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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기원’ 우주에서 찾아낼까 … 성공·실패 기로에 선 인류

중앙선데이 2015.10.25 00:36 450호 29면 지면보기

1 미국 하버드대학의 존 코박 등이 우주 초기 급팽창을 연구하는 데 사용한 남극의 바이셉2 망원경.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 올해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10월은 한국 과학자들에게는 마음이 편하지 않은 달이다. 자고 일어나 보면 신문에는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들이 보도되지만, 한국인은 발견할 수 없다. 올해도 한국인 수상자는 없었다. 연구 현장에서는 향후 최소한 10여 년 안에는 한국인 수상자가 없을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이 무엇일까?


[송용선의 인터스텔라] 빅뱅 이론 50주년

2015년은 과학사에서 참 특별한 해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해가 1915년이었다. 올해가 상대성이론 100주년이다. 왠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난해한 이론이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상생활에서 상대성 이론을 접하고 있다. 차에 시동을 켜고 GPS를 작동하면, 내 위치가 10m 이내로 정확하게 인공위성에서 잡힌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빠르게 움직이는 위성의 시계가 하루에 7㎲(마이크로초·micro秒, 1㎲=100만 분의 1초)만큼 느리게 간다. 그런데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중력이 조금 약한 곳에 있는 위성의 시계가 45㎲만큼 빠르게 가야 한다. 이 두 가지 효과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으므로, 인공위성의 시계는 하루에 38㎲만큼 빨리 가게 된다. 이것을 보정해 주지 않으면 인공위성은 내 차의 위치를 정확하게 결정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렇게 상대성 이론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마이클 J 폭스가 영화 ‘백 투 더 퓨처2’에서 미래로 간 날이 또한 2015년 10월 21일이었다. 영화에서 봤던 그 미래의 도시가 대부분 실현됐지만, 시카고 컵스는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고, 하늘을 나는 보드를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백 투 더 퓨처’ 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도전하고 있지만, 하늘을 나는 후버 보드로 1분 이상을 공중에 머물렀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사람의 체중을 견딜 수 있는 드론을 이용해서 실제로 비행한 실험이 성공하기도 했지만, 영화에서 보던 날렵한 보드와는 사뭇 다르다.



 

빅뱅이론이 우주 표준 모형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기여한 우주배경 복사.



우주배경복사 발견으로 빅뱅이론 인정그리고 2015년은 인류가 빅뱅(Big Bang)을 믿기 시작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빅뱅이론은 1965년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되면서 우주 표준 모형으로 받아들여졌다. 지난 8월 베트남에서는 이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우주배경복사 50주년 기념 학회가 개최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미완의 기념식이 됐다. 지난 50년간 남극과 우주 공간에서 수많은 관측사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됐지만, 여전히 생명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는 초기 급팽창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5년 우리는 생명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해답을 우주에서 찾을 수 있을지를 가르는 기로에 서 있다. 인간은 자연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관측자의 자격을 부여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자연이 우주라는 무대를 먼저 준비하고, 그것을 바라볼 인간을 객석에 초대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주어진 객석에서는 무대 전체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글에서 우주 초기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어떻게 발전돼 왔는지 소개했다. 이 글에서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소개하며 우주 초기에 대한 이야기를 갈무리하고자 한다.



 



日 JAXA, 우주 중력파 관측위성 발사 추진우주배경복사 50주년을 1년 남겨둔 2014년 4월, 50주년 행사를 완성된 기념식으로 만들 뻔 했던 연구 결과가 하버드대학에서 발표됐다. 존 코박과 동료 연구자들이 남극에 있는 바이셉2(BICEP2) 망원경으로 초기 급팽창의 증거를 발견했다는 소식이었다. 우주 거대구조의 씨앗은 중력 흔들림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이때 지진파의 횡파와 같은 중력파가 발생한다. 이 중력파는 우주배경복사에 편광현상을 남긴다. 존 코박은 이 중력파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초기 급팽창 관측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두려움은 불확실성이었다. 초기 중력파가 반드시 발견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는 것은 지난 10여 년간 그들이 직면했던 가장 큰 난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우주 초기의 신비를 밝힌다는 연구 가치에 동의했고, 그들의 외로운 도전을 지지해 줬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그들의 실험 장비에는 관측 채널이 하나밖에 없었다. 채널이 하나일 때는 우주먼지에서 기인한 편광과 우주 초기 중력파에 의한 편광현상을 구분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우주먼지가 가장 적을 것으로 예상된 특별한 지역을 선택해서 관측을 수행했다. 그들은 선택된 지역에서 관측된 편광현상이 순수하게 우주초기의 신호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관측위성 플랑크는 다채널 자료를 이용해 우주먼지 오염 여부를 조사했고, 존 코박이 발견한 편광현상 대부분이 우주 초기가 아닌 우주먼지에 의한 편광현상이었음을 밝히게 된다.



