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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센 사람일수록 질문 받을 의무가 있다

중앙일보 2015.10.29 00:29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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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런던특파원

한계효용은 체감한다. ‘PMQ(Prime Minister’s Questions)’도 예외는 아니었다. 매주 수요일 낮 12시부터 30분간 야당 당수와 의원들이 총리에게 질문하고 총리가 답하는 제도 말이다. 처음 현장에서 볼 땐 심장이 떨렸다. 민주주의구나.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드렁해졌다.

 아니, 그렇다고 믿었다. 19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황금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시간까지였다. 캐머런 총리가 의회에 출석했다. 나흘 전 유럽 정상들과 만나 회의한 내용을 보고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긴 발언이 이어졌다. 그러려니 했다. 제러미 코빈 당수가 일어났다. 그가 “마지막으로”란 말을 하자 보수당석에서 “만세”란 고함이 터져 나올 정도로, 역시 긴 주장과 질문이 뒤섞인 발언을 했다. 얼추 10여 개의 사안에 대해 물은 듯했다. 주제와 동떨어졌다고 여길 수도 있는 “중국산 철강 때문에 영국 철강회사들이 문을 닫거나 노동자를 해고하는 현실을 타개할 대책이 있는가”란 질문도 포함해서다.

 이후에도 문답이 이어졌다. 최종적으로 몇 명이 질문했을 것 같은가? 코빈을 빼고도 52명이다. 절반 이상이 야당 의원들이었다.

 1시간여 총리는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답할 땐 서서, 들을 땐 앉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쪽지’는커녕 귀엣말하는 이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메모와 기억에 의지해 답했다. 지력도 체력도 남달라야 했다.

 이틀 뒤인 수요일은 양국 정상회담이 있는 날이었다. 그날도 PMQ는 제 시간에 열렸다. 정상회담이 PMQ 이후로 잡혔다. 캐머런 총리는 30개의 질문을 받았다. 코빈 당수도, 의원들도 집요했다. 한 야당 의원이 총리를 향해 고함을 치자 하원의장이 “신사답게 행동해라. 진정해라. 그마저도 안 되면 안정제를 먹어라”고 타박을 줄 정도였다.

 언젠가 “센 사람일수록 말할 의무가 있다”고 썼다. 권력 있는 사람일수록 대중 앞에서 말을 안 해도 되는 특권을 누리는 우리의 현실을 지적하면서다. 이젠 깨달았다. 센 사람일수록 질문을 받을 의무도 답할 의무도 있다고 말이다. 그게 책임정치의 요체다. 이 제도가 ‘총리 답변’이 아닌 ‘총리 질문’으로 불리는 정신일 게다.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3연속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했다”며 생색내는 얘기가 들려왔다. 우리 대통령이 3년 가까이 받은 공개 질문의 총수는 캐머런의 하루에도 못 미칠 게다. 진정 정상화가 필요한 건 이거다.

고정애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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