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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사실 담는 역사 교과서 만들자면서 사실 아닌 말폭탄 쏟아내는 여야

중앙일보 2015.10.29 01:29 종합 1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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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구
정치국제부문 기자

28일 국회에서 열린 야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토론회’ 도중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나오자 주위로 기자들이 몰렸다. 문 대표가 전날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결의대회’에서 “황우여 사회부총리가 내게 교과서 국정화는 자기 뜻이 아니라 윗선의 뜻이라고 말했다”고 한 발언의 진위 때문이었다. 교육부는 해명 자료에서 “황 부총리는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이 없음을 강력히 항의했다”고 부인했다. “문 대표가 (황 부총리에게) ‘정치적 표현이었으며 (내가 사실을) 곡해했다’고 말했다”고도 주장했다. 이날 국회에 나온 황 부총리는 “서로 금도를 지켜야 한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문재인 ‘윗선 발언’ 진위 논란 되자
“황우여와 사적 대화” 말꼬리 흐려
김무성 “역사학자 90% 좌파” 주장
이정현 “적화통일” 막말 예결위 파행


 이에 “정말 그런 대화가 있었느냐”고 묻는 기자들에게 문 대표는 “사적인 대화였다. 황 부총리를 더 이상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황 부총리가 사석에서 그런 발언을 했다는 뉘앙스였다. 그러면서도 “자꾸 키우지 말아달라”고 했다.

 둘만의 대화에서 서로 말이 다를 경우 뭐가 진실인지 알긴 어렵다. 하지만 광화문광장에 모인 15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한 발언을 없었던 일처럼 지나가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7일 재외동포정책 포럼에서 “역사학자의 90%를 좌파가 점령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에도 “국사학자는 90%가 좌파로 전환됐다”고 주장했다. 역시 검증되지 않은 발언이다. 이명박 정부 때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23일 한 인터뷰에서 “정부에 동의하지 않으면 좌파라고 몰아붙이는 모양인데 어떻게 역사학계의 90%가 좌파냐”고 되물었다.

 확인 안 된 주장을 쏟아내는 것만으론 모자란지 ‘막말 경연’도 벌어지고 있다.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지난 26일 서울 동숭동 교육부의 교과서 TF 사무실로 달려간 야당 의원들을 ‘화적 떼’에 비유했다. 같은 당 이정현 최고위원은 28일 국회 예결위에서 “적화통일에 대비해 어린이들에게 교육을 시키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교과서를 가르치려 하느냐”고 말해 회의가 파행하기도 했다.

 새정치연합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놓고 “연설을 듣다 보면 정신적인 분열 현상까지 경험하게 된다”(주승용 최고위원)는 말이 나왔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청와대 5자회동 당시 얘기를 꺼내며 “대통령께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것이 교과서의 어떤 부분인가’라고 물었더니 ‘책을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답했는데 대통령은 무속인이 아니다”고 했다. 같은 당 안민석 의원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나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은 도긴개긴”이라고 주장했다.

 여야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며 역사 교과서를 놓고 다투고 있다. 그러나 다툼의 양상은 지나치게 ‘비교육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형구 정치국제부문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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