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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분위기 바꾸는 드레퓌스의 쳄발로 선율

중앙선데이 2015.10.25 00:30 450호 31면 지면보기

프란스 브뤼헨이 지휘한 텔레만의 ‘타펠무지크’ 음반.



타펠무지크(Tafelmusik)는 말 그대로 식탁에서 듣는 음악이다. 17~8세기 유럽의 제후·부르주아가 연회를 즐길 때 전속음악가들이 연주하던 장르다. 흥을 돋우고 소화를 촉진하기 위한 음악이므로 가볍고 밝다.


[an die Musik]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

식탁음악이라고 해서 간소하지는 않았다. 유럽의 귀족들은 경쟁적으로 많은 돈을 들여 음악가를 고용하고 악기를 사 모아 큰 규모의 궁정악단을 운영했다. 악단을 책임지는 궁정악장은 작곡을 하고 악단을 훈련해 연회장에서 타펠무지크를 연주했다. 물론 궁정악단은 대관식이나 종교행사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 축전음악, 칸타타를 연주하기도 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열리는 각종 연회에서도 시장기를 참고 나팔을 불고 활을 그어야 했다.



‘서양음악의 바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쾨텐 시절에 담당한 업무도 타펠무지크 연주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바흐를 궁정악장으로 고용한 레오폴드 대공은 바흐를 아끼고 사랑했지만 그에게 궁정악장은 이웃나라 영주에게 자랑하고 싶은 악기이기도 했다. 레오폴드는 몸이 약해 칼스바트(오늘날 체코의 카를로비바리)의 온천으로 요양을 떠나곤 했는데 자신의 오디오인 바흐와 악단을 데리고 갔다. 악기를 바리바리 실은 마차와 악단은 레오폴드를 따라 한 달이 넘는 긴 여행을 했다.



칼스바트는 유명한 요양지라 유럽의 실력자들이 많이 모였다. 저녁이 되면 연회장에 모여 온천수를 마시며 그들이 데려온 악단의 연주를 차례로 즐겼다. 레오폴드는 악장 바흐를 특별히 자랑하고 싶어했다고 하니까 바흐는 유럽 최고의 건반악기 연주 기교를 보여주어야 했을 것이다. 그 무렵 칼스바트의 연주회는 유럽 최초의 여름음악 축제로 기록될 만했다고 전해진다.



타펠무지크가 어떤 음악인지 알고 싶으면 바흐와 동시대 음악가인 텔레만의 작품을 들어보면 된다. 텔레만은 1733년 ‘타펠무지크’란 제목의 기악곡집을 출판했다. 세 개의 큰 묶음으로 이루어진 18개의 실내악 작품인데 CD 넉 장을 꽉 채우는 방대한 분량이다. 세 묶음 모두 구성은 비슷해 첫 부분은 프랑스풍 서곡과 무곡들로 이루어진 관현악모음곡이다. 이어서 플루트·리코더·오보에·바이올린·바순·트럼펫 등이 사중주와 협주곡·삼중주·독주를 연주하고, 서곡과 같은 악기 구성의 총주로 마무리를 한다.



이 작품은 바흐의 ‘관현악모음곡’만큼 유명하지 않고 자주 연주되지도 않지만 매우 고급스럽다. 언젠가 아르농쿠르가 콘첸투스 무지쿠스를 지휘한 LP 한 장을 선물로 받고 ‘밥상 음악이 따로 있나…’ 하고 생각했으나 턴테이블에 올려 들어보곤 풍요롭고 격조 높은 음향에 깜작 놀랐다. 연회를 위한 작품이지만 나무랄 데 없이 잘 다듬어진 바로크 시대의 걸작이다.



현대의 우리는 식탁에 음악을 울리기 위해 음악가를 고용할 필요는 없다. 간소한 오디오와 몇 장의 음반만 있으면 유럽의 왕족보다 훨씬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할 무렵 아들은 네 살의 꼬마였다. 식사시간이 되어 TV를 끄라고 하면 아이는 음악을 틀어달라고 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연주하는 베토벤 5번 교향곡을 나직하게 울려놨더니 발바닥으로 탁탁 장단을 맞춰가며 맛있게 밥을 먹었다. 자식을 제대로 키우고 있다고 흐뭇해했다.



그런데 중고교 시절을 거치며 ‘임재범’이라는 별명을 얻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댄스동아리에 들어가 팝핀(poppin)에 빠져들더니 곧 홍대 앞 길거리 춤판을 평정해 버렸다. 평생 묵직한 클래식 음악만 들어 온 나로서는 도대체 저 녀석이 내 씨가 맞나 싶었다. 클래식도 한정된 지역에서 일정기간 흥했다가 사라진 음악인 것은 맞다. 그러나 유럽에서 200년간 문학·미술·건축 등의 예술분야와 함께 폭발적으로 분출한 음악체계는 인류역사에 유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아들도 언젠가는 거목으로 가득한 숲과 같은 그 세계를 경험하길 기대한다. 씨는 어린 시절 밥상에서 이미 뿌려놓았으니.



 

위게트 드레퓌스



사실 베토벤 교향곡 같은 뜨거운 음악은 타펠무지크로 적합하지 않다. 듣다 흥분하면 위장이 꼬이고 젓가락이 눈을 찌를 수도 있다. 아침 식탁에서 자주 듣는 음악은(Huguette Dreyfus·87) 여사가 쳄발로로 연주한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드레퓌스라야 한다. 쳄발로라는 악기는 건반을 누르면 작고 뾰족한 플렉트라(plectra)가 위로 솟으며 현을 퉁기게 되어 있다. 양털 해머가 현을 때리는 피아노와 달리 날카로운 소리를 낼 수밖에 없고, 구조상 ‘점점 세게’ ‘점점 여리게’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드레퓌스는 이 원시적인 바로크 악기로 꿈결같이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섬세하고 평온하다. 소르본 대학의 교수를 지내기도 한 그녀의 연주는 현란한 기교, 장식 따위는 없고 오로지 정확하고 지성적이다.



바흐의 프랑스모음곡은 기악 명작들을 수없이 쏟아낸 쾨텐 시절에 탄생했다. 규모가 크고 화려한 ‘영국모음곡’에 비해 여섯 곡 모두 소박하고 예쁘다. 이 프랑스모음곡을 프랑스 출신 드레퓌스 여사가 완벽한 연주로 녹음해 두었다.



가장 바람직한 식탁의 모습은 식구끼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 것이다. 밥상머리 교육도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교육이라 착각하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은 최악이다. TV를 돌아보거나 혼자서 신문을 넘기는 것도 금물이다. 최선은 힘들고 최악도 피하고 싶으면 음악을 흘려놓으면 된다. 드레퓌스의 쳄발로가 바흐를 가만가만 연주하면 목구멍까지 올라온 잔소리는 쑥 들어가고 수저의 달그락거림도 반주로 들린다. 식탁은 평화롭고 밥도 맛있다. 18세기 유럽의 왕후장상을 부러워 할 이유가 없다.



 



최정동 기자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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