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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연재소설] 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 <17> 폴리페서의 비밀

온라인 중앙일보 2015.11.0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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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임수연]

폴리페서는 갑자기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수리와 사비, 마루를 끌고 넓은 광장으로 데려갔다. 아이들은 광장 가운데에 내팽개쳐졌다. 광장엔 이미 많은 거인들이 도열해 있었다. 마치 출정 직전의 전사들의 행렬 같았다. 수리는 아직까지 의연했지만 사비와 마루는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폴리페서는 연단으로 올라갔다. 모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저 바람소리만 오갔다.

수리 일행을 광장으로 끌고 간 폴리페서는
자신들이 우주의 주인이 될 거라고 선언한다
그에 대적하던 리키니우스와 수리는
싸움을 거는 대신 잽싸게 도망을 치는데

“뭐야? 부칸에 온 것 같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로봇 같잖아?”

두려움을 감추려는지 괜히 우스갯소리를 하는 마루에게 수리는 “부칸? 하하” 하고 장단을 맞추었다.

“지금 웃음이 나오니? 죽을지 살지 모르는데?”

사비는 수리와 마루를 매섭게 흘겨보았다. 골리쌤은 담담한 척했다.

“사실은, 우리가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공룡·올름 빼고 모두 로봇 같았다고. 쳇.”

잔뜩 허세를 잡은 폴리페서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우주를 창조한 생명체다. 우리가 우주의 주인이었다.”

“정말 훌륭한 연설이야. 천지창조를 다시 쓰고 있군.”

수리는 비아냥거렸다. 폴리페서는 계속 떠들었다.

“네피림이 거대한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는다면 그건 잘못된 거다. 네피림은 그저 팬옵티콘일 뿐이다. 물론 그들이 우주의 눈이긴 하다. 현재까지는.”

움직임이 없던 거인들이 발을 쿵쾅 쿵쾅 굴렀다.

“그리고 비밀이 있다. 팬옵티콘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다. 나, 폴리페서가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비밀이 있지. 바로 네피림은 우리와 같은 생명체가 아니라는 거다.”

거인들이 이제는 아우성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비밀, 저 아이, 수리가 네피림을 죽이고 우리가 우주의 진짜 주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네피림이 만든 가짜 역사, 나비가 노래하고 있는 가짜 역사를 없앨 것이다.”

폴리페서는 부르짖었고 거인들도 함께 부르짖었다. 거인들의 발구르기는 점점 더 심해졌다. 먼지가 시야를 가려 보이지 않았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목이 따가웠다. 그때 어디선가 리키니우스가 나타났다. 모두 놀란 표정으로 리키니우스를 쳐다보았다.

“안 죽었어? 할배?”

아직도 우스갯소리를 하는 마루였다.

“역사가 어떻게 죽어? 마루야. 머리 좀 굴리고 살자.”

사비는 마루의 똥배를 척 소리 나게 쳤다. 마루가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아이고, 내 빈 배, 허기진 배, 아이고.”

리키니우스는 곧 쓰러질 듯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폴리페서에게 다가갔다. 간당간당한 모가지를 길게 빼고 폴리페서를 노려보며 말했다. 눈빛만큼은 창창했다.

“넌 창조의 역사를 바꾸려 하고 있다. 역사는 누구 한 사람에 의해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걸 행한 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폴리페서는 소름 돋는 웃음을 웃었다.

“으하하. 그 역사를 누가 창조했는데? 네피림의 역사? 거인들의 역사? 누이들의 역사? 저 아이와 같은 인간들의 역사? 역사가 많기는 하네. 그중에 어떤 역사를 말하는 거지?”

폴리페서는 물안경 때문에 그의 감정을 좀처럼 읽을 수 없었다.

“수리!”

수리가 눈빛을 날카롭게 세웠다.

“넌 누구의 역사를 알고 싶은 거지?”

“우리 인간들의 진짜 역사죠. 누가 우주의 주인이었는지 누가 우리 인류의 역사를 창조했는지, 롱고롱고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수리는 당당했다.

“아, 롱고롱고… 그걸… 풀겠다고? 좋아. 그 비밀을 풀어봐. 너는 아마도 감당하기 어려운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될 테니까. 인간들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알게 될 테니까. 흠, 이거 재미있어지는걸?”

“폴리페서!!”

리키니우스의 음성은 벼락같았다. 리키니우스의 몸뚱이는 한 줌 모래처럼 가벼웠지만 그의 용감함은 바위 같았다.

“반드시 대가를 치르리라. 넌 어떤 우주에서도 너의 뼛가루조차 찾을 수 없을 거다.”

“당신 같은 늙은이가 상관할 일이 아닐 텐데. 목숨이 아깝지 않아?”

폴리페서는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징그러운 뱀의 속삭임이었다.

“역사에 무슨 목숨이 있어? 역사는 죽지 않아. 나비는 우리 모두의 역사를 노래로 저장해왔다. 나는 비밀의 역사를 나비에게 전달해왔다. 그리고 수리...”

폴리페서는 리키니우스의 말을 끊었다.

“그깟 이상한 문자가 뭐라고?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내 말을 믿어, 난 명색이 교수야. 교수.”

수리가 폴리페서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사비와 마루는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골리쌤은 썸의 다리통을 더욱 세게 부여잡았다.

“내가 본 롱고롱고 문자는 우리 모두의 역사를 압축시켜 놓은 거예요. 그 비밀을 아무도 풀지 못하고 있었죠. 나는 롱고롱고가 왜 미해독 문자로 남게 되었는지, 그 비밀을 찾아 아빠를 따라왔어요.”

