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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참 예뻤다 캔버스에 담아둘 만큼

중앙선데이 2015.11.01 00:18 451호 32면 지면보기

저자: 이주헌 출판사: 아트북스 가격: 1만9500원



“아는 만큼 보인다(知則爲眞看)”는 말이 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그 대상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그만큼 가깝게 느껴지고, 한발자국 다가가면 그만큼 더 보이는 법이다.


『그리다, 너를-화가가 사랑한 모델』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그리다, 너를』은 교과서에서 혹은 외국의 어느 미술관에서 본 수많은 명작 속 ‘그녀’들에 관한 이야기다. 때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요부처럼 관능적인 포즈를 취하고, 때로는 성모 마리아처럼 천상의 미소를 선물했던 여인들. 화가와 그림의 미술사적 존재가치 때문에 그저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그들이 실제로는 화가에게 위대한 창조활동의 영감을 준 ‘뮤즈’였음을 이야기한다.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모가지가 긴’ 여인은 그의 아내 잔 에뷔테른이다. 코코넛처럼 하얀 속살과 푸른 눈동자를 지닌 잔의 모습을 조각가 자크 립시츠는 “고딕적인 외모”라고 표현했다. ‘고딕 성당이 주는 고고하고 순결한, 또 신비로운 인상’(167쪽)을 그녀에게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병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서른세 살의 모딜리아니와 벼락같이 만나 뜨겁게 사랑하게 된 건 잔이 겨우 열아홉 살 때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지만 이들이 함께 한 건 불과 3년뿐. 결핵을 앓던 모딜리아니는 1920년 1월 24일 뇌막염으로 사망한다. 장례식은 3일 후인 27일.



하지만 잔은 남편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 전날인 26일 뱃속에 있던 8개월 된 둘째 아이와 함께 아파트 5층에서 뛰어내렸기 때문이다. 3년간 열렬히 사랑했고 그 사랑의 결과로 26점의 초상화를 남긴 두 사람은 이렇게 죽음까지도 함께했다.



빛과 그림자의 마술사 클로드 모네의 아내 사랑도 극적이다. 아내 카미유가 자궁암으로 죽자 그는 침대 위 주검이 된 아내의 모습을 그린다. 제목은 ‘영면하는 카미유’(1879). 이후 모네는 죽은 부인까지 모델로 삼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지만 독자는 상상할 수 있다. 아내의 마지막 모습을 캔버스에 담던 남편의 뒷모습이 어땠을지.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처럼 너무나 유명한 커플의 사랑 이야기는 책 읽는 재미가 덜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파리 국립 로댕 미술관에 ‘클로델의 방’이 설치된 이유를 알게 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옷 입은 마하’와 ‘옷 벗은 마하’를 그린 고야, ‘비너스의 탄생’으로 유명한 보티첼리처럼,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궁금증이 생긴 경우도 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랑의 표식들을 보면 이들 화가와 모델들의 관계는 분명 예사롭지 않다. 한데 상식적으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어쩌면 이 그림들은 ‘짝사랑’에 빠진 남자가 정성들여 쓴 러브레터가 아니었을까.



이주헌은 책의 서문에서 “미술 감상은 무엇보다 인간 읽기”라고 말한다. 화가와 그녀들의 치열한 사랑과 고뇌를 읽는 것이 미술사 지식보다 더 큰 감동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녀는 다만 하나의 ‘그림 속 모델’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녀는 우리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지나쳤던 그림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17명 화가들의 대표작과 그녀들의 실제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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