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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 한 방울…시간이 내린 부드러움, 콜드브루 커피

중앙일보 2015.10.28 00:10 강남통신 1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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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잔. 한 사람의 한국인이 1년 동안 마시는 커피의 양이다. 커피 애호가들이 늘면서 프리미엄 커피를 찾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요즘엔 분쇄한 원두를 차가운 물에 적셔 추출하는 콜드브루(Cold Brew) 커피가 인기다. 찬물에 10시간 이상 원두를 우려내는 방식이다. 뜨거운 물에 추출한 커피보다 쓴맛이 덜하고, 맛과 향이 풍부하다.

더치커피, 방울방울 추출하는 점적식
찬물 통째 붓고 우려낸 침출식도 있어
둘 다 콜드브루…얼음·우유 섞어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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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홀드미커피’ 바리스타가 콜드브루 전용 기구에 원두를 담고 있다. 물의 양을 조절하면 약 10~24시간에 걸쳐 커피가 천천히 추출된다.


“죄송합니다, 콜드브루 커피는 품절입니다.”

 지난 16일 오후 3시 청담동 ‘매뉴팩트’ 카페의 바리스타가 줄 선 고객을 향해 말했다. 콜드브루 커피를 주문하려던 고객은 아쉬운 표정으로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매뉴팩트 카페뿐 아니라 광화문 ‘홀드미커피’, 한남동 ‘알렉스 더 커피’ 등 콜드브루로 유명한 카페는 오후 3~4시쯤 ‘품절 사태’를 겪는다. 김종필 매뉴팩트 대표는 “주문 직후 만드는 게 아니라 미리 추출해서 한정 판매하기 때문에 품절되면 팔고 싶어도 더 이상 팔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콜드브루 커피는 영어로 ‘차가운 물에 우려냈다’는 뜻이다. 원두에 뜨거운 물을 부어 즉석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차가운 물을 부어 침출식(浸出式)으로 추출한다. 용기에 분쇄한 원두와 물을 넣고 10~12시간 정도 실온에서 우려낸 뒤 찌꺼기를 걸러내 원액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더치커피’라고 부르는 커피는 점적식(點滴式)으로 추출한다. 전용 기구에 원두를 담아 찬물을 최소 10시간 이상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거다. 침출식 커피보다 맛과 향이 진하고 깊다. 식민지에서 수확한 커피를 운반하던 17세기 네덜란드(Dutch) 사람들이 고안한 방식으로 더치커피라는 이름은 일본 사람들이 붙였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두 가지 방식을 통틀어 콜드브루 커피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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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스텀타운’에서 파는 콜드브루 커피. 맥주병 같은 디자인이다. ② ‘홀드미커피’는 점적식으로 커피를 추출한다. ③ ‘알렉스더커피’는 농도가 다른 두 가지 커피를 판다. ④ ‘메뉴팩트’는 갓 로스팅한 원두로 커피를 내린다. ⑤ ‘홀드미커피’는 콜드브루 라테를 오스트리아산 고급 리델글라스에 담아준다.


 1970년대 국내에는 동서식품이 커피 믹스를 선보이며 과립형 커피 입자를 물에 녹여 마시는 인스턴트 커피가 유행했다. 90년대는 에스프레소와 에스프레소를 물에 부은 아메리카노가 소개됐다. 원두를 강한 압력으로 압착해 크레마(거품)가 풍부한 커피다. 99년 스타벅스가 서울에 입성하며 커피는 대중적인 음료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중반에는 원두를 직접 볶아 판매하는 로스팅 카페가 인기를 끌었다. 지난 2~3년간은 핸드드립·프렌치프레스·모카포트 등 집에서 혼자 커피를 내릴 수 있는 간단한 추출 방식이 유행이었다.

 최근에는 콜드브루 커피가 유행이다. 국내에 미국식 콜드브루 커피를 처음 소개한 알렉스 더 커피의 알렉스 최 이사는 “3년 전 처음 매장을 오픈했을 때부터 콜드브루 커피를 판매해왔는데, 지난해부터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콜드브루 커피를 파는 카페도 눈에 띄게 많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관계자는 “콜드브루 시장이 매년 미국과 유럽에서 2~3배씩 성장하고 있다”며 “국내 커피 시장에서도 성장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품목”이라고 말했다.

