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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린데만의 비정상의 눈] 진정한 신사란 남을 돕는 사람

중앙일보 2015.10.29 00:47 종합 3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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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린데만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이번에 운 좋게 연기에 첫 도전을 하게 됐다. 어떤 월·화 액션로맨틱 드라마에서 매너와 예의, 토론을 가르치는 신사적인 30대 교사 역할을 맡게 됐다. 원래 연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드라마의 콘셉트에 마음이 끌렸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리샤오룽(李小龍)과 청룽(成龍)을 좋아했으니 액션 장면을 한 번 찍고도 싶었다. 나만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고마운 기회다. 감독님은 내게 “방송에서 신사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운동도 하고 있으니 연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 준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셨다. 영광이지만 그만큼 부담도 크다.

 솔직히 말하면 신사라는 칭찬을 듣는 바람에 콧대가 좀 높아진 것 같다. 괜히 영국 신사인 007의 행동과 말투를 공부하게 되고 옷차림부터 자세, 포도주 등등 별걸 다 연구하게 됐다. 어떤 바지에 어떤 셔츠가 어울리며,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옷을 어떻게 입으면 캐주얼하면서도 깔끔해 보이는지 등등 여러 가지를 갑자기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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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주 전 30세 생일을 맞아 독일 친구 3명과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여행을 떠났다. 미국에 간 것도, 화려한 도시를 찾은 것도 처음이었다. 크고 반짝거리는 불빛,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고급 호텔, 상상을 넘어선 엔터테인먼트. 처음부터 끝까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이번 여행이 최근에 배운 ‘신사 모드와 매너’를 직접 보여 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매일 깔끔한 구두에 말끔한 셔츠 차림으로 다니다 보니 신사의 품격이 저절로 갖춰지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여성이 지나가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어 주고 괜히 더 신사인 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차를 빌려 산으로 나들이를 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그곳을 출발하면서 근처 어두운 골목길에서 남루한 차림의 여성이 혼자 뭔가에 취해 이상한 표정을 지은 채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우리는 별 관심 없이 그곳을 떠났다. 그날 밤 호텔 침대에 누웠을 때 그 여성이 떠올랐다. 라스베이거스 시내에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거의 안 보였지만 그 여성은 심하게 가난에 찌든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멀었구나.”

 구두가 아무리 깔끔해도, 셔츠가 제아무리 말끔해도, 여성에게 아무리 문을 많이 열어 줘도 바로 옆에 있는 어려운 사람을 돕지 않고 지나친다면 신사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진짜 신사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다니엘 린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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