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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시진핑의 중화민국, 오바마의 ‘대만국’

중앙일보 2015.10.29 00:35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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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JTBC 정치부 차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영국 방문 성격은 펍(영국 전통 선술집)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맥주를 나누는 ‘이 한 장의 사진’에 압축돼 있다. 양국의 우의가 격식 차리지 않을 정도로 깊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중국은 양국 간 투자무역에 400억 파운드(70조원)를 쏟아 부으며 미국의 세계전략 파트너 영국을 공략 중이다. 이런 중국의 광폭 행보에 심기 불편한 미국이 신경 쓰이기는 영국도 마찬가지일 터.

 두 정상이 마신 맥주는 ‘그린 킹 IPA’였다. IPA계열 맥주는 식민지였던 인도의 영국인들에게 보내던 맥주에서 유래했다. 아열대를 통과하면서 맥주 맛이 변질되자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알코올 도수를 높이고 홉의 양을 늘렸다. 특유의 쓴맛과 향이 탄생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인도를 연상케 하는 맥주를 나누는 시진핑·캐머런의 사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공교롭게도 미·중은 남중국해에서 미묘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미국은 이 바다에서 중국과의 대결 국면에 대비해 10여 년 전부터 인도에 안보 투자를 해왔다. 남중국해를 거점으로 인도양까지 넘보는 중국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인도는 해양 안보 협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최첨단 기술력의 상징인 항공모함 함재기 발진 장치를 인도에 팔고 설계까지 도움을 주고 있다. 인도양 입구부터 틀어막아 ‘남중국해의 제해권을 잡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메시지로 중국의 도전을 단념시키겠다는 포석일 것이다. 문제는 전략수로를 둘러싼 미·중의 경쟁이 남중국해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시진핑 지도부 들어 절대 물러설 수 없는 핵심이익으로 굳어진 대만 문제로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미·중 간 해·공군력 격차가 엄연한 이상 먼바다인 남중국해에선 긴장의 파고만 오르락 내리락 반복하다 말겠지만 대륙에 바짝 붙어 있는 대만은 차원이 다르다.

 내년 1월 총통선거를 앞두고 양안(중국·대만) 해빙무드를 주도했던 국민당에서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으로 정권 교체가 유력시되고 있다. 홍콩 특파원 시절 알고 지낸 대만 기자가 얼마 전 보여준 여권이 있다. 대만의 젊은 층에선 중화민국이라는 호칭이 찍힌 여권 표지에 ‘대만국(Republic of Taiwan)’ 스티커를 붙이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이들 상당수가 민진당 지지자들과 겹친다. 민진당이 정권을 잡게 되면 대륙과 각을 세우는 특유의 정책들이 봇물 터질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대만 현안에 대해선 남중국해보다 더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게 시진핑 지도부다. 오바마 행정부도 서태평양 안보 전략의 핵심축인 대만의 정국 변화를 눈여겨보고 있다. 앞으로 미·중 간 전략 경쟁의 본무대는 대만해협이 될 텐데, 원유 등 전략물자 90% 이상이 운송되는 이 수로에서 갈등의 파고가 높아지면 직격탄을 맞는 건 우리와 일본이다. 곧 있을 한·중·일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이 우리의 일상과 먼 얘기가 아닌 것이다.

정용환 JTBC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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