 광화문 홀드미커피의 김용준 대표는 “숙성을 통해 맛과 향이 일반 커피보다 풍부한 게 콜드브루 커피의 매력”이라고 했다. 숙성하면서 맛과 향이 깊어진다. 1~2주간의 숙성 기간을 거치는 콜드브루 커피는 추출 후 즉시 산화되는 뜨거운 커피와 달리 3~4주 정도 냉장 보관이 가능하다. 다크 초콜릿이나 와인 같은 풍부한 아로마가 더해진다.

 콜드브루 커피는 원두 종류와 내리는 방식, 시간에 따라 맛이 다 다르다. 홀드미커피는 제철 원두를 고집한다. 원두에도 채소처럼 제철이 있다. 품종에 따라 수확하는 시기가 다르고, 제철에 수확한 원두로 만든 커피가 더 맛있다. 홀드미커피는 주로 아프리카와 남미의 제철 원두를 섞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10시간 추출한다. 추출 후 바로 판매하는 게 아니라 1~2주 숙성한다. 매뉴팩트의 김종필 대표는 로스팅 한지 2~3일 지난 신선한 원두를 선정해 8시간 내린다. 직접 제작한 콜드브루 기구에 점적식으로 추출한다. 신사동 스텀타운은 18~24시간 추출한 뒤 하루 약 20병 한정판매한다. 한남동 알렉스 더 커피는 침냉식 추출법을 써서 홀드미나 매뉴팩트에 비해 생산량이 많다. 1년에 두 번 이상 커피 산지를 방문해 직접 생두를 구입한다. 이곳은 쓴맛이 적은 이디오피아나 과테말라 원두를 많이 쓴다. 커피에 차가운 물을 붓고 12시간 추출한 뒤 특수필터로 걸러 끝맛이 깔끔하고 산뜻하다.

 원두 본연의 맛과 향을 즐기려면 잔에 얼음과 커피를 넣고 희석해서 마시는 게 좋다. 부드러운 맛을 원한다면 우유와 커피를 2대 1 비율로 섞어 라테처럼 마시면 된다. 커피바 K 손석호 바텐더는 "데킬라와 초콜릿 소스, 얼음을 넣은 온더락 잔에 콜드브루 커피를 부으면 독특한 풍미의 칵테일이 된다”고 말했다. 알렉스 더 커피의 알렉스 이사는 “얼음 대신 따뜻한 물에 커피를 부어 아메리카노처럼 마셔도 맛있다”고 말했다.

 콜드브루 커피도 일단 개봉하면 산화가 빨리 시작되니 가급적 1~2주 안에 다 마시는 게 좋다. 스텀타운 김종헌 바리스타는 “한때 유통기한을 표기하지 않은 오래된 커피가 유통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며 “구입 전 꼭 유통기한을 확인하라”고 조언했다.

 최근에는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도 콜드브루 커피를 파는 추세다. 가장 먼저 시작한 건 2009년 ‘더치커피 존’을 만든 엔제리너스다. 약 12시간 추출한 커피를 하루 20~25잔 한정판매한다. 가격은 5000원이다. 까페베네는 콜드브루 전용 설비를 갖추고 커피를 판매한다. 가격은 4300원. 올 상반기 미국 2800여 개 매장에서 콜드브루 커피 판매를 시작한 스타벅스는 국내 판매를 검토 중이다.

 콜드브루 커피로 유명한 몇몇 해외 카페는 이미 매니어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미국 포틀랜드의 ‘스텀타운’(Stumptown), 샌프란시스코의 ‘블루보틀’(Bluebottle) 등이 콜드브루 커피의 대중화를 선도했다. 스텀타운 커피는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팬케이크 ‘에피더믹’ 매장에 숍인숍 형태로 입점해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더 커피 콜렉티브’(The Coffee Collective), 영국 런던의 ‘몬머스’(Monmouth) 카페도 세계적으로 이름난 콜드브루 커피 맛집이다.

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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