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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민주집중제는 일당독재 도구 … 독재가 국제표준 되겠나”

중앙선데이 2015.10.25 01:39 450호 6면 지면보기

베이징 천안문광장의 오성홍기 게양식. 중국공산당은 13억 인민을 빈곤에서 구제하고 의식주를 해결한 중국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민주주의 체제보다 ‘좋은 정부’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중앙포토]



최근 중국 정치학계가 중국의 민주집중제가 서방의 체제보다 우월하고 앞으로 국제 표준이 될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본지 2015년 10월 18, 19일자 6면>


‘중국 체제 우월론’ 어떻게 봐야 하나

한편으로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서방에서도 1950~70년대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종식되면서 보수학계의 ‘통치불능론’과 진보학계의 ‘정치위기론’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거론한 바 있다. 이어 최근에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유행어가 될 정도로 자유민주주의가 비판받고 있다. 또 70년대 이후 제3, 제4의 민주화 물결의 결과로 많은 국가가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했지만 자유민주주의가 순조롭게 정착되는 경우는 소수에 국한됐다.



그러나 민주집중제가 우월하다는 주장은 중국 학계의 정치체제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냉전시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 준다. 냉전시대에는 인민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이분법적 모델로 각국의 정치체제를 유형화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서방 학계는 민주화 물결과 냉전체제 붕괴 이후 등장한 신생 민주주의의 혼란상을 분석하기 위해 ‘결함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도입해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와 구별하고 있다. 결함민주주의란 현대 민주주의의 최소한적 요건인 자유·평등선거와 수직적 통제가 작동되지만 수평적 통제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체제다.



현대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통치가 수직적·수평적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치국가 원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다양한 독재와 민주주의를 연속선상에서 배열하면 전체주의→권위주의→결함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이상적 민주주의로 구별할 수 있다. 현대 자유민주주의는 서구에서도 국가별로 차이가 있지만 진전과 후퇴를 반복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 비로소 뿌리내렸다.



민주집중제는 레닌이 구상한 지도 원리작고한 냉전시대 동구 전문가인 루츠(P C Ludz)의 관점을 중국과 북한에 적용하면 북한은 아직 전체주의에 머물러 있고, 중국은 권위주의로 전환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루츠는 국내에 잘못 소개된 ‘내재적 접근’의 창시자다. 그는 냉전 당시 공산주의도 공업화와 더불어 테크노크라트의 대두로 인해 권위주의 또는 장기적으로 민주주의로 전환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정리하면 서방은 자유민주주의 후퇴와 이상적 민주주의 발전의 갈림길에, 중국은 권위주의 고착화와 민주주의 발전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민주집중제는 레닌이 구상한 공산당의 조직·지도 원리이며, 혁명 이후 지배체제의 기반이 됐다. ‘민주’라는 근거는 당의 상부 기관이 하부 기관에 의해 선출됨으로써 당의 최상급 기관이 전체 당원을 대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출 과정이 조작되지 않는다면 선거에 의한 당직자 선출과 해임은 권력 남용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적 통제는 민주집중제의 다른 요소에 의해 훼손됐다. 레닌은 비록 지도부를 비판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를 허용했지만 분파 형성은 금지했다. 이 때문에 당내 토론에서 당 지도부가 반대파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각급 당직자 후보의 선발에서도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됐다.



레닌의 민주집중제에 대해서는 저명한 여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준엄하게 비판한 바 있다. 룩셈부르크는 1918년의 논문에서 민주집중제의 악영향을 거의 예언자처럼 기술했다. 비판의 핵심은 일반선거, 언론의 자유, 결사·집회의 자유와 노선 투쟁이 허용되지 않으면 민주집중제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르주아적 의미의 독재, 즉 소수의 독재나 파벌의 독재로 변질시키고 대중을 권위주의에 예속시킨다는 것이었다. 실제 민주집중제는 스탈린의 ‘대숙청’ 도구로 변질됐고 1인 독재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돼 버렸다.



중국의 민주집중제가 스탈린식 민주집중제와 달리 반대파 숙청이나 개인 숭배의 도구로 전락하지는 않았지만 룩셈부르크의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 물론 중국 정치학계가 자화자찬하는 민주집중제의 성과는 나름 근거가 있다. 문화대혁명 말기인 74년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영국의 14분의 1에 불과했으나 2013년에는 대략 4분의 1로 축소됐다. 나아가 중국은 GDP 규모로 영국·독일·일본을 추월해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이대로면 21세기 전반기에 미국까지 추월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이를 근거로 국내외 학계 일각에서는 중국이 치열한 패권 경쟁을 거쳐 조만간 세계 패권국인 미국을 대체한다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패권국이 되기 위한 기본 요건에는 경제력과 군사력뿐 아니라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정치력도 포함된다. 정치력이란 패권국이 정책을 국내외에서 관철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국가 정책의 관철 능력은 중국식 표현으로는 ‘정부의 관리 능력’일 것이다.



