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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박 대통령, 야당에 시선 고정 “정쟁 대상 아니다”

중앙일보 2015.10.28 02:41 종합 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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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7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마치고 연단을 내려오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연설 동안 단 한 차례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김경빈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27일 국회 시정연설 도중 역사 교과서 부분에 이르자 갑자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역사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우리 세대의 사명입니다.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고 하는 대목에서다.

교과서 발언 때 목소리 톤 높여
“역사 교육 정상화가 우리의 사명”


 ‘역사’ ‘정상화’ ‘정쟁’ 등의 단어 하나하나를 힘주어 말하면서 큰 손짓도 했다. 시선은 야당 의석에 고정시켰다. 표정은 단호하고 결연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하게 반대하는 야당 의원 앞에서 박근혜식 정면승부를 건 장면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은 연설이 끝난 뒤 “대통령이 국정화를 얘기할 때의 눈빛이 마치 레이저를 쏘는 듯했다고 말한 동료 의원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박 대통령에게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민생 우선’ ‘국정교과서 반대’라고 쓰인 A4 용지를 본회의장 의석 노트북 모니터에 붙여놓는 시위를 벌이며 맞섰다. 이인영·우원식·임수경 의원 등은 역사 교과서를 책상 위에 펴놓았다. 박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들어서기 전 정의화 국회의장은 새정치연합 의석을 향해 “국회의 품격을 지켜 달라. 인쇄물을 철회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야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장 말 들으라. 망신 그만 시키고 빨리 떼라”(김성태)는 여당 의원들과 “민생 우선이 뭐가 잘못됐느냐”(서영교)는 야당 의원들의 맞고함 소리가 본회의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소속 의원 4명은 아예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본회의장 앞에서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는 피켓시위를 했다.

박 대통령의 연설 도중 여야 의석의 분위기도 극과 극이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입장과 퇴장을 포함해 박 대통령의 연설 시간 40여 분 동안 56번의 박수를 보냈다. 야당은 박 대통령이 입장할 때 기립하긴 했지만 한 번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연설 도중 배재정 의원을 필두로 남인순·박영선·은수미·유은혜 의원 등 여성 의원들이 줄줄이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연설이 끝난 뒤 새누리당 의원들은 전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로 박 대통령을 배웅했다. 야당 의원들은 대부분 박 대통령보다 먼저 본회의장을 빠져나갔지만 남아 있는 의원들도 일부만 기립했다. 문재인 대표는 기립했지만 박수는 치지 않았고, 이종걸 원내대표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야당에선 2년 전 박 대통령의 첫 시정연설 때도 유일하게 일어나 대통령을 맞았던 비주류 조경태 의원이 유일하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조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국회는 교육의 장이 돼야 한다. 국회가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이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싸울 땐 싸우더라도 최소한의 기본적 예의는 갖춰야 한다. 학생들이 국회를 보고 무엇을 배우겠느냐”고도 했다. 지난해 6월 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했던 고(故)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순옥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표시했다. 그 역시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기본적인 예우는 해야 하기 때문에 퇴장 때 일어섰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대통령이 국회에서의 연설을 위해 입장하거나 퇴장할 때 여야를 떠나 기립박수를 치는 게 관례가 돼 있다. 대통령과 의견이 다른 사안에 대해 야유를 하는 일도 드물게 있지만 대부분 침묵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한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건강보험 개혁을 주제로 연설하던 중 공화당의 조 윌슨(사우스캐롤라이나) 하원의원이 “거짓말이야”라고 소리를 질렀다가 여야 모두의 비판을 받은 적도 있다. 결국 그는 밤늦게 사과문을 발표하고 대통령 비서실장에게도 전화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국회의 초청을 받은 ‘손님’이었다. 서울대 강원택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야당이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시할 수는 있으나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할 때는 격식을 갖춰야 한다”며 “오늘 같은 야당의 시위는 의원들 스스로 자기 점수를 깎는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글=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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