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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머런식 ‘흑묘백묘’ … 경제 위해 팔걷고 ‘레드 머니’ 유치

중앙선데이 2015.10.25 01:39 450호 7면 지면보기

축구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영국 방문 마지막 날인 23일(현지시간) 맨체스터에 있는 EPL 소속 맨체스터시티 훈련장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오른쪽)와 함께 방문했다. 맨시티 공격수 세르히오 아구에로(가운데)가 두 정상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셀피를 찍었다. [사진 맨시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지난 19~23일 영국 방문은 많은 화제를 뿌렸다. 영국 왕실까지 총동원된 초호화 영접에 중국은 ‘통 큰 대륙적 투자’를 약속하며 화답했다. 영국은 그동안의 단골 메뉴였던 중국의 인권 문제 거론을 접어 두는 저자세로 일관해 주변 유럽 국가들에선 ‘영국의 중국 경사(傾斜)론’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영·중 관계가 새삼스럽게 조명되고 있다.


미국 우려에도 중국과 밀착하는 영국

영국과 중국은 역사적으로 악연이 많은 사이다. 영국은 19세기 서구 열강의 하나로서 중국 대륙을 침략했다. 1840년 아편전쟁을 일으켜 홍콩·마카오를 빼앗았다. 중국 입장에서 영국은 천하의 중심을 자부해 온 청제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낸 침략자였다.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 시절에 와서야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와의 담판을 거쳐 홍콩·마카오를 돌려받기로 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1949년 신중국을 세우고도 중국은 여전히 ‘영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오는 58년 단기간에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노리고 대약진운동을 시작하면서 당시 경제 규모 면에서 세계 2위이던 영국과 1위이던 미국을 추월하자는 야심 찬 목표를 제시했다. 마오는 ‘5년 안에 영국을 따라잡고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자’고 외쳤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한 무리한 증산운동의 부작용에다 자연재해까지 겹쳐 2000만 명이 아사하는 대재난을 초래했다.



마오의 영국 추월 목표는 덩샤오핑이 78년 개혁·개방을 추진해 약 30년간 고속 경제성장을 하면서 실현됐다. 2005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중국(2조2290억 달러)은 마침내 영국(2조1920억 달러)을 추월하고 세계 4위로 올라섰다. 그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9.9%였으나 영국은 1.8%에 그쳤다.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해가 저문 대영제국을 누른 것이다. 양국의 경제 규모는 최근 몇 년 사이 더 크게 벌어졌다. 중국 경제는 이미 2010년 세계 2위로 올라섰고, 지난해 GDP 기준으로 중국 경제 규모는 영국(세계 6위)의 약 5배가 됐다.



황금마차로 시진핑 영접한 영국 여왕경천동지할 정도로 경제력 격차가 커짐에 따라 갑을 관계가 바뀌었다. 중국과 영국의 글로벌 위상 차이를 실감하게 하는 일들이 요즘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직접 왕실 전용 황금마차로 시 주석을 영접했다.



그동안 중국에 대해 민주·인권·법치를 훈계하듯 주문해 온 영국은 체면과 염치를 돌볼 겨를 없이 중국 자본에 구애 공세를 폈다. ‘레드 머니(Red money)’, 즉 중국 통화인 위안화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영국은 정부 차원에서 발 벗고 나섰다.



영국의 이런 적극적 구애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지난 21일 시 주석과 함께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의 ‘전면적 전략동반자 관계’를 ‘21세기를 향하는 글로벌 전면적 전략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캐머런 총리와 시 주석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대로 양국 관계의 ‘황금시대(Golden Era)’가 열린 것이다. 이날 400억 파운드(약 70조원)에 이르는 경제협력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협력 분야만 에너지·금융·부동산·관광·의료 등 150개가 넘었다. 대표적인 투자 사례는 중국광핵그룹(CGN)이 영국 남부 힝클리 포인트 원전 건설사업에 60억 파운드(약 10조8000억원)를 투자해 지분 33.5%를 갖기로 한 것이다.



중·영 관계의 이런 극적 변화는 불과 2012년까지만 해도 예상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2012년 캐머런 총리는 중국 측의 반대에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면담했다. 티베트는 중국이 1950년 이후 통치하고 있다. 중국의 반발로 캐머런 총리의 당시 중국 방문은 무산됐다. 캐머런 총리의 방중은 1년 뒤 겨우 성사됐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중국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일자리를 창출하려던 영국이 중국을 바라보는 전략적 태도를 재점검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중국 정부에 반발해 민주화 시위를 하던 홍콩 시민들을 중국 측이 강하게 단속했을 때도 영국은 침묵을 유지했다.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피하려는 캐머런 총리의 계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은 올 초 중국이 창설을 주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미국의 동맹인 서방 국가론 처음으로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했다. 영국에 이어 한국이 뒤늦게 참여를 선언했을 정도로 영국의 선택은 충격적이었다. 당시 놀란 미국 측은 “영국이 중국에 지속적으로 순응하고 있다”며 불편한 반응을 내비쳤다.



