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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철저히 나를 버리고 팀을 위해 뛸 것”

중앙일보 2015.10.28 00:53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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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버리고,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더 큰 것이 돌아왔다.

U-17월드컵 16강전 앞두고 인터뷰
16강이나 8강서 멈추고 싶진 않아
내일 벨기에와 경기 반드시 승리
형님들 월드컵 패배 갚아줄 것


 17세 이하(U-17) 축구대표팀 공격수 이승우(17·바르셀로나B)에게 칠레에서 열리는 U-17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은 ‘함께 뛰는 축구’의 참맛을 느끼게 한 무대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승우는 확 달라졌다. 골 욕심을 자제하고 팀 전술에 녹아들었다. 27일 코킴보의 대표팀 숙소 호텔에서 만난 이승우는 “더 철저히 나를 버릴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이승우는 29일(한국시간) 오전 8시 칠레의 라 세레나에서 열리는 벨기에와 16강전 출격을 앞두고 있다.

 ‘무득점’. 이승우를 옥죄는, 한편으로는 자유롭게 하는 말이다. 조별리그 초반 두 경기에서 이승우는 골을 넣지 못했다. 대신 상대 수비 라인을 교란하는 지능적인 움직임으로 동료들에게 골 찬스를 열어줬다. 장재원(17)과 오세훈(16·이상 현대고)이 각각 브라질전(1-0승)과 기니전(1-0승)에서 결승골을 넣자 이승우는 누구보다 뜨겁게 환호했다. 김호(71) 용인축구센터 총감독은 “이승우가 변하면서 팀 전체의 공격 전술 완성도가 높아졌다”면서 “이승우는 ‘골 넣는 법’을 아는 선수지만, 이번 대회에는 철저히 ‘이기는 법’에 집중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이승우는 “10명의 동료가 나에게 맞추기보다 내가 10명을 위해 뛰는게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팀 승리를 위해 어떤 역할이든 가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드필더 김정민(16·금호고)은 “승우 형은 동료 선수들을 격려하고 앞장서서 팀 분위기를 이끈다”면서 “경기에서 이긴 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승우 형이 리듬을 타며 춤을 추는 모습은 남자인 내가 봐도 정말 멋있다”고 말했다.

  칠레를 찾은 부친 이영재 씨는 “승우가 (FIFA 제재로) 오랫동안 공식경기에 나서지 못해 감각을 되찾기가 힘들었다. 심리적인 압박도 심했을 것”이라며 “전반 20분만 되면 숨이 턱에 찬다면서도 이를 악물고 뛰는 모습이 안쓰럽고 대견하다. 골을 넣지 못해 걱정하는 분들이 많지만 희생적인 플레이를 하는 모습이 더 반갑다”고 말했다.

 이승우는 태극마크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기간 한국에서 A대표팀의 경기를 TV로 지켜봤다. 특히 벨기에전 패배(0-1)가 너무 아쉬웠다”는 이승우는 “이번 대회 16강전 상대가 벨기에라는 이야기를 듣고 ‘형들의 복수를 할 리턴매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먼 훗날 어떤 축구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에도 이승우는 대표팀 이야기부터 했다. “대한민국 대표로 뛰면서 월드컵을 포함해 최대한 많은 국제대회에서 우승 타이틀을 가져오고 싶다. ‘이승우가 있어서 한국이 우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소속팀인 바르셀로나에서의 성공은 그 다음이었다.

 남은 일정은 매 경기가 살얼음판이다. 지면 곧장 짐을 싸서 돌아와야 한다. 이승우가 훈련 때마다 승부차기 연습에 매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U-17 월드컵은 결선 토너먼트에서 정규시간 90분간 승부를 내지 못하면 연장전 없이 곧장 승부차기에 돌입한다. 이승우는 “(승부차기는) 누가 더 냉정하게 집중하느냐의 싸움”이라면서 “토너먼트에서 승부차기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키커로 나선다면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16강이나 8강에서 멈추고 싶진 않다. 이 멤버들과 함께 최대한 높이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최진철(45) 감독에게 바라는 소원이 있느냐” 고 묻자 강렬했던 이승우의 눈빛이 잠깐 풀렸다. 짧은 고민 끝에 “대회 마치면 가까운 데라도 선수들끼리 여행하며 추억을 만들 수 있게 허락해 주시면 좋겠다”는 답을 내놨다. ‘U-17 대표팀 공격수’ 라는 무거운 타이틀을 내려놓은 이승우는 영락 없는 17세 소년이었다. 이승우는 “감독님께서 (여행을) OK 하신다면 우리 팀의 목표인 4강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코킴보(칠레)=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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