 

라이트버드 위성에 장착될 관측기기의 모습.



존 코박은 자연이 인간에게 우주 초기를 볼 수 있는 특권을 줬다고 굳게 믿고 있다. 지난 9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있었던 학회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생명의 기원을 보고싶어 했고, 미국은 중단하지 않고 그의 꿈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미국에 노벨상을 하나 더 가져오고 싶기 때문이 아니고, 우주 초기의 신비를 알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그 희망에 여전히 동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존 코박은 이번에는 다채널 방식을 선택해서 우주먼지 효과를 구분할 수 있는 새로운 장비를 남극에 건설 중이라고 설명했다. 연단에 선 그의 표정에서 도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기를 볼 수 있었다.



 

2 일본 우주항공연구 개발기구에서 우주 중력파를 관측하기 위해 2020년대 중반에 발사할 예정인 라이트버드 위성.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강력한 경쟁자가 생겼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우주 중력파를 관측할 수 있는 최적의 관측위성 라이트버드(LiteBIRD)를 발사할 계획이다. 이 관측 위성은 검출기의 정밀도를 더 향상시키는 것이 의미가 없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하늘에서 전천 탐사를 할 예정이다. 만일 이 관측위성이 급팽창의 흔적을 찾지 못한다면, 인류는 이 우주가 어떻게 기원했는지 알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으로 보면 된다. 기초과학 분야에서 선도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일본의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초기 중력파 검출 같은 불확실한 과제에도 일본인들은 그 연구 가치에 동의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만일 인간이 우주 초기 중력파를 볼 수 있는 운명이라면, 아마도 일본의 라이트버드가 그것을 관측하게 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가장 높다.



 



한국, 거대구조 관측으로 초기 우주 연구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떤 연구를 하고 있을까? 한국에는 2000년대 초부터 관측장비 개발의 외길을 걸어온 존 코박같은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관측위성 건설이라는 대형과제를 성사시킨 전설적인 일본의 연구자 같은 이도 없다. 우주배경복사 연구가 한창 진행되던 지난 십여 년 간, 한국에서는 이 분야의 전문가를 육성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분야에서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가 없다.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고 있다. 비록 우주배경복사 실험으로 우주 초기 급팽창의 흔적을 찾는 연구를 리드할 수는 없지만, 제3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 한국에 우주배경복사 연구자는 많지 않지만 우주 거대구조 전문가들은 다수 있다. 초기 요동은 중력파를 생성하기도 하지만, 초기 요동의 비대칭 확률분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것은 우주 배경복사보다는 우주 거대구조 관측에서 더 잘 관측된다. 한국에서는 이 비대칭 확률분포 관측을 통한 우주 초기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관측을 통해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기기를 설계하는 연구자와 이론·자료분석을 수행하는 연구자 사이의 긴밀한 협조가 요구된다. 추가로 관측사업이 대형화하면서 한 국가가 모든 비용을 담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제적인 협력도 필요하다. 아직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미국과의 위성 관측사업처럼 가시화되고 있는 프로젝트도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한국의 과학자들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15년 10월 노벨상의 계절, 현장의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노벨상에 대한 염원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연구에 대한 가치에 국민이 동의해 주는 것이다. 연구는 상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에게 주어진 관측자로서의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다. 작은 연구도 있고, 대형 성과로 이어질 큰 연구도 있다. 그 크기에 상관없이 결과를 공유해 줄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한국의 첫 번째 과학 분야 노벨상을 원하고 있지만, 정작 자연이라는 무대 앞에 마련된 객석은 비어 있다. 그 자리를 채울 관객이 한국에 없는 것이다.



 



송용선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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