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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수퍼컴 ‘왓슨’ 미국 암센터서 ‘신의 손’ 된 까닭

중앙일보 2015.10.28 00:01 경제 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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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BM 인사이트 2015’에서 발표자가 수퍼컴퓨터 ‘왓슨’을 통해 의료영상 정보를 분석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IBM]


미국 최고의 암센터로 꼽히는 메모리얼 슬론케터링이나 MD앤더슨에서는 IBM의 수퍼컴퓨터 ‘왓슨’이 전문의와 함께 암·백혈병 환자를 돌본다. 의료진이 각종 임상 정보를 입력하면 왓슨은 환자의 상태와 치료법 등을 조언해준다. 수백만 건의 진단서, 환자 기록, 의료서적 등의 데이터를 토대로 왓슨 스스로 판단해 가장 확률 높은 병명과 성공 가능성이 큰 치료법 등을 알려주는 것이다. 왓슨의 역할이 커지면서 슬론케터링 암센터에서는 ‘왓슨 종양내과’라는 부서까지 만들었다. 이곳 외에도 왓슨은 10여 곳의 암센터와 함께 암 환자 맞춤형 치료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인지 컴퓨팅 기술 발전 따라
의료 패러다임 대변화 시작
진단서 등 각종 데이터 토대
환자 상태·처방 의사에 조언


 IBM 마이크 로딘 수석부사장은 “의료진이 사례별로 수천 페이지의 정보를 일일이 봐야 하는 수고를 덜어준다”며 “왓슨이 반복 학습을 통해 정확도를 높이면서 환자 치료의 효율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컴퓨터가 의사 대신 환자를 진단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컴퓨터가 스스로 분석하고 이해한 뒤 판단하는 ‘인지 컴퓨팅’(Cognitive Computing) 기술이 발전한 덕이다. 인지 컴퓨팅이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융합한 기술로, 쉽게 말해 방대한 데이터에서 어떤 패턴을 찾아내 가치를 얻어내고 증대시키는 기술이다. 의료계에서는 길게는 며칠씩 걸리던 환자 정보 해석, 의학 문헌과 정보의 수집을 몇 분으로 단축하면서 환자 치료에 혁신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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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기술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IBM이다. 최근 의료서비스 데이터를 활용하는 ‘왓슨헬스’ 사업부를 신설한 데 이어 X선·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MRI) 등 300억 개의 의료영상 정보를 보유한 ‘머지 헬스케어’, 의료 빅데이터 회사인 ‘익스플로리스’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CT·MRI 등은 전문의가 환자 상태를 알 수 있도록 시각적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같은 데이터라도 의사마다 다른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 하지만 이젠 컴퓨터가 이를 보고 판단해 오차를 줄이고 객관성을 높일 수 있다.

 한국IBM 정성미 전무는 “사람과 대화하는 기능이 추가되면 노인 간병, 자폐아 교육 등으로 쓰임새가 확대될 것”이라며 “비정형 데이터를 학습·처리하는 인지 컴퓨팅 기술은 재무·인사·교육·경영·마케팅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IBM은 2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인사이트 2015’ 행사를 통해 인지 컴퓨팅을 새로운 비즈니스 어젠다로 발표하고 이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미국의 ‘인리틱’은 각종 의학 영상자료를 토대로 환자의 암세포를 식별하고 5년 이내 완치율·사망률 등을 알려준다. 자사 소프트웨어가 방사선 전문의보다 더 정확하게 X선에서 악성 폐종양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게 인리틱의 주장이다.

 미국의 ‘23앤드미(23andMe)’는 의사의 도움 없이 99달러 비용으로 개인 유전자 분석을 통해 질병 가능성 등 250여 개의 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마이크로소프트·애플 등은 인지 컴퓨팅 기술을 활용해 웨어러블 기기에서 수집한 신체 정보로 건강·질병 등을 진단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컴퓨터 진단기술이 확산하고 있다.

 미래에는 의료·건강관리 서비스에서 활용도가 더 넓어질 전망이다. 의료 정보는 엄청나게 늘고 있지만 인간이 이를 흡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인구 증가와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 환자의 증가로 의료진도 부족해진다. 이에 대한 대안이 바로 인지 컴퓨팅이다. 프란스 판 하우턴 필립스 회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굳이 병원을 찾지 않더라도 각종 스마트기기를 통해 건강 이상을 자동적으로 체크하고, 질병 치료는 물론 예방까지 가능해진다”며 “기존 의료 패러다임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뇌 정보·유전자·심박수 등 각종 바이오 데이터 확보 경쟁도 빨라지고 있다. 이런 정보를 많이 확보할수록 인지 컴퓨팅의 정확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미래에는 데이터가 곧 ‘돈’이 될 수 있다. 필립스·라이프레코드 등은 각종 기기에서 얻은 바이오 데이터는 물론 각종 진료기록 등을 저장·관리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한 외국계 헬스케어 회사 임원은 “의사와 환자 간의 교감이 중요한데 컴퓨터가 감정의 소통까지 대신하긴 힘들다”며 “의사를 돕는 보완재는 될 수 있어도 대체재가 되긴 힘들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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