중국, 유럽의 약한 고리인 영국 집중 공략중국과 영국의 밀착은 영국의 중국 경사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세계 1위 패권국인 미국의 심기를 자극했다. 미국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영국이 중국에 아부한다는 비판이 나왔고 영국이 값비싼 실책을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단순한 영국의 중국 경사론을 넘어 경제적 이익과 실리를 중시하는 영국의 오랜 전통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라종일(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치학 박사) 전 주영대사는 “역사적으로 보면 윈스턴 처칠 총리의 부친을 비롯한 영국 귀족들은 영국이 패권국이던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신흥국 미국을 우습게 봤으나 미국이 패권국으로 급부상하자 미국 부자들과 앞다퉈 결혼했다”며 “영국은 자존심보다 경제적 실리를 더 중시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과거엔 미국의 경제력을 평가해 미국과 가까이 지냈다면 앞으로는 중국과 더 가까이 지내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의 현실주의를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 주도의 전승국들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할 때 미국은 국민당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중화민국(대만)을 파트너로 생각했다. 그러나 영국은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 대륙을 이미 차지한 현실을 인정하자는 입장이었다.



최근 영국의 움직임은 중·영 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타산이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인남식(영국 더럼대 박사) 국립외교원 교수는 “금융서비스업을 빼면 영국은 제조업이 무너졌고 유럽연합(EU) 출범 이후 독일이 유럽에서 독주하면서 영국의 입지가 크게 축소됐다”며 “그리스 채무사태나 중동 난민사태 때도 영국은 목소리를 못 냈다”고 말했다. 인 교수는 “전력·철도·공항·항만 등 국가 기간 인프라가 노후했는데 영국 정부는 재정 여력이 없고 재정을 감축해 온 미국도 대규모 영국 투자가 어렵다”며 “결국 중국에서 투자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번에 성사된 원전 투자를 비롯해 중국과 영국은 중국 민간 자본이 영국 국가 기간 인프라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민관협력(PPP·Public private partnership) 방식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정부 재정 투자를 축소하는 것이 원칙인 캐머런의 보수당 정부로서는 자본의 색깔과 무관하게 사회주의 중국의 자본이라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이웃해 안보 위협이 큰 미국과 달리 영국은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영국이 과거처럼 제국주의적 패권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에 정치안보적 부담이 거의 없다. 중국이 영국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딸로 비유할 정도로 가장 가까운 우방인 영국을 끌어들여 미국의 대중국 압박을 약화시키려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다.



김흥종(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독일·프랑스가 주도한 EU가 중국과의 전략대화에서 인권·법치 문제 등을 제기해 중국과 불편할 때 영국이 최근 들어 EU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며 “EU의 약한 고리인 영국이란 틈새를 중국이 뚫고 들어가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이 몸값을 높이려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영국의 선진적인 금융서비스업 등을 배워 중국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이점도 있다. 실제로 시 주석의 이번 국빈방문을 계기로 중국은 런던 금융시장에서 1년 만기 위안화 표시 국채를 중국 국외에서는 최초로 발행했다.

오즈번



친중파 재무장관이 핵심 역할중국과 영국의 밀착의 교집합이 되는 인물은 조지(44) 영국 재무장관이다. 그는 영국이 서방에서 최고의 중국 파트너가 돼 10년 안에 현재 6위인 중국을 영국의 2위 교역국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정치보다는 경제를 앞세우는 ‘오즈번 독트린’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전략이 중국에 대한 영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2020년 영국 차기 총리 후보를 노리는은 중국의 대규모 투자를 끌어들여 정치적 입지를 다진다는 계산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을 움직인 것은 중국이란 분석도 있다. 중국이 영국 정치권의 움직임을 면밀히 분석해을 ‘중국의 동지’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친구가 될 가능성을 확인한 뒤에게 집중 투자했다.을 중국에 초청해 중국의 특수한 현실과 중국 문화를 이해시켰다.은 지난 9월 중국을 일주일간 방문해 분리주의 운동이 계속돼 온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도 찾아갔다. 이런의 영국 국내 정치적 입지를 키워 주기 위해 시 주석은 이번 방문을 계기로 파격적인 선물 공세를 폈다.



시 주석은 영국 방문에 앞서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중국의 가장 열린 서방국이 되겠다는 영국의 전략적 선택은 영국의 장기적 이해와 완전 일치한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유럽 공략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중국의 유럽 투자 추세를 감안하면 올해 1340억 달러였던 중국의 대유럽 투자는 10년 뒤인 2025년엔 연간 232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영 관계는 미·중 사이에 있는 한국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전문가들은 중·영 관계와 한·중 관계는 얼핏 유사해 보여도 다른 면도 많다고 본다.



인남식 교수는 “한국은 미·중 사이에 너무 깊게 들어가 있는 반면 영국은 정치적으로 미국과 앵글로색슨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중국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며 “한국과 달리 영국은 중국에 좀 더 다가가도 정치적 비용 부담이 아직은 작다”고 분석했다.



최근 방한한 후안강(胡鞍鋼) 중국 칭화대 교수는 성균중국연구소 특강에서 “중국은 이미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40여 개국의 제1무역 상대국이 됐다”고 소개했다. 그만큼 중국의 글로벌 경제파워가 막강해졌다. 이 때문에 한국의 경우 미국과는 안보동맹을 강화하고, 경제는 중국과 적극 협력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 현실주의자인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최근 ‘2015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해 “경제 때문에 유럽과 중국의 관계는 더 좋아질 것이고 미국은 유럽에 불만을 갖게 될 것”이라며 “안보는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안보(미국)와 경제(중국)를 놓고 선택한다면 한국의 경우 결국 안보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같은 미국인인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한국은 미·중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오바마 대통령의 말처럼 미국은 한국이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바란다”고 반박했다.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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