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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개인’의 힘… 정치 참여도 각양각색

중앙선데이 2015.10.25 01:24 450호 14면 지면보기

1 생활 이슈 민생 정책 홍보전에 나선 여야. 2 개인화 SNS에서 호응을 얻은 여야 의원 국정교과서 찬반 1인 시위. 3 정책 프로슈머 새누리당 정치 참여앱 ‘온통소통’과 새정치민주연합정책거래소 ‘국민예산마켓’.



바야흐로 ‘웹 3.0’ 시대. 정치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홈페이지·e메일로 열린 ‘웹 1.0’ 시대가 블로그·미니홈피가 대세였던 ‘웹 2.0’을 거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웹 3.0’ 단계로 접어들면서 유권자들도 진화한 것이다.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스스로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다양해진 SNS 기능에 따라 참여하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정치인들도 SNS를 통한 유권자와의 소통에 적극적이다. ‘웹 3.0 정치’에서 유권자와 정치인의 다양한 모습을 진단해봤다.


‘웹 3.0’ 시대 … 진화하는 SNS 정치학

 



#한형빈(26)씨는 지방에 거주하는 ‘취준생(취업준비생)’이다. 시험이나 면접을 보러 서울 한 번 다녀가는데도 교통비나 숙박비가 기본 10만원은 넘게 들어 부담이 크다. 한씨는 최근 팟캐스트를 듣다가 새정치민주연합이 인터넷에서 국민이 제안한 우수 정책 아이디어를 구매하는 ‘국민예산마켓’을 연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씨는 정부가 청년의 구직비용을 지원하는 ‘청년구직예산’을 제안했고, 문재인 대표가 5일 가장 먼저 이 아이디어를 구매했다. 새정치연합은 앞으로 있을 예산안 심의에서 관련 예산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기로 했다.



 웹 3.0 정치에선 무엇보다 ‘개인’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이제 하나의 놀이문화로 정착한 ‘투표 인증샷’이나 1인 시위의 주인공은 혼자 혹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개인’이 대부분이다.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웹 3.0 시대에선 컴퓨터 스스로 정보를 이해하고 추론하는 시맨틱 웹 기술을 통해 개인 상황에 맞는 정치 정보를 제공받고 스마트폰을 통해 개인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정치적 행동을 하는 참여의 특징을 보인다”고 밝혔다.



 관심사도 달라졌다. 반공주의나 민주주의 같은 거대 담론보다는 생활 문제가 더 각광받는다. “SNS 공간에서는 막연한 담론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생활 이슈 등 다양한 감성적 이슈를 통한 쌍방향 의사소통이 강화된다”(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장)는 분석이다. 국정교과서 문제가 이념 논란에서 ‘입시’ 공방으로 번진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다.



 기술 발달에 따라 콘텐트 생산 주체도 달라지고 있다. 웹 1.0의 콘텐트가 정부나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웹 2.0 시대에 등장한 일반인들이 직접 만들어낸 ‘사용자 제작 콘텐트’(UCC·User Created Contents)의 영역이 웹 3.0 단계에서는 정치까지 확대됐다. 이른바 ‘정책 프로슈머’의 등장이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실시한 ‘행복주택 국민제안 공모전’이나 서울시의 ‘천만상상 오아시스’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개인의 정치적 선호가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일종의 구매 행위로 진화되는 경향”(이원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이 현실화된 것이다.



