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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로 주입하는 역사와 독서로 깨우치는 역사

중앙선데이 2015.11.01 00:24 451호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1996년 나는 미국 하버드대에 방문교수로 가 있었는데, 한국계 학생들과 대화의 모임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보다 30년쯤 전에 대학원생으로 하버드에 있었고, 그 후에도 연구원으로 그곳에 머문 일이 있었다. 처음 갔을 때, 그리고 두 번째 갔을 때까지도 하버드에 재적한 학부 학생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95년에는 그 수가 400명에 이른다고 들었다. 이런 변화는 그간 바뀌게 된 한국의 처지에 관계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빠른 삶 느린 생각] 역사 교과서 논쟁

학생들이 듣고자 한 것은 한국의 국내 사정이었는데 그때 화제가 되었던 것 중에는 지금도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들이 있었다. 첫 물음의 하나는 소위 ‘식민지 근대성’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였다. 근대 국가로에의 한국의 진입이 식민지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미국의 사학계에 등장한 개념이 학생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 것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을 바르게 설명하는 데는 역사적 연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식민지 근대성’, 또는 ‘식민지 근대화’는 용어 자체에 들어 있는 모순만으로도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적어도 20세기 후반의 시점에서, 식민지라는 개념이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 ‘근대성’ 또는 ‘근대화’는 아직까지는 역사의 보다 발전된 단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념이다. 서구의 이념사에서 이 말은 대체로 사회와 경제의 합리화, 그리고 정치질서의 합리화를 말하고,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와 그 법질서의 수립, 그리고 그에 따른 보다 나은 삶의 질서의 출현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을 식민지화한 일본이 이것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말인가?



식민지 안 됐으면 근대화도 불가능했나이 모순의 상황 속에서 근대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한국인을 위한 게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는 걸 말하는 것은 일단의 설명이다. 사실 연구들을 보면, 식민지 근대성을 간단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학자들은 거의 없다(신기욱, 마이클 로빈슨 교수 편찬의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Colonial Modernity in Korea)』 참조). 그러나 그것이 부정적인 의미를 동반한다고 하더라도 근대에로의 진입이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의하여 시작되었다는 것은 한국인 그리고 한국에 뿌리를 둔 청년들로서는 그들의 자존심 그리고 정체성을 상하게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식민지 근대화는 인도에도 해당되는 일인데, 여기에서 그것은 보다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아마 개념 자체도 이러한 연구에서 나왔을 것이다).



학생들의 질문에 대하여 나는 구체적인 사실보다는 이론적인 틀에서 그 현상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의 근대성이 기정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근대화는 불가능한 것이었을까? 근대를 한국인 스스로 이루어낼 수는 없었을까? 한국에도 그것을 이룩해낼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면(19세기 후반으로부터의 여러 혁신적 사상과 운동의 대두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제국주의 통치는 그 능력을 억압하고 박탈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그것이 민족의 주체성, 즉 근대화의 내적 동력이라고 할 주체적 결정과 행동의 힘을 박탈해 갔다면, 식민지 근대성을 긍정적인 성취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는 이러한 물음을 물어보면서 생각하는 게 옳을 것이다. 학생들은 이러한 답에 어느 정도 마음을 놓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다시 마음 불편한 말을 첨가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에는 ‘만약 이렇게 되었더라면’은 없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이미 일어난 일은 있는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과 미래의 삶이 새로운 노력을 요구한다면 출발점이 현실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역사의 참다운 의미는 과거보다도 인간의 삶의 현장인 현재와 미래에 있고, 이를 위한 작업은 주어진 현실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첨가한 것은 이런 내용이었다.



민주주의 지키면서 산업화 할 수 없었나 다음의 또 하나의 질문은 박정희 군사정권하에서 이루어진 산업화·근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근대화가 경제와 기술의 근대화를 말하기도 하지만, 위에서 시사한대로, 보다 인간적인 사회 이상으로서 민주주의의 구현을 말한다면, 군사정권하에서 이루어진 산업화는 이러한 보다 총괄적인 이념에는 모순된 것이었다. 서양의 역사가들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근대성을 향하는 두 개의 혁명이라고 말한다. 군사정권하에서의 산업화는 근대성의 성취를 위한 하나의 조건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은 민주주의 이념에 모순되는 과정이었다. 그것은 억압과 고통과 죽음 등의 불행한 일들을 수반하였다. 그러니만큼 저항이 갈수록 격렬해진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때그때의 시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상황에 따라 잘못된 것에 저항하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양심의 표현이었다.



여기에서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산업화에 다른 가능성은 없었던 것인가 하는 것이다. 군사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면서 근대화를 이룩할 수는 없었을까? 4·19로 수립된 민주정부도 그 나름의 경제발전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군사정권하에서의 산업화와 근대화는 이미 이루어진 사실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그 결과로 볼 때, 역사적 과업이 되었다. 전적으로 옳다고도 그르다고도 분명히 말할 수 없는 두 개의 정치적 과업의 목표가 맞부딪친 것이 박정희 시대의 비극이었다(비극을 서양 사상의 독특한 발견 또는 발명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이에 대하여, 두 개의 선(善), 두 개의 정의, 또는 두 개의 악(惡)이 충돌할 수 있고 선이 악을 낳고 악이 선을 낳을 수 있는 것이, 인간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우리 사유의 관습이다).



