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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기억을 보존하는 방법 정치·이념의 눈으로 봐선 안 돼”

중앙선데이 2015.10.25 01:27 450호 12면 지면보기

1 야드바셈으로 불리는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에는 나치 독일에 희생된 유대인 600만 명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야드바셈은 ‘이름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연간 100만 명이 찾는 생생한 역사 교육 현장이다.



유대인에게 역사는 생명과도 같은 존재다. 역사를 잊지 않았기에 2000년 만에 다시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현대사의 기적으로 불린다. 유대인이 생명처럼 여기는 역사 교육 현장이 있다. 1953년 예루살렘 시내에 개관한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역사박물관’이다. 유대인 국가 건설운동인 시오니즘(Zionism)의 창시자인 테오도어 헤르츨의 이름을 딴 헤르츨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지난 13일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을 찾았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학살당한 유대인 600만 명의 ‘이름을 기억하라’는 뜻을 담아 히브리어로 야드바셈(Yad Vashem)으로 불리는 곳이다. 연간 방문자 수가 100만 명에 이른다. 박물관에서 역사 연구와 교육을 총괄하는 로버트 로제트(59?사진) 야드바셈 자료관장을 만났다.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그는 78년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히브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역사가 없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미래에 우리가 어디로 갈지도 알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 로제트 자료

 

2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 입구. 3 질문하는 법을 중시하는 이스라엘 어린이들의 현장 역사 교육 장면. 4 암기보다는 생각과 창의를 강조하는 텔아비브 시민도서관. 예루살렘=장세정 기자



-박물관의 설립 목적은. “세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는 추모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해야 한다. 둘째는 가르치기 위해서다. 박물관에 가면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 배우게 된다. 셋째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배우고 싶어 하게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자는 것이다. 박사 학위자 30여 명을 포함해 직원은 740명이다.”



-홀로코스트 역사 왜곡에 어떻게 대응해 왔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적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다. 15만 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갖고 있다. 히브리어와 영어뿐 아니라 아랍어·페르시아어·스페인어·러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로 정보를 제공한다. 왜 사람들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려 하는지,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려 준다.”



-유대인들은 나치 독일의 과거 잘못을 모두 용서했나. “제2차 세계대전 후 20여 년 동안 이스라엘인들은 독일산 자동차와 맥주를 사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이 과거에 일어난 일을 잘 가르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에 지금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인은 70여 년 전의 독일이 아닌 현재의 독일을 바라본다.”



-침략의 과거사를 바라보는 독일과 일본의 태도는 어떻게 다른가. “독일은 여러 측면에서 역사를 직시하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일본은 독일이 지난 70년간 한 것만큼 많이 노력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독일의 노력도 완벽하지는 않고 여전히 노력할 여지가 있다.”



-역사는 단지 과거에 일어난 일인가. “과거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과거가 없으면 지금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 알기가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가 필요하다. 역사는 기억이다. 역사는 기억을 보존하는 방법이다.”



-역사를 잊거나 기억하지 않는 민족은 어떻게 될까. “모든 민족은 자신들이 어디서 왔고, 자신들의 국가·공동체·가족이 과거에 누구였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역사를 모르면 닻이 없는 배와 같아서 이리저리 표류하게 된다. 역사가 없으면 아무도 그 민족을 붙잡아 주지 못한다. 과거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알면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데 도움을 준다.”



-유대인에게 역사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나. “기억하는 것은 유대 전통의 일부다. 유대인 축제의 상당 부분이 기억에 관한 것이다. 유대민족 그 자체가 기억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했느냐에 대한 기억이다. 다양한 나라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고 전통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것이 유대인을 단결하게 했다. 유대인은 자신의 나라가 없을 때도 ‘기억의 땅’을 간직하고 있었다.”



-2000년 만에 다시 나라를 세우는 데 역사가 어떤 역할을 했나. “유대인은 오랫동안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길 바랐다.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의 생활방식을 파괴했다. 홀로코스트를 당하지 않은 유대인들이 여기서 새로운 유대인의 생활을 복원하려 했다.”



-이스라엘은 역사 교과서를 누가 만드나. “정부든 민간이든 전문 연구자든 다양한 교과서가 가능하다. 이스라엘 정부가 이것이 공식 교과서라고 하는 그런 것은 없다. 하나의 교과서가 절대적인 진실을 담아 가르치는 그런 교과서는 없다. 시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전문가에 의해 교과서가 쓰이고 독립적인 교과서도 나온다. 다양한 교과서가 있고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한다.”



-교사가 교과서를 선택하나. “학교 재량에 따른다. 학교가 결정하는데 어떤 학교에서는 교사가 선택한다. 모든 학생은 전국 단위 역사 시험을 치른다. 당연히 최고의 책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역사 교육을 잘하려면 국정교과서가 더 좋은가, 아니면 검정교과서나 자율교과서가 바람직한가. “나라마다 다를 것이다. 가장 좋은 교과서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교과서가 가장 좋다고 누가 결정할 거냐가 문제다. 학생이냐 교사냐, 나 같은 역사 전문가인가. 누가 만드느냐보다 최고의 교과서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역사는 다양한 주제가 있으니 한두 권이 모든 내용을 잘 담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양한 책이 나와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최고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 수만 있다면 누가 만드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역사를 다르게 봐도 되나. “우리 모두는 역사를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한다. 정치적·이념적으로 역사를 보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 소신이다.”



-같은 민족의 역사관은 하나로 통일돼야 하나. “역사는 표준화될 수 없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각자가 이해한 내용을 교환할 수는 있다. 역사가들 사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컨센서스(공감대)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표준화와 같은 것은 아니다. 사실에 모순되지 않는 합리적인 경계 내에서 열린 논쟁은 가능하다.”



-고난을 극복하면서 생존·발전해 온 한민족에게 전할 말은. “우리 두 민족은 오랜 역사와 문화, 고난과 성취를 모두 갖고 있다. 고난뿐 아니라 자기 민족의 훌륭한 성취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민족마다 어려운 과거가 있다. 다른 민족의 어려움을 이해하려고 열린 자세를 갖는다면 더 나은 민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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