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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역사 내전 드라마

중앙일보 2015.10.29 00:27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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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대기자

역사는 국가 브랜드다. 역사와 위인의 관계는 역동적이다. 존 F 케네디는 이렇게 묘사했다. “한 나라는 그 나라가 배출한 인물에 의해서뿐 아니라 그 나라가 존경하는 인물, 그 나라가 기억하는 인물을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를 기억한 연설문이다(1963년 10월).

 역사는 집단 기억이다. 중심에 역사의 주역이 있다. 그 기억은 미래 세대에 역사적 감수성을 전수한다. 한국 현대사의 주연은 이승만과 박정희다. 학생들은 그들을 교과서(‘고등학교 한국사’)에서 본격 접한다. 그 속에 두 전직 대통령의 행적은 어둡고 초라하다. 교과서 대부분이 좌편향 역사관으로 꾸며졌다. 교과서는 그런 선입관을 넣는다. 그 책들의 이승만·박정희 기억으로 대한민국을 드러낼 수 없다.

 이승만은 서사시다. 일본의 명성황후 살해에 대한 분개, 조선왕조 무능·부패에 대한 규탄과 종신형 선고, 고종의 대미(對美) 독립 외교 밀사, 일제 강점기에 그의 목에 건 30만 달러 현상금, 관(시체)을 실은 화물선으로 밀항, 임시정부 승인을 위한 외교활동-. 그 내용은 그 교과서들 속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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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공간에서 이승만의 위상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교과서는 다르게 취급한다. ‘가상 포스터로 보는 광복 직후 남한 주요 정치세력의 성향’(미래엔 315쪽) 부분이 있다. 포스터 주인공의 순서는 김구·김규식·김성수·박헌영·여운형·이승만이다. 이승만은 기호 6번 맨 뒤다. 그 아래 이런 물음이 있다. “남북합작 통일정부 수립에 적극적인 인물과 정당은?” 그 물음은 이승만에 대한 비판을 유도한다.

 이승만에 얽힌 공과(功過)는 뚜렷하다. 과오는 장기 집권, 독재다. 대부분 교과서들은 과만 키워 부풀린다. 이승만의 6·25 때 공적은 반공포로 석방이다. 그것은 미국을 압박한 벼랑 끝 외교다. 그 승부수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만들어졌다. 그 덕분에 한국은 국방 부담을 덜었다. 경제 건설에 매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교과서는 그 공적을 외면한다. 간략한 설명만 있다. “~이승만 정부가 반공포로를 일방적으로 석방하여 휴전회담 자체가 결렬될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금성출판사 380쪽) 반공포로 석방의 중대한 의미는 생략했다. 그 때문에 이승만의 결단은 판을 깨는 무모함으로 비쳐진다.

 박정희 부분은 어둡다. 교과서의 박정희 사진은 한 장이다(천재교육). 5·16 때 군복에 검은색 선글라스 모습이다. 김일성 사진은 3장. 박정희에 대한 서술에 이런 부분이 있다. “~한편, 박정희 정부는 집권 과정의 취약성을 만회하기 위해 경제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었다.”(천재교육 326쪽) 그것은 박정희의 거대한 산업화 포부를 왜소하게 만든다. 그때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 가난 탈출의 경제 개발은 국민적 염원이었다. 그 교과서는 그것을 집권 과정의 취약성 만회로 묘사했다. 산업화의 시대적 열망은 일그러진다.

 교과서의 좌편향 논란은 오래됐다. 그 불균형과 불공정은 여전하다. 오히려 그 책들은 교육부 검정을 통과했다. 그것은 허술한 통과 기준, 필진의 편찬 재주 때문이다. 편향 집필 기술은 교묘하다. 사실과 왜곡을 절묘하게 배치, 혼재하는 방식이다. 그 혼재의 기술을 가려내기 쉽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 교육 정상화가 우리 세대의 사명”이라고 했다(27일 국회연설). 그 목표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의 자부심과 정통성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대통령 어젠다가 됐다.

 역사는 영향력이다. 대중 동원력의 원천이다. 역사 집필은 매력적이다. 좌파 성향 학자들은 그 부분에 익숙하다. 총선이 다가온다. 역사는 정치 무기로 작동한다. 역사 내전은 치열해진다. 국정화로 가는 길은 거칠 수밖에 없다. ‘국정’이라는 이미지는 첫 장애물이다. 그 인상은 구시대 회귀다. 독점과 얽혀 있다. 그것은 자유 경쟁과 부딪힌다. 그 때문에 국정화 작업은 세심하고 전략적이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각고의 노력’을 다짐했다. 노력의 핵심은 대국민 설득이다. 현행 교과서의 왜곡·편향을 실감 나게 알려야 한다. 그다음에 국정화의 불가피함을 설파해야 한다.

 설득에는 검정제도 실패의 자책이 포함돼야 한다. 고백도 필요하다. 보수우파 학계·시민단체는 무기력을 자성해야 한다. 좌파 성향 교과서의 범람은 진보좌파 학자 때문만이 아니다. 보수우파의 투지 부족과 게으름도 큰 이유다. 그들은 교과서 만들기에 소홀했다. 경쟁력 있고 세련된 교과서를 내놓지 못했다. 보수우파의 후학을 키우는 열정도 떨어진다.

박 대통령은 “역사 왜곡이나 미화는 절대 없다”고 했다. 국민들은 그 다짐을 확인하려 한다. 그 궁금증에 답해야 한다. 진실된 교과서는 실록의 사관(史官)적 자세를 요구한다. 그것은 전문성과 균형감각, 강직함이다. 그런 인물들을 등장시켜야 한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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