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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하는 액션, 두 神父의 악령 퇴출기

중앙선데이 2015.11.01 00:24 451호 30면 지면보기
2015년 서울 명동 한복판. 명동성당부터 화장품 가게까지 분명 익숙한 공간이 비춰지는데 낯선 단어들이 후두둑 튀어나온다. 구마, 퇴마, 사제, 부제 등등. 하지만 영화는 관객이 당황하기도 전에 자막으로 예습을 시키는 기민함을 보인다. ‘구마: 사령의 사로잡힘에서 벗어나게 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예식’, ‘부마자: 사령이 몸 속 내부에 존재하는 사람’, ‘12형상: 부마의 징후들로 장미십자회에서 일련번호를 분류한 사령의 종류’. 그렇게 몇 개의 키워드를 집어든 관객은 이제 영화가 만든 세상에 안착할 준비를 마친다.



‘검은 사제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교통사고 이후 의문의 증상에 시달리는 소녀 영신(박소담)을 구하기 위해 두 신부가 구마예식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사령을 쫓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것도 단순 사령이 아닌 기근과 전쟁 등 온갖 재난에 한가운데 있는 12형상 중 하나인데. 그래서 김 신부(김윤석)는 음기가 가득한 날을 택일하고 심혈을 기울여 보조사제 찾기에 나선다. 구마가 진행되는 동안 악령이 쏟아내는 라틴어와 중국어 등을 적어낼 수 있는 지성과 어떠한 상황에도 용감하고 대범하게 임할 수 있는 체력을 갖춘 사람이라야 한다. 거기에 영적으로 가장 민감한 기질을 지닌 호랑이띠 중 골라야 하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화 ‘검은 사제들’

그렇게 낙점된 사람이 바로 최 부제(강동원)다. 남들은 4년이면 족할 신학교를 7년이나 다니고 있고 교과서 대신 만화책을 보고 월담을 일삼아 ‘쏘맥’을 말아먹을지언정 물러설 수 없는 이유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잇단 돌발 행동으로 교구의 눈 밖에 난 김 신부와는 의외의 호흡을 자랑한다. 처음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시하는 한편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단 마음이 컸지만 신부인 듯 신부 아닌 신부 같은 그야말로 이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임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말로 하는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장재현 감독의 진가는 이때부터 빛을 발한다. 버릴 장면 없이 공고하게 쌓아온 새로운 세계에서 40여 분간 펼쳐지는 구마예식은 놀라운 몰입감을 선사한다. 어느 것 하나 틀어지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긴박한 서사 위에 때론 악마로 때론 짐승으로 변하는 영신의 모습은 스크린을 압도하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악령의 존재를 밝혀내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의 치열한 기 싸움. 그 아래로 흐르는 바흐의 선율과 끊임없이 읊조리는 기도 소리는 묘한 층위를 형성해 점점 더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미 할리우드에서 많이 나왔던 소재기 때문에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었다”는 감독의 전략도 주효한 듯하다. 명동 어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다락방이나 교황 방한을 맞아 합창 연습을 하는 모습 등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은 시공간에서 벌어진 덕에 당황하지 않고 그 안에 들어설 수 있다. 무속인이 굿을 하고 바로 뒤이어 신부들이 들어가 구마예식을 하는 모습도 우리네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기도 하다. “21세기에 가톨릭이 그런 걸 한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봐”라고 신부들은 걱정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상황이 되면 이 신 저 신 찾아 헤매는 게 바로 우리의 실상이기에. 그리고 사실 딸을 위한다고, 아이를 위한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남을 구함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닌가.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이들이 무엇을 쫓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강동원이 사제복을 입고 나온다니 그게 악령이 됐든 드라큘라가 됐든 일단 보러 가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힘을 뺀 그의 담백함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박소담이라는 배우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니 말이다. 지난해 각종 영화제에서 단편상 및 감독상을 휩쓴 단편 ‘12번째 보조사제’를 장편으로 만들었다. 5일 개봉.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사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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