선할 수 있고 자살 예방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삽화 박정주]



『만들어진 우울증』의 저자 크리스토퍼 레인은 정신의학계가 수줍음이나 낯가림 같은 가벼운 증상도 과잉대응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즉 스스로 이겨나갈 수 있는 가벼운 증상에도 항우울제를 쉽게 처방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심각한 우울증은 물론 약물치료가 우선이다. 하지만 가벼운 우울증의 개선과 예방 목적으로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방법은 햇볕을 쬐며 운동하는 것이다. 하루 20~30분 정도 야외에서 가볍게 걷는 것도 우울증을 예방한다. 운동은 항우울제처럼 세로토닌을 높이고 신경세포가 자라도록 해서 해마의 기억기능도 유지하고 스트레스 호르몬도 낮추는 1석3조의 효과가 있다. 우울증 환자의 30%는 퇴행성관절염, 45%가 비만이다. 우울하니 방에만 있고 방에만 있으니 관절염·비만에 걸리고 그러하니 또 못 나가는 악순환이다. 고리를 끊어야 한다. 야외로 나가야 한다.



외동딸을 시집보낸 지인의 부인은 심하게 우울증을 앓았다고 했다.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텃밭에 나가 씨를 뿌리고 채소를 가꿨다. 이제는 웃는다. 텃밭 일은 우울증 개선·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의 97%는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한다. 또 실제로 국내 노인의 24%는 텃밭 일 덕분에 우울증이 줄었다. 햇살을 받고 몸을 움직이는 것만이 텃밭 일이 주는 혜택의 전부가 아니다. 본인의 힘으로 어떤 생명체를 살리는 일은 ‘내가 살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알려준다. ‘내가 살 가치가 없고 사라지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때 우울증 환자는 목을 맨다. 반면 내가 뿌린 씨앗들이 흙을 뚫고 새순이 올라오고 토마토가 열릴 때 그들은 가슴이 벅차오르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본인이 돌보는 화분이 있는 양로원 노인은 직원이 돌보는 화분을 가진 노인들보다 자살률이 2배 낮다. 이 효과는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텃밭 일, 반려견과의 산책은 햇볕 쬐기·운동·생명체를 돌보는 1석3조 행위다.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야기했다. ‘자연의 복판에 살면서 자기의 모든 감각을 조용히 간직하는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암담한 우울이 존재할 여지가 없다.’ 자연의 치유능력을 십분 이용해 우울증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고 예방하자.



 



김은기 인하대 교수ekkim@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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