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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머큐리·올브라이트도 난민이었다

중앙일보 2015.10.24 01:45 종합 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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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이 22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난민 10인’을 선정했다. 이들은 탄압을 피해 고국을 떠난 뒤 정치·문화 등 각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사진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 물리학자, 오스트리아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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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에스테판(58) 가수, 쿠바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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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 정신분석학자, 오스트리아 →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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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레네 디트리히(1901~1992) 영화배우, 독일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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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모하메드 압둘라마지드(60) 미국 수퍼모델, 소말리아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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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보 음베키(73) 전 남아공 대통령, 남아공 → 영국 → 소련→ 짐바브웨 등 → 남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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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들린 올브라이트(78) 전 미국 국무장관, 체코 → 영국 → 체코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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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1802~1885) 소설가, 프랑스→ 벨기에 →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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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1946-1991) 록그룹 ‘퀸’ 보컬, 탄자니아 →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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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올 뎅(30) NBA 선수, 수단 →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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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터키 해안에서 구조대원이 숨진 채 발견된 시리아 난민 알란 쿠르디를 옮기고 있다. 세살배기 쿠르디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유럽 정부들이 난민수용에 호의적인 정책으로 돌아섰다. [AP=뉴시스]

올해 유럽연합(EU)국가로 입국한 난민이 71만명(9월말 기준)을 넘으며 반(反) 이민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터키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3살 아기 알란 쿠르디가 살았더라면, 예멘에서 폭탄에 희생된 6살 파리드 샤키가 죽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CNN은 22일(현지시간)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10명의 난민들’을 보도했다.

‘라틴팝 여왕’ 에스테판 쿠바 난민
NBA 루올 뎅, 수단 내전 피해 탈출
남아공 대통령 음베키도 망명 경험
위고는 외국 떠돌며 『레미제라블』 써

 미국프로농구(NBA) 올스타로 2번 선정된 마이애미 히트의 루올 뎅(30)은 200만 명이 사망한 수단 내전을 피해 탈출했다.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큰 딩카족 출신인 그는 이슬람과 현지 소수민족 간의 충돌로 인해 5살 때 수단을 탈출해 이집트의 난민촌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는 난민촌에서 NBA에서 뛰었던 고향 사람 마누트 볼을 만나 농구를 배웠다. 이후 가족과 함께 정치 난민 지위를 받아 영국으로 망명한 그는 영국 농구 국가 대표까지 성장했다. NBA에서 활약하며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자선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2011년 영국 브릭스톤 지역의 5파운드 화폐에 그의 얼굴이 올랐다.

 록그룹 퀸(Queen)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1946-1991)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섬 출신이다. 인도 파시교도(페르시아계)의 후손으로 태어난 머큐리는 1964년 아랍계와 인도계를 박해하는 운동이 발생하자 이를 피해 영국으로 향했다. 그는 1970년 동료들과 함께 퀸을 결성해 당대 최고의 록그룹으로 만들며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았다.

7차례 그래미 상을 받은 글로리아 에스테판(58)은 쿠바 난민 출신이다. 수도 아바나에서 태어난 그는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이 시작되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넘어왔다. 그녀는 결혼식 축가 가수로 시작해 80~90년대 라틴팝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1억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했다. 흑인 슈퍼모델 1세대로 유명한 이만 모하메드 압둘마지드(60)도 아프리카 소말리아 출신이다.

 정치 분야에서도 난민 출신 파워엘리트가 많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78)가 대표적이다. 체코 출신인 그는 나치의 침공 이후 외교관인 아버지와 영국으로 망명했다. 전쟁이 끝나고 체코로 돌아갔지만 공산정권의 위협을 받아 미국으로 망명했다.

남아공의 대통령을 지낸 타보 음베키(73)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도와 국정을 챙긴 지도자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던 그는 20살 때 고국을 떠나 27년간 영국·소련·짐바브웨 등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1994년부터 남아공 부통령을 지냈으며 넬슨 만델라 사임 후 1999년부터 2008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그 밖에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망명한 명사들도 많다.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알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은 유대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로 원자폭탄연구인 맨해튼 계획의 기초를 만들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도 나치의 권력 장악 후 영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대 독일에서 활약한 배우 겸 가수 마를레네 디트리히(1901~1992)도 히틀러의 회유를 거절하고 미국을 택했다. 『탄식의 천사』로 유명한 그녀는 브로드웨이에서 2차례 토니상을 수상했다. 『레미제라블』의 저자 빅토르 위고(1802~1885)는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 이후 벨기에와 영국령 건지섬 등을 떠돌며 『레미제라블』 같은 대표작을 썼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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