지구상엔 일당독재 체제 드물어타국에 대한 패권국 정책의 관철 능력은 군사력뿐 아니라 타국이 수용할 수 있는 세계적 차원에서 확산되는 이념에 의해 보강돼야 한다. 미국의 이념은 글로벌 자유주의와 자유민주주의였다. 민주집중제가 국제 표준이 될 것이라고 중국이 주창하는 것은 경제력의 부상에 힘입어 경제 영역을 넘어 정치 이념에서도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민주집중제가 국제 표준이 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 민주화 물결 이후 공산당 같은 일사불란한 일당 독재체제는 지구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신생 민주주의가 권위주의로 후퇴하는 사례가 늘더라도 민주집중제가 도입될 가능성은 작다.



다소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중국의 민주집중제는 ‘유체이탈형’ 개념이 돼 버렸다. 민주집중제는 인민민주주의와 직결돼 있다. 인민민주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영향으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의 정체가 됐다. 중국의 국호도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실행하는 정치체제인 프롤레타리아 독재 및 인민민주주의는 잔존하는 계급사회의 극복을 추진한다. 문화대혁명은 이러한 시도를 한 대표적인 사례였지만 좌절됐고, 이후 덩샤오핑(鄧小平)의 노선 변경으로 오히려 계급사회가 부활됐다.



중국의 민주집중제가 고도성장을 이룬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급속한 성장 과정에서 사회계급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이른바 붉은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의 양극화가 심화됐고, 중간 계급도 대두하고 있다. 공산당의 공식 이념이나 마르크스의 생산관계 개념을 전제로 하면 중국 사회는 사실상 자본주의화됐다.



우리나라에선 중국의 토대는 자본주의이고 상부 구조는 사회주의라는 인식이 통용되지만 마르크스주의 이론 틀에선 성립하기 어려운 논리다. 중국 사회의 성격은 자본주의의 한 변종으로서 ‘중국 특색 자본주의’로 규정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자본주의 경제 위기를 분석하는 이론인 공황론을 중국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황의 기본 요인들은 자본 생산성의 감소, 노동소득 분배율의 변화, 설비가동률의 저하인데 중국 경제의 최근 동향을 보면 설비가동률(2015년 75%)이 현저하게 하락하고 있다.



공황은 주기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구조적인 과잉생산·과소소비가 누적되면 결국 대공황이 발생한다. 중국이 현재 경기 변동에서 연착륙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차기 또는 차차기에는 정책 노선의 근본적 변경 없이는 경착륙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부 쌓은 관료층, 개혁 나설지 미지수이러한 중국 경제의 장기 추세에 대한 전망이 실현된다면 중국은 패권국으로 부상하기 어렵다. 세계체제론을 주창한 이매뉴얼 월러스타인이 80년대 후반 일본이 조만간 미국을 대체해 패권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결과는 어떻게 됐나. 현재로선 미국의 단일 패권 구도가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고, 미국·유럽연합(EU)·중국의 다극체제가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장기적 고도성장이 종식되면 민주집중제가 유지될지 의문이다. 고도성장과 더불어 양극화가 진행됐지만 70년대까지는 절대 빈곤에 처해 있던 노동자·농민과 중간 계급이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회갈등의 첨예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집중제가 미래에도 첨예한 사회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양극화의 상층부에는 붉은 자본가뿐만이 아니라 관료층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사회갈등을 해소할 정치·사회적 개혁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최대 부호 리허쥔(李河君)의 자산은 약 28조원에 달하고, 청렴하다는 평을 받았던 ‘서민 총리’ 원자바오(溫家寶) 일가의 자산도 3조원 정도에 이른다는 추측도 있다. 시진핑(習近平) 집안과 시진핑이 숙청한 좌파 성향의 보시라이(薄熙來) 일가의 자산도 원자바오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



은퇴한 원자바오는 서구적 정치개혁론을 주장했다고 하지만 시진핑은 집권 이후 정치개혁을 회피하고 있다. 독일신문 디벨트는 시진핑이 정치개혁을 지연시키는 이유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소련 붕괴와 같은 체제 몰락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과연 민주집중제의 선전이 자신감의 발로인지 공포감의 은폐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국영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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