리키니우스가 수리를 쳐다보았다. 옅은 미소가 지나갔다.

“그 비밀을 풀지 못하도록 하는 방해자가 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깨달았어요.”

폴리페서는 어색한 웃음을 계속 웃었다.

“그런데 항상 당신 같은 사람이 문제군요.”

수리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아빠가 지켜줄 거라고 믿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

수리는 폴리페서의 면전에 대고 큰소리로 또박또박 얘기했다.

“정치적인 사람! 자신의 탐욕을 위해 주변의 모든 사람과 상황을 이용하는 사람. 더 중요한 건 그저 자신만 망하면 되는데, 다른 사람들까지 망하게 하는 사람.”

폴리페서는 의외로 침착했다.

“네가 감히 날 가르치겠다고? 으하하하. 역사는 내가 만든다.”

수리는 눈에 핏발이 서도록 그를 노려보았다.

“넌 네피림을 죽이지 못하면 너의 아빠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들을 나에게 줘야 할거다.”

폴리페서의 물안경이 수리의 얼굴을 덮칠 듯이 다가왔다. 사비가 수리의 팔을 끌어당겼다.

“일보 후퇴. 일보 후퇴.”

마루가 슬쩍 일어났다.

“저는요 정치적인 거에 관심 없고요 역사도 제일 싫어해요. 역사 시험은 그냥 찍는다고요. 그런데 죄는 미워해도 역사를 미워하지 말랬어요. 그리고 교수라고 하셨는데 어느 대학 교수예요?”

마루가 이빨을 드러내고 씩 웃었다.

“마루, 저 아이 미친 거 아냐?”

골리쌤이 부들부들 떨었다.

“자기야, 자기가 좀 해결해 봐. 우리 죽을지도 몰라.”

그러나 썸도 기가 푹 죽어 단정히 무릎 꿇고 앉아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난 모가지가 길어서. 치명적 약점이야.”

썸의 긴 모가지는 이미 굵고 튼튼한 동아줄로 포박당해 있었다.

폴리페서가 썸에게 다가갔다. 썸은 모가지를 바닥에 쿡 박았다. 폴리페서는 또 사비에게 다가갔다.

“너는 인간인가? 기계인가?”

사비는 말하지 못했다. 오금이 저렸다.

“너희 인류는 그다지 착하지 않아. 그것만 알면 된다,”

그때였다. 볼트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전광석화 같은 속도였다. 볼트가 움직일 때마다 전류가 번쩍번쩍했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볼트를 잡지 못했다.

“수리, 넌 그 숫자의 비밀을 풀어라. 내가 그 숫자의 배열을 바꾸어 놓을 테니까.”

“당연히. 내 임무니까.”

수리는 질 수 없다는 듯이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폴리페서도 맞장구쳤다.

수리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폴리페서는 네피림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네피림과 약속했어. 그가 꽃미남은 아니지만 약속은 지킬 거야. 아빠를 풀어준다고 했어.”

“으하하. 인간들은 원래 이렇게 순진한 거야? 자아, 날 봐, 내가 교육해줄게. 네피림은 그렇게 착하지 않아. 내 교육을 받으란 말이야.”

수리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금 폴리페서와 극단적으로 싸운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좋아. 너와 딜 하겠다.”

그때 하늘에 네피림의 눈이 활짝 열렸다.

“나머지 숫자를 찾았겠지? 내놓아라.”

수리가 폴리페서를 보았다. 폴리페서가 네피림 앞에 공손히 섰다.

“제가 그 비밀을 꼭 알려 드리겠습니다. 누이들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황금 채굴량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황금의 양이 줄어든다면 널 의심할 것이다. 올름들이 누이들을 감시하고 있다.”

폴리페서는 네피림에게 고개를 숙였다. 네피림의 눈은 굳게 닫혔다.

“누이들까지 이용하는 거야?”

“이용이라니? 그들은 기계야. 기계는 이용하라고 있는 거야.”

수리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악마!”

순간 거인들이 수리와 아이들을 에워쌌다. 수리가 사비와 마루에게 눈짓을 주었다. 골리쌤에게도 눈짓을 주었다. 수리가 주머니에서 도끼를 꺼내 썸에게 획 던졌다.

골리쌤도 사비도 “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날아간 도끼는 썸의 모가지에 걸린 두툼한 동아줄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그러자 썸이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어디선가 볼트의 음성이 들렸다.

“형. 수리 형~”

“어서 달려.”

수리의 고함과 함께 아이들은 거인들의 다리 사이로 요리조리 피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볼트의 음성이 들리는 쪽으로 무작정 달려, 어서,”

달리는 아이들을 향해 볼트의 음성은 계속 이어졌다.

“형, 형!”

거인들은 아이들을 잡으려고 했지만 잡을 수 없었다. 너무 작아서 용케 빠져나가고 있었다. 수리는 썸을 불렀다. “썸~” 외침과 동시에 썸의 등에 탔다. 그리고 나머지 아이들도 썸의 등에 탔다.

“자, 달려.”

수리가 조종하는 썸은 무거운 공룡이 아니었다. 빠른 날짐승 같았다. 썸은 거의 날다시피 달렸다.

“야호! 야호!”

아이들은 신이 났다.

“아참, 리키니우스!”

수리가 뒤를 돌아보았다. 폴리페서는 리키니우스를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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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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