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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대륙의 실수, 반도의 한숨

중앙일보 2015.10.28 00:35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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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이런 광경을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지난주 중국 샤오미 신제품 발표회에 쏟아진 매스컴과 소비자들의 반응 얘기다. 미국 애플사 신제품 발표에 버금가는 열광이었다. 휴대전화 회사인 줄 알았던 샤오미의 신제품군도 충격적이었다. 수백만원대 1인용 전동스쿠터를 30만원대에, 60인치 초고화질 TV를 80만원대에 내놨다. 소비자들은 ‘나도 샤오미를 사겠다’고 나서고, 업계에선 샤오미 수입판매권 각축전이 벌어지고, 백화점도 매장을 내겠다고 나섰다. 중국발 스타 브랜드가 진격하는 기세는 놀랍다.

 샤오미라는 기업의 정체에 대해서도 몰랐다. 지난해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삼성을 제치고 1등을 한 박리다매형 로컬 휴대전화 업체 정도로 알려졌었다. 샤오미 보조배터리, 미밴드 등 가격 대비 성능과 디자인이 우수한 휴대전화 주변 제품을 쏟아놓으며 ‘대륙의 실수’라는 애칭으로 불릴 때까지만 해도 ‘너는 누구니?’ 정도였다. 한데 그들이 이런 안이한 생각을 확 바꾸도록 하는 데는 1년도 걸리지 않았다.

 정신 차리고 들여다보니 샤오미는 저가 휴대전화를 판 게 아니라 모바일 플랫폼을 구축해 애플처럼 생태계를 만든 것이었다. 그들의 경쟁력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다. 물론 정보통신(ICT) 업체들은 모두 플랫폼을 깔아놓고 그 안에서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태계 전략을 지향한다. 삼성전자도 노키아도 자체 OS를 만들고 생태계 전략을 구사해봤다. 그러나 성공한 곳은 애플과 샤오미 정도다. 특히 샤오미는 부가 서비스에 관한 한 애플을 능가한다. 대륙의 실수 시리즈로 불리는 컴퓨터 주변기기와 각종 가전 및 생활용품들을 줄줄이 내놓으며 팬덤을 늘리고 있다.

 촉이 좋은 한 젊은 친구는 샤오미에 대해 ‘킹스맨’을 보는 듯하다고 했다. 이 영화에 나온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의 위해요소인 인간을 없애려는 악당의 계획’이 연상되더라는 거다. 이 계획은 인간의 폭력성을 증진시키는 무료 유심(USIM)을 보급하고, 이 칩이 전 지구에 보급됐을 때 인간들이 모이도록 한 후 칩의 폭력성을 발동시켜 서로 죽이도록 함으로써 인간 청소를 한다는 것이었다. 칩 하나로 인간을 통제한다는 발상과 싼값으로 휴대전화를 팔아 모바일 플랫폼을 넓게 깔아놓은 뒤 모든 생활영역에 파고든다는 사업전략이 유사하고, 아시아로 뻗어 나가는 샤오미제이션(Xiaomization·샤오미화) 현상이 벌써 샤오미 발 ‘킹스맨의 야심’이 실현되고 있음을 보는 것 같다는 거다.

 우리는 중국 기업인이 얼마나 창의적이며 약진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샤오미의 레이쥔에 대해선 스티브 잡스 흉내나 내는 짝퉁 정도로 취급했다. 지난 주말 레이쥔의 연설문과 그에 대한 각종 분석자료들을 그러모아 읽으면서 보게 된 그의 대륙적 야심의 크기는 놀라웠다. 가장 인상적인 건 그가 돈벌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자본은 사용자를 위해 태어난 혁신기업의 열정을 투자자에게 돌려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평범한 기업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며 샤오미 상장을 서두르지 않는다. 투자자가 아닌 사용자를 잡아 샤오미 제국을 만드는 새로운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에인절 투자자다. 기업과 기업가를 키우며 동반자를 늘려가는 공동체 전략을 구사한다.

레이쥔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기업부터 벤처기업까지 돈 얘기만 하는 우리 기업인들은 투자자 이익에 봉사하는 그저 그런 평범한 기업밖에 영위할 수 없다는 거다. 중국에서 마윈, 레이쥔 같은 혁신적 기업인이 몇 명 더 나오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에서 ‘글로벌 혁신의 중국 효과’라는 심층 보고서를 냈다는 메일을 받았다. 이런 내용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은 글로벌 혁신기업의 리더가 될 것이다. 그들은 더 빠르고 더 싸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새로운 혁신의 경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고보니 최근 들어 한국 기업의 혁신을 논한 자료는 받아본 적이 없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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