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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사이 ‘선택의 순간’ 몰리기 전 예방적 외교 나서야

중앙선데이 2015.10.25 01:45 450호 4면 지면보기

윤덕민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국·중국 간 갈등의 파고가 높아질수록 우리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중국이 국제규범과 법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중국에 대해 목소리를 내 달라”고 공개적으로 주문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동맹국인 미국뿐 아니라 최대 교역 파트너인 중국의 입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이를 계기로 국제외교 문제 전문가인 연세대 교수와 국립외교원 원장을 만나 진단과 해법을 들어봤다.


[전문가 진단] 시험대에 선 한국외교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이 중국과 아주 좋은 관계를 맺기 원한다”면서도 중국에 할 말은 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문정인=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지금 보여 주는 행위가 국제규범이나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니까 한국이 기본적인 입장을 표명해 달라는 거다. 미국 쪽에 확실히 줄을 서라는 편가르기보다는 한국이 항상 강조해 온 보편적 가치를 지켜 달라는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라고 본다.▶윤덕민=한·중 관계가 강해지는 것이 미국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을 분명히 했다. 이 점에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항행의 자유 보장과 같은 여러 가지 원칙을 분명히 말해 왔다. 지금 우리와 미국 사이에 큰 입장 차이가 있어 나온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문정인



-남중국해 사태의 발전이 심상치 않다. 미·중 간에 실제로 충돌이 일어날 경우 우리가 오바마의 주문에 따를 수 있을까.▶윤=남중국해는 중요한 해상 통로다. 우리가 수입하는 원유의 90%, 수출 물동량의 30%가 지나간다.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의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다. 미 해군이 이곳의 안전을 지켜 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 입장이 미국과 다를 수는 없다. 중국은 제1열도선을 확보하고 제2열도선으로 나간다는 원대한 꿈이 있다. 바로 제1열도선에 있는 것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다. 남중국해가 가장 소프트한 타깃이어서 중국이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한·중 간의 문제가 될 때가 올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강 건너 불 보듯이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이익이 걸려 있는 문제다.▶문=조금 다른 시각인데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무역을 하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공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자기들이 막을 필요는 없다. 이 문제와 달리 중국은 구단선(九段線)이 역사적으로 중국 고유의 영해 일부였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 때문에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는 거다. 한·미·일 3국 해군 합동훈련에 한국이 참여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또는 더 나아가 실제 미·중 간이나 중·일 간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국민 다수가 불개입을 원한다. 미국은 우리가 동맹국이라면 그런 상황에선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고 보니까 정부로선 상당히 어려운 선택이 될 것이다. 우리가 명시적인 군사행동을 해야 하는 경우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다.



-결정을 내리는 기준은 무엇이 돼야 하나.▶문=중국과의 군사적 긴장이 찾아왔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의 여론을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국민 정서를 잘 고려해 국익을 계산해야 한다. 예방적 외교를 할 수 있는 여력이 된다면 해야 한다. 비록 동맹 관계지만 우리가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동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윤=이는 어디까지나 가상적인 상황이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중국도 스스로 군사적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력충돌로까지는 발전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한국의 중국 경사론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불식됐나. 아니면 여전히 한국의 정체성에 미국이 의문을 갖고 있나.▶윤=우리 내부에서 미·중 두 태양이 있는데 누구를 선택할 거냐는 식의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게 문제다. 현실이 과연 그런가. 미·중은 세계화의 동업자 비슷하게 얽혀 있다. 아직도 20세기적인 ‘힘의 정치’와 대립이라는 시각에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미국과의 유일한 동맹 관계를 심화시켜 나가면서 중국과도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만들고, 일본·인도·러시아와도 중층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국익을 보장해야 한다. 누구를 선택하고 적대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 편가르기가 제일 바보 같은 짓이다. 미국도 중국 경사론을 의식해 그런지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다고 본다. 박 대통령은 짧은 방미기간에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조 바이든 부통령, 존 케리 국무장관,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을 모두 만나는 등 환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문=미국의 보수파가 소위 편가름의 외교라고 하는 것은 편가름이 아니고 전통적 동맹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이 괜히 한눈을 팔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은 좀 지나친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든다. 미·중이 적대적 관계라면 우리가 선택의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하지만 미·중은 경쟁도 하지만 협력도 하는 관계다. 미국이 선택을 강요하는 건 문제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중국 경사론을 쟁점화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로 프로파일(low profile)’로 가야 한다.



