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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참모는 건강한 권력욕 자극”

중앙선데이 2015.10.25 01:15 450호 16면 지면보기



“피고용인이 아닌 정신적 동반자가 돼라.”


‘22년 경력’ 의원 보좌관이 말하는 참모학

최근 『보좌의 정치학』이란 책을 펴낸 이진수(54·사진)씨는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이다. 22년간의 보좌관 생활 경험을 담아 국회의원 보좌의 모든 것을 설명한 이 책에서 그는 보좌 업무의 최우선 덕목으로 이 말을 꼽았다. 이 전 보좌관은 서강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철거촌 빈민운동으로 인연을 맺은 고(故) 제정구 의원 밑에서 1994년 의원 보좌관 생활을 시작한 이후 김부겸·최원식 의원과 일했다. 그는 최근 대구에서 내년 총선을 준비 중인 김부겸 전 의원을 돕기 위해 사직서를 냈다. 중앙SUNDAY가 22일 그를 만나 보좌의 세계를 들어봤다.

일러스트=강일구



-사회 각 분야의 보좌관·비서들에게 금과옥조로 삼을 만한 덕목이 있을까.“흔히 보좌관·비서·참모로 불리는 이들은 ‘주군’의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다른 조직의 보스들처럼 국회의원도 불안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모든 보좌진이 ‘나는 정책 담당이니까 상임위만 잘하면 되지’ ‘나는 비서 업무니까 일정만 잘 잡아 주면 되지’ 식으로만 생각한다면 의원은 자신의 불안을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게 된다. 내 입장에서 내 문제를 생각해 주고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복심이고 진정한 참모다. 보스 입장에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신뢰하고 의존하겠나. 회사에서 그런 사람이 승진 인사 때 누락될 수 있겠나. 잘 풀릴 수밖에 없다.”



-보좌관으론 어떤 사람이 적합한가.“보좌란 기본적으로 남을 돕는 행위다. 그 때문에 남보다 더 꼼꼼하고 치밀해야 한다. 둘째로 행동이 빠릿빠릿해야 한다. 보좌관의 일은 늘 시한이 정해져 있다. 좋은 원고를 쓴다며 마감시한을 넘기면 무슨 의미가 있나. 또 자신이 직접 나서 뭔가를 도모하는 것보다 배후에서 관찰·분석해 보스를 조종하는 걸 즐겨야 한다. 모임에서 앞에 나서고 자기를 중심으로 술판이 돌아가는 걸 좋아하면 직접 정치하는 게 맞다. 있는 듯 없는 듯한데 나중에 술값을 모아 계산하는 사람들이 보좌관에 맞는 스타일이다.”



-반대로 최악의 보좌관은 어떤 유형일까.“면종복배(面從腹背)하는 인간형이다. 옛날로 치면 ‘간신배’ 같은 자로 마음이 두 개인 사람들이다. 국회에서도 이런 사람들은 의원에게도, 한국 정치에도 위험하다. 정치는 권력을 다루는 일이라 ‘악마와의 거래’라고 한다. 더구나 보좌관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여서 마음이 반듯하지 못하면 부정부패나 협잡·사기에 개입하게 돼 있다. 보좌관은 접대 골프를 받으면 안 된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바람직한 주군의 덕목을 꼽는다면.“덕이 있어야 한다. 덕은 너그러움이고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너그러워야 생기지 까칠하고 빡빡하면 잘 안 생긴다. 마음이 넓은 대신 ‘머리’는 실무 능력이 뛰어난 사람한테 맡기고 의존하면 된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 논란을 어떻게 보나.“보좌진으로서 가장 들어선 안 될 말들이 있다. 스스로를 하인으로 심부름이나 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시다바리’니 ‘가방모찌’ 소릴 듣는다.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면 주변에서 ?문고리 권력?으로 불린다. 공적 권력은 어디까지나 정부부처 등 공적 체계를 통해 행사돼야 하는데, 문고리가 권력을 독점해 친분 관계를 통해 일을 처리하는 건 권력의 사사화(私事化)다. 문고리 권력은 힘을 행사하기엔 편하지만 권한만 있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 소재가 없어져 버린다.”



