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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사에안이 뭔데?" 한일 최대 현안 위안부 문제 Q&A

중앙일보 2015.10.2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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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성남시청 광장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소녀상을 쓰다듬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나흘 앞으로 다가온 한·일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가장 핵심적인 현안은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다. 지난 3년 6개월 동안 양국 간 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했던 것도 위안부 문제에 있어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것이 주요한 이유였다. 이에 대한 양국의 입장과 어떤 해결 방법이 논의되고 있는지 등을 알아보자.

Q. 일본군 위안부 문제, 어떻게 수면 위로 떠올랐나.

A.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 것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97년 사망)가 자신이 위안부로 강제동원됐단 사실을 처음 공개 증언했을 때부터다. 한국인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철저히 “민간업자들이 저지른 짓”이란 입장을 고수했지만, 정부가 개입했다는 역사적 증거들은 속속 드러났다. 92년 1월 한국을 방문한 미야자와 총리는 노태우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종군 위안부를 모집하고 위안소를 경영하는 일에 구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은 이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임을 알게 됐다”고 인정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위안부를 동원할 때 ‘강제성’이 있었다는 사실은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금전적인 보상 문제에 있어서도 “1965년 한일협정으로 위안부 문제는 이미 해결됐고,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됐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Q. 양국 정부는 문제가 불거진 초기에 어떤 노력을 했나.

A.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이상 일본에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한국 정부가 직접 지원 조치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일본 정부는 돈으로 보상하기보다 실체를 조사하고 책임을 인정하라”는 간접적인 압박이었다.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8월 위안소 설치와 관리에 일본군이 관여했단 사실,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있었단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는 ‘고노 담화’를 발표하게 된 배경이다. 이런 과정에서 일본의 양심세력이 움직이면서 95년7월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아시아여성기금이 만들어졌다. 일본 총리의 사과 편지와 함께 위로금과 의료복지 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취지였다.

Q. 아시아여성기금은 왜 해결책이 되지 못했나.

A. 정대협 등 관련 시민단체와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 돈은 받을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법적 책임은 회피한 채 인도적 책임 차원에서 위로금을 지급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일본 측은 그럼에도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1997년 1월 수령을 원하는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500만엔의 금전 지급을 강행했다. 하지만 대다수 피해자들이 이를 거부하면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의 뜻을 무시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Q. 위안부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에 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A. 2005년8월 정부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당시의 외교문서를 전면 공개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런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청구권협정의 해결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011년8월 헌법재판소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개인의 배상 청구권 확보를 위해 일본 정부에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부작위(不作爲·마땅히 해야 할 법률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라는 결정을 내렸다. 2011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 교토를 방문해 노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측의 결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노다 총리가 “이미 법적으로 해결된 문제”라는 기존 입장에 더해 소녀상 철거까지 요구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이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소녀상이 세워질 것”이라고 맞받으며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정상회담이 마무리됐다.

Q. 기준처럼 자주 거론되는 ‘사사에안’은 무엇인가.

A. 2012년 사사에 겐이치로 당시 외무성 사무차관이 방한해 제시한 안이다. ▶일본 총리의 직접 사과 ▶주한 일본 대사관의 피해자 면담 및 사과 ▶일본 정부의 예산을 통한 피해자 보상 등이 주요 내용이다. 정부는 이로썬 충분치 않다며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이어 일본 민주당 정부가 자민당 정부로 바뀌면서 없던 일이 됐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 사사에안을 기준으로 어떤 부분을 가감해야 할지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Q. ‘일본 정부의 보·배상’에 대해 의견 차가 있다고 하는데 보상과 배상의 차이는 무엇인가.

A. 법률적으로 국가 배상은 국가나 국가공무원의 불법 행위 때문에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을 의미한다. 국가 보상은 넓은 의미로는 손실에 대한 보전 전체를 일컫는 말이고, 좁은 의미로는 국가의 적법한 행위로 인한 손실 보전을 의미한다. 즉, 일본 정부가 배상을 한다는 것은 위안부를 불법적으로, 강제적으로 동원하고 위안소 운영에도 관여했다는 ‘형사적 책임’을 인정한 결과가 되는 것이고, 보상을 한다고 하면 법적 책임 인정의 성격은 약해지는 측면이 있다.

Q. 한국·일본 정부와 위안부 피해자 시민단체의 입장은 무엇인가.

A. 한국 정부는 쉽게 말해 ‘사사에안+α’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 등을 명확히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 인정은 절대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예산을 투입한 위로금 명목의 피해자 지원금 지급에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편이다. 하지만 이로써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한국이 선언하길 원하고 있으며, 소녀상 철거도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특히 소녀상 철거에 대해선 “민간에서 하는 일”이라며 의제로도 올리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 관련 시민단체들은 일본의 법적 책임 인정과 국가 배상의 형식으로 금전적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고수하고 있다.

Q.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까.

A. 쉽지 않다. 당초 한·일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하는 것이 늦어진 이유도 일본 측이 위안부 문제는 의제로 다루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정상들이 만나 획기적으로 의견 차를 좁힐 가능성은 크지 않다. 외교가에서는 처음 한국을 방문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선물’을 갖고 올 수도 있다고 보고 있지만, 아베 총리의 평소 성향을 보면 이 역시 가능성은 작다. 아베 총리는 특히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부분에 있어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로 거부 반응를 보인다고 한다. 국제사회에 “일본이 한국인 여성들을 납치해 짐승처럼 끌고갔다”는 식으로 비춰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향적인 역사 인식이 담긴 역대 내각의 여러 입장 표명 중에도 유독 강제동원을 처음 인정한 고노 담화 흔들기에 집중했던 이유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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