유권자 정치 참여도 천태만상 #회사원 최모(32)씨는 SNS ‘눈팅’(SNS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보기만 하는 일)이 취미다. 글을 직접 남기진 않는다. 대신 아주 가끔 ‘좋아요’를 누르거나 짧은 댓글을 남긴다. 최씨는 “‘좋아요’만 눌러도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SNS와 현실은 다른 세상 같은 느낌도 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SNS에선 모든 사람이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것 같은데 여론조사 결과는 찬반이 팽팽하고, 2012년 대선 때도 SNS 분위기로만 봐선 야당 승리가 확실했지만 투표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SNS 기능이 다양해지면서 정치 참여 양태도 분화되고 있다. 단순히 정보만을 얻는 사람부터 토론이나 집회에까지 직접 참여하는 사람까지 그 스펙트럼도 넓다. 송효진 서울시립대 반부패시스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한국정당학회보에 발표한 논문에서 SNS 정치 참여 유형을 ▶정보 검색·수집 ▶다른 사람의 견해 재인용 ▶민원 제기·정책 제안 ▶서명운동·집회 참여 등 네 가지로 분류했다. SNS 기능이 발전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정치에 관여하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 참여에 영향을 미친 주요 SNS 기능 중 하나가 ‘태그(tag)’다. 유권자들은 이를 통해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 개인이나 정치인과 콘텐트를 공유할 수 있다. 지난해 SNS에서 유행했던 ‘아이스 버킷 챌린지’나 야당 의원들이 진행하고 있는 국정교과서 반대 릴레이 피켓시위도 이 기능이 있어서 가능했다. 이런 유권자들은 단순한 정보 획득 수준에 그친 최씨보다는 더 적극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소극적인 유권자로 분류된다.



 이보다 능동적인 부류로는 정부나 정치인에게 정책을 직접 제안하는 사람들이다. 박수현 새정치연합 의원이 2년째 관심을 갖고 추진 중인 유아용 카시트 의무화 법안은 SNS를 통해 제안받은 정책이다. 박 의원은 “실생활에서 우러나오는 SNS 유권자들의 아이디어에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콘텐트를 직접 만들고 투표 독려 행위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들이 가장 적극적인 유형이다. 지난 대선 당시 대선자금 모금을 위한 ‘박근혜 약속 펀드’나 ‘문재인 담쟁이 펀드’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웹 3.0 시대’에선 SNS에서 즉석 제안으로 오프라인에서 ‘번개 모임’이 성사되는 일도 흔하다. 정치인들도 지역구 관리에 SNS 번개 모임을 활용한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모임을 통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재미있다”며 “의정활동에 활력소가 된다” 고 말했다.



 이런 ‘웹 3.0’식 정치 참여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관심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디지털 플랫폼에 누구나 들어와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면 국민의 정치적 효능감이 커져 더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참여하려 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여야가 최근 ‘소통정치’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새누리당은 지난 5월 ‘모바일 정당’을 기치로 정치참여 애플리케이션 ‘온통소통(On통So통)’을 내놨다.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도 각종 여론조사 주제를 제안하거나 찬반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새정치연합도 지난 9월 일반 국민의 정책·예산 관련 제안을 구매해 의정에 반영하는 온라인 플랫폼 ‘국민예산마켓’을 열었다. 예산마켓은 ‘디지털 정당’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내년 1월 완전 구축될 ‘국민정책마켓’의 시험판 격이다.



정치적 편향성 강화·게으른 참여 문제도 웹 3.0 정치가 마냥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우선 비슷한 성향의 사람끼리만 네트워크가 강화되면서 정치적 편향성이 강화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월호 사건 때 특히 논란이 됐던 일간베스트(일베) 문제가 대표적이다. 박선희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SNS에선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아예 배제시키는 편향적이고 폐쇄적인 커뮤니케이션 특성이 있는 게 문제”라고 평가했다.



 SNS라는 미디어 특성상의 한계도 있다. 지나치게 빠른 정보 전파 속도는 심도 있는 대화와 토론으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숙의 민주주의의 실현이 여전히 어렵다”(김유향 팀장)는 진단이 나온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디지털문화정책학과 교수는 “SNS를 매개로 한 여론의 향배가 항상 옳은 길을 가진 않았다”며 “빠른 여론 형성은 자칫 애국주의나 여론몰이에 이용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게으른 참여(slacktivism)’의 문제도 거론된다. 소극적 행위로 정치 참여에 대한 ‘만족’만 느낄 뿐, 투표 같은 직접적인 행위로 나서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송효진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의 정치 상황에선 폐쇄적인 SNS의 특성상 수용자의 능동적 참여보다는 정보 검색이나 다른 사람의 정치적 견해를 재인용하는 소극적인 수준의 참여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이 확장시킨 온라인 정치 정보의 생산이나 유통만으로는 인터넷 밖의 현실정치 영역으로 치고 들어갈 수 없다”(박선희 교수)는 진단까지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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