-한국이 외교적 시험 무대에 올랐다고 보인다. 딜레마인가, 러브콜을 받는 축복인가.▶윤=몇 년 전 세계 최강의 미·중 두 나라 정상들이 한국 지도자들을 환대했다고 해서 칼럼에 ‘러브콜’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우리의 딜레마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어려운 환경이라고 고민만 하면 뭐하느냐, 미·중 사이에서 이를 잘 활용해 국익을 극대화하자는 차원에서 꺼낸 말이었다.▶문=양국에 가서 환대받은 걸 축복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항상 신중해야 한다. 미·중 모두 우리에 대한 기대가 큰데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생기는 반작용과 부메랑 효과는 너무 클 수 있다. 정부나 대통령 모두 신중하게 접근하면서 어려운 게임을 해야 한다. 좋더라도 내색하지 말고 신중하게 나가는 게 필요하다.



-미·중 간에는 다른 갈등도 많다. 앞으로 내년 11월 대선까지 선거전을 통해 갈등이 격화될 수도 있다.▶문=미 대선도 우리처럼 정치적이다. 대선 때 쏟아져 나오는 발언과 정권 잡고 났을 때의 정책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민주당 경선후보 힐러리 클린턴도 지금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반대하지만 나중엔 찬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윤=미국이 동맹이니까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거나 중국이 제일 크니까 중국을 선택해야 하고 살아야 한다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탈피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완전히 다른 편이고 양 진영으로 갈라져 있는 것처럼 보는 것은 신냉전식 사고다.



-미국이 저렇게 나오는 것은 결국 한·미·일 삼각 협력 관계를 강화하려는 의도 아닌가.▶윤=사실 일본에선 한국의 중국 경사론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에다 대놓고 한국이 중국 쪽에 기울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번 박 대통령의 방미를 통해 그런 시각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본다.▶문=박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으로부터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 동의를 얻어 냈다. 이와 함께 한·일 정상회담도 열기로 했다. 이런 현실을 보고 얘기해야 한다. 그걸 행동으로 보여 주면 된다.



-경사론에는 일본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는 말인가.▶문=일본이 자꾸 경사론을 거론하면 한국이 실제로 중국 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다. 일본은 한국을 끌어들일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 한국을 내친다. 일본도 생각을 고쳐야 한다.▶윤=일본이 역사수정주의로 흐르니까 한·중이 가까워질 수밖에 없게 된 측면도 있다. 과거엔 중·일이 경쟁적으로 한국에 러브콜을 보낸 적이 있다. 위안부 문제 등 때문에 그런 모멘텀을 살리지 못한 게 아쉽다. 한국과 일본은 여러모로 비슷한 처지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공유하고 있고, 중국을 이웃으로 함께 두고 있다. 협력해야 할 일이 많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DD·사드) 체계 배치같이 우리와 직결된 문제에 대한 선택에 처했을 때는.▶문=미국이 공식적으로 요청한다면 그때 가서 군사적 유용성, 구입비용의 적정성, 국가 안보변수를 잘 따져 국익을 계산한 뒤 결정하면 된다.▶윤=중국이 사드 문제를 먼저 들고 나와 문제 삼은 건 한·중 관계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배치 문제는 우리의 이익이 중심이 돼야 하고 그게 효율적이냐 하는 기준을 통해 결정돼야 한다. 중국의 압력에 의해 배치를 포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한·미 동맹 강화와 한·중 관계 발전을 병립시키려면.▶윤=굳건한 한·미 동맹 관계가 굳건한 한·중 전략적 협력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우리 스스로의 역량을 줄이게 되고, 그래서 어느 쪽으로든 종속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북한 문제 해결에서 중국의 역할은 미국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양자 선택으로 가는 것은 최악의 외교다.▶문=여기서 핵심은 남북 관계 개선이다. 그러면 한·미 동맹은 유지되면서도 의존의 심화는 피할 수 있다. 한·중 관계 갈등의 여지도 많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미·중과 함께 갈 수 있고 또 같이 가는 게 숙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종속변수가 되지 않고 독립변수로서 미·중이 잘 협력해 나가도록 만들까 하는 아이디어를 내고 외교 역량을 키워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미·중 사이에는 협력의 공간이 갈등의 공간보다 훨씬 크다.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식의 결정론적 시각은 지양해야 한다. 국제정치는 생물이다. 그 안에서 생존공간을 만들어 내는 외교적 지혜와 상상력이 필요하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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