-보스로서의 박 대통령은 어떤가.“박 대통령은 보좌진을 대하는 데 있어 배신과 신뢰라는 덕목을 굉장히 중요하게 보는 것 같다. 보좌진을 아끼고 신뢰도 높다. 아버지로부터 제왕학을 제대로 배운 부분이다. 문제는 거기에만 의존하는 것이다. 창업에 성공하면 다음은 수성이다. 전쟁을 치를 땐 나를 위해 목숨 바칠 사람을 썼지만 정권을 잡고 나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쳐야 하고, 그러려면 기존 참모를 멀리하고 천하의 인재들을 모아 써야 한다.”



-국회 보좌진 풍경도 과거와 변했을 텐데.“국회에 입성했던 때와 비교하면 그사이 국회의 의원-보좌관 관계는 정치적 동지에서 고용-피고용 관계로 변해 왔다. 동지적 관계에선 한 보좌관이 지역 관리부터 정책, 정무적 판단까지 총체적으로 의원을 보좌했다면 요즘 들어선 보좌관들이 정책·조직 등 각각의 전문 영역으로 쪼개지는 추세다. 처음엔 그런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보좌관 업계 생태계가 황폐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의원들은 임기 중반이 되면 상임위을 옮기며 새 상임위를 잘 아는 보좌관으로 갈아 치운다. 임기 마지막 1년을 앞두곤 선거 준비 때문에 그 보좌관 역시 자르고 지역구에 밝은 사람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보좌관들이 상임위 따라 메뚜기처럼 의원실을 옮겨 다니게 됐다. 보좌관의 직업 안정성은 낮아졌고, 의원들도 영세공장 사장처럼 변했다. 의원과 보좌관 간 신뢰가 쌓일 시간이 없으니 일도 건성건성 보여주기 식으로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입법 권력이 커지면서 보좌관의 영향력도 막강해지지 않았나.“긍정적으로 보자면 의원은 바뀌지만 보좌관은 해당 상임위에서 10년 이상 머무를 수 있다. 특정 법안을 한 우물 파듯 하다 보면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된다. 관련 집단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법안을 어떻게 관철할지까지 쫙 꿸 수 있다. 공무원들의 수작도 다 알게 된다. 요즘 공무원들이 제일 겁내는 건 시민단체나 언론이 아니라 경험 많은 의원 보좌관이다. 그러다보니 질이 안 좋은 보좌관은 공무원들의 카르텔에 포섭돼 같이 해 먹는 경우도 생긴다.”



-초선에서 다선까지 보좌 스타일도 다를 텐데.“어느 의원이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태해지고 누리는 것에 익숙하게 된다. 부패에 빠지기도 한다. 권력과 인간의 속성이 그렇다. 그걸 계속 경계하고 만류하고 자극해 주는 게 참모의 역할이다. 초선 때는 세상을 바꿀 것처럼 의욕을 갖고 덤빈다. 그런데 잘 안 된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더 큰 권력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 재선·3선에 당 대표, 대통령까지 도전하는 거다. 그렇게 건강한 권력욕을 참모가 옆에서 계속 자극해야 한다. 가장 경멸하는 정치인은 있는 듯 없는 듯 지역구나 관리하며 3선·4선 하는 이들이다.”



-의원-보좌관 관계에 여야 간 차이가 있나.“여당은 뽑는 과정과 일 시키는 방식이 공식적이고 관료적이다.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는 소수고 그야말로 차관급 공무원(국회의원)과 4급 공무원(보좌관) 간 관계다. 사사로운 일도 시키지 않는다. 대신 관계가 건조하다. 야당은 상대적으로 정치적 의기투합을 중시한다. 당내 계파활동도 활발해 서로 정치적 관점이 맞지 않으면 힘들어진다. 여당 의원은 정치적 판단을 보좌진과 의논하지 않지만 야당은 한다.”



-후배 보좌관들에게 충고 할 말은.“국회의원 중 3분의 1 정도는 견마지로를 바칠 만한 의원인 반면 3분의 1은 억만금을 준다 해도 그 밑에서 일할 생각조차 안 드는 형편없는 인간들이다. 가급적 견마지로를 다할 3분의 1을 찾아가라. 내가 정말 잘하고 싶어도 의원이 뭣 같으면 일하기 싫어진다.”



 



 



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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