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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노모, 북녘 아들에게 “나랑 집에 갈 거지”

중앙일보 2015.10.27 02:25 종합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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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연(98) 할아버지가 26일 금강산호텔에서 북측 큰딸 송옥씨와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구 할아버지는 딸에게 신발을 사주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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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측 가족이 26일 ‘작별상봉’ 행사장에서 북측 가족의 이름과 나이를 적고 있다. [조문규 기자]

“같이 안 가?” 치매에 걸린 남측 김월순(93) 할머니는 26일 오전 금강산호텔에서 자신을 배웅하는 북녘 아들 주재은(72)씨에게 천진하게 물었다. 전날 단체상봉에서 아들을 못 알아보며 “누구냐”고 물었던 할머니는 이날 오전 9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 작별 상봉에선 아들을 똑똑히 알아봤다. “내가 이제 죽어도 소원이 없어. 우리 재은이를 만나고…”라며 아들 볼에 뽀뽀도 했다. 전날까지 “‘어머니’라고 한 번만 불러보고 싶다”던 북측 아들의 눈엔 굵은 눈물방울이 맺혔다.

막 내린 2차 금강산 이산 상봉
금반지 빼 주며 “며느리에게 줘라”
납북 어부, 노모 탄 차에 90도 인사
두 번째 이별 80대 부부 눈물만

 할머니는 왼손에 낀 금반지를 빼서 “며느리에게 주려고 했던 거야”라며 아들에게 건넸다. 아들이 “괜찮아요”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내가 주고 싶어. 갖다 버리더라도 갖고 가”라며 아들 손에 반지를 꼭 쥐여줬다. 아들은 “건강하십시오 어머니. 통일되면 내가 모시겠습니다”라며 흐느꼈다. 작별 상봉이 끝났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김 할머니는 북녘 아들에게 “나 데리고 집에 갈 거지?”라고 물었다. 하지만 맏아들은 버스에 타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제야 오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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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2차 상봉 마지막 날인 26일 이복순(88) 할머니가 금강산호텔을 떠나며 북측 아들 정건목(64)씨와 눈물의 이별을 하고 있다. 오대양호 선원이었던 정씨는 1972년 서해상에서 조업 중 납북 됐다. 이날 상봉을 마친 남측 이산가족 254명(90가족)은 강원도 속초로 귀환했다. [금강산=뉴시스]


 24~26일 진행된 2차 상봉은 지난 20~22일 진행된 1차와 반대로 남측 가족이 버스에 올라 북측 가족의 환송을 받았다. 1972년 북측 경비정에 의해 납북된 어부 정건목(64)씨는 남측 노모 이복순(88) 할머니가 앉아 있는 버스 좌석 쪽 창가로 다가가 90도로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1차와 달리 버스의 창문이 열리지 않자 가족들은 창문을 탕탕 두드리며 헤어짐을 안타까워했다.

 65년 만의 해후 끝에 두 번째 생이별을 하는 남측 전규명(86). 북측 한음전(87)씨 부부는 1초도 아까운 듯 서로의 곁에 꼭 붙어 있었다. 전씨가 “우리 이쁜이”라 부르며 부인 입가의 과자 부스러기를 정성스레 닦아주자 한씨는 “우리 둘 다 곧 죽갔지 뭐”라면서도 “생일날 미역국 계속 떠놓을게”라며 눈물을 훔쳤다. 주어진 모든 시간이 끝나자 건강이 안 좋은 전씨는 앰뷸런스를 타러 갔다.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던 한씨는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키다 넘어지면서 “차라리 안 만났으면 이렇게 금방 헤어질 일도 없을 텐데”라며 눈물을 쏟았다.

 기약 없는 생이별을 하면서도 가족들은 다시 만나길 약속했다. 북측 아들 이동욱(70)씨는 남측 아버지 이석주(98)에게 “130살까지 사셔요. 나는 100살까지 살 테니”라고 말했다. 남측 석병준(94) 할아버지는 “백수하시면 또 만날 수 있다”는 북측 딸 석보나(75)씨에게 “가능해, 난 가능해”라고 외쳤다. 그러나 남측 이금석(93) 할머니는 “오래 사시라”고 인사하는 이충복 북한 적십자중앙위원회 위원장에게 “이제 오래 살아서 뭐해요”라며 흐느꼈다.

 작별 상봉 후 금강산호텔에 남겨진 북측 가족들은 남측 가족들을 태운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배웅했다. 남측 가족들은 강원도 고성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거쳐 육로로 속초에 돌아왔다. 지난 8·25 남북 합의로 이뤄진 이번 이산가족 상봉이 이로써 모두 마무리됐다. 지난 8·25 합의 남북 공동보도문은 5항에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규정하고 있지만 추가 상봉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재 통일부가 집계한 이산가족 신청자는 지난 8월 기준 12만9828명. 하지만 이 중 약 절반이 고령 등으로 사망해 생존자는 6만5907명이다. 생존자 중 70대 이상이 82%에 이른다.

 정부는 이산가족이 겪을 상봉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26일 밝혔다. 심리상담사가 이번 주말부터 1차 상봉단 389명과 2차 방문단 254명 전원의 가정을 방문할 계획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심리 상태가 불안정한 이산가족은 방문 치료 이후에도 지역 전문병원과 연계해 지속적으로 심리 치료를 할 것”이라 말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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