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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밝힌 ‘베리어 프리 영화’ 뒤엔 막내 복지사 있었다

중앙일보 2015.10.28 01:31 종합 2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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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오후 5시30분 강원도 춘천시 공지천 청소년 푸른쉼터 야외 소공연장. 시민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가로 10m, 세로 6m 크기의 스크린에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됐다. 상영된 영화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김성호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열 살 소녀의 기상천외한 도둑질을 소재로 한 가족영화다.

강원 장애인종합복지관 문주연씨
시각·청각장애인 위한 영화 상영
서울 인권영화제서 처음 접한 뒤
관계기관에 거듭 요청해 성사시켜

 영화는 일반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과 차이가 있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의 모든 대사는 한글로 자막 처리됐다. 또 대사 중간 중간에 한 남성이 음성으로 배우의 움직임과 주변 사물을 상세히 설명했다. 시각·청각장애인을 위해 별도로 제작한 베리어 프리(barrier-free·장벽 없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이날 영화는 무료로 상영됐다.

 관객 가운데 시각·청각장애인은 30여 명이었다. 이들은 “모처럼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며 즐거워했다. 시각장애 1급인 권민주(15·여)양은 “그동안 영화 관람은 그림의 떡이었는데 화면 해설이 잘 나와 스토리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상영은 강원도 장애인종합복지관 권익옹호팀에서 근무 중인 문주연(25·여·사진)씨의 노력으로 성사됐다. 문씨는 지난 1월 근무를 시작한 ‘신입’ 사회복지사다. 문씨는 지난 4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다녀온 뒤 춘천 지역 시각·청각장애인에게 더 많은 영화 감상의 기회를 주겠다고 결심했다. 문씨는 “당시 장애인들이 베리어 프리 영화를 보며 몰입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베리어 프리 영화는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으로 한국농아인협회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만든다. 국내에 상영되는 대부분의 영화는 베리어 프리로 별도 제작된다. 하지만 지역별로 일부 영화관에서 매달 한 차례 정도 상영돼 사실상 장애인들이 영화를 감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씨는 지난 7월 강원도 장애인종합복지관 측이 강릉에서 개최한 ‘2015 청소년 인권캠프’에서 이런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를 처음 상영했다. 제작사에게 허락을 받아 상영한 작품은 손보경 감독의 ‘보통사람’이었다. 캠프에 참가한 비장애인 학생들은 문씨에게 “그동안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 이런 영화를 많은 사람이 함께 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캠프 참가자의 반응에 힘을 얻은 문씨는 지난달 초 강원시청자미디어센터를 찾아 베리어 프리 영화를 지속적으로 상영하자고 제안했다. 미디어센터도 흔쾌히 동의했다. 미디어센터는 베리어 프리 영화위원회에 일정액을 지급하고 상영작을 구해온 뒤 에어 스크린과 빔프로젝트를 등을 설치했다. 또 오는 11월과 12월 KT&G 상상마당 춘천에서도 추가 상영하기로 했다.

 문씨는 “외국에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이어폰 장치나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안경형 자막 디스플레이 장치가 설치돼 있는 극장이 많다”며 “장애인들을 포함해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더 많이 상영됐으면 싶다”고 말했다. 

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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