모순의 변증법 속에 움직이는 것이 역사 다시 묻건대 군사정권의 압력이 없이 참으로 근대화가 가능했을까? 적어도 소위 ‘압축’ 근대화는 어려웠을지 모른다. 급하게 진행되는 국가적 과업은, 근대화를 포함하여 국민의 동원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서 일어나기 쉬운 것이 국가와 국민 사이에 일어나는 긴장이다. 이것은 근대화를 이룩한 유교 국가들에서 두루 볼 수 있는 일이었다(국가의 장기 계획과 그에 따라 동원되는 국민의 고통은 중국의 만리장성 사업을 주제로 한 카프카의 단편 『만리장성 건설』에 잘 나와 있다. 이 환상적 단편소설은 국가적 계획과 거기에 동원되는 국민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큰 간극을 실감하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막대한 국민적 고통의 소산인 만리장성이 문화유산으로 변모되었다는 역설이다).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다 보면, 쉽게 하나로 거두어들일 수 없는 모순의 변증법 속에 움직이는 것이 역사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경제성장이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일어난다는 정치이론가들의 설명도 그러한 테두리에 들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경제 성장은, 강권에 의하여 추진되는 경우에도, 이미 그 안에 민주주의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에 수록되어 있는 논문들을 보면, 식민지 근대화는 일본의 제국주의 통치자들의 업적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주장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식민지 근대화도 한국인을 동원하여야 한다. 여러 면에서 그것은 한국인과의 긴장과 타협을 불가피하게 한다. 한국인 기업가가 생기고, 노동자가 동원되고 계급의식 그리고 노동조합 운동이 싹트기 시작한다. 또 여성의 평등 의식이 생겨난다. 그리고 문화의 근대적 진전과 업적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군사정권하에서의 산업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산업화의 진행에 따라 그것은 담당자를 동원하면서 동시에 저항 세력을 성장하게 한다. 그리고 성장과 고통 속에서 사회가 성숙한다.



 



상상력을 움직이게 하는 독서 총량이 중요 그런데 역사의 복합성을 생각하다 보면, 또 한 가지 정치와 이념으로 삶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회의가 생겨날 수 있다. 얼마 전에 박경리문학상의 올해 수상자로 이스라엘의 작가 아모스 오즈가 선정되고 수상식에서는 그의 수상 강연이 있었다. 오즈의 강연은 이스라엘의 정치 상황 그리고 그 안에서의 작가의 사명을 말하는 것인데,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내용이 많았다. 강연은 일종의 우화로 시작되었다. 끊임없이 진동하고 불을 뿜어내고 천둥소리를 내는 화산의 산자락에 마을이 하나 있다. 산자락 마을의 사람들이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화산 때문이 아니다. 한 젊은이의 경우, 어떤 미망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 미망인은 자신의 딸이 두 배가 되는 나이의 사람을 만나고 있기 때문에, 그 나이 든 사람은 시의원 당선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디에 위치해 있든지, 사람은 자기의 삶-화초에 물을 주고 아이들을 기르고, 자동차 살 것을 생각하고 하는 일상적인 삶을 살게 마련이다. 작가는 이러한 삶에 주목하여야 한다. 화산이 있어서 재난이 오고, 절망을 가져 온다고 하여도 화산이 인간의 나날의 삶을 완전히 지배하게 하여서는 안 된다고 오즈는 말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큰 문제에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참혹한 일, 부정의, 억압, 살인이 벌어지는 세계에서 아름다운 석양만을 그린다면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버리는 일이다. 그러나 항의를 정치 이데올로기화하고 그것으로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하여 해답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그것은 작가로서의 사명-일상적 삶의 현실을 지켜야하는 사명을 저버리는 일이다. 작가의 사명은 집단적 증오의 언어가 퍼져 가면, 거기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증오의 언어는 증오의 행위로 연결된다. 작가는, 너와 나를 가리지 않고, 공감하고 타협하고 평화를 이루게 하는 일에 마음을 모아야 한다. 오즈가 말한 것은 작가의 의무-특히 이스라엘의 작가의 의무이지만, 이것은 모든 지역에 또 모든 사람에 두루 해당된다.



역사 교과서 논쟁을 보면, 위에 말한 것들, 역사의 복합성, 그리고 오즈가 시사하는 바 큰 역사와는 별개의 역사-작으면서, 그의 표현으로, 그 나름의 ‘장엄함’을 가진 인간들의 나날의 삶의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 역사가 일정한 추상적 궤적을 따라 움직인다고 하는 생각이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삶의 이야기로서의 역사이다. 나는 영문학도로서 영미의 역사를 외국에서 수강한 일이 있다. 수업에서는 교과서 이외에 강의에 관련된 전기·소설·논술·문서들을 읽어야 한다. 대학 이하의 수업에서도 방법은 비슷한 것 같았다. 이러한 수업의 목표는, 역사의 흐름에 대한 일정한 관점의 해석보다는, 당대의 삶의 대체적인 모습과 분위기를 알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학생 스스로의 독서로써 가능해지는 것이지, 교과서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수업에서는 교과서가 아니라 상상력을 움직이게 하는 독서의 총량이 중요하다. 역사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교과서보다는 수업의 방법일지 모른다. 이러나 저러나 필요한 것은 역사에 대한 보다 넓은 접근이 아닌가 한다.



 



김우창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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