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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칼럼] 사자상의 이빨

중앙일보 2015.10.24 00:33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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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
한양대 경제학부 4년

사자는 이빨이 없었다. 때때로 새하얀 이빨이 새로 돋기도 했지만, 이내 사라지곤 했다. 우리 학교 본관 앞에 있는 사자상 이야기다. 고시생들 때문이란다.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선배가 말해줬다. “저 이빨을 갈아 마시면 사법시험에 붙는다나 뭐라나.” 전설 같은 이야기다. 설마 했지만 이후에도 사자상은 살아있는 것처럼 이빨이 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무엇보다 어떻게 뜯어갔을지가 궁금했다. 돌로 된 이빨을 뜯어내려고 망치를 들고 올라갔을까. 사자상이 손에 닿는 높이가 아니니 사다리도 필요했을 것이다. 아마 인적이 드문 주말 새벽에 그랬으리라. 그렇게 이빨을 손에 쥐고 난 뒤에도 고민은 계속됐을 것이다. 돌조각을 어떻게 갈아 마신다는 것인가. 혼자 먹을 만큼 적은 양도 아니다. 어쩌면 여럿이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사자의 이빨을 쥔 그들은 고민을 거듭하며 돌가루를 삼켰을 것이다.

 법학은 가장 보수적인 학문 중 하나다. 인간 이성의 극단에서 사회의 질서와 규범, 보편적 가치 등의 수호자임을 자처한다. 인간 이성에 대한 굳은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데도 무엇이 법을 공부하는 그들로 하여금 이성의 담을 넘게 했을까. 무엇이 법관을 꿈꾸는 그들로 하여금 망치를 들고 이빨을 두들기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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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그들은 아마 절박했을 것이다. 젊음과 청춘은 언제 어느 때고 아름답다고 한다. 반쯤 동의한다. 그러나 젊음은 본질적으로 불안을 잉태하고 있다. 사자 이빨에 관한 전설이 꽤나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것을 보면, 어른들의 시대도 상황이 비슷했음이 분명하다. 이성의 총체인 법을 공부하는 이들이 사자상의 이빨을 뽑아 갈아 마신 건 단순히 그들이 고시생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미래가 불투명한 청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지금의 불안을 달래줄 그 무엇인가가 있다면, 돌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라도 씹고 싶다.

 얼마 전 사자상을 다시 봤다. 어찌 된 일인지 이빨이 성했다. 사법시험이 폐지된다는 소식 때문일까. 아니면 비로소 학생들이 주술의 세계를 벗어나 법이 지향하는 합리성과 이성의 세계로 돌아온 것일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 불안감이 돌이빨을 갈아 마시는 정도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져 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사자상의 이빨을 뜯어낼 의지마저 사그라지게 할 만큼 미래의 희망이 작아진 건 아닐까.

 이빨 빠진 사자는 보기에 흉했다. 그럼에도 뽑혀나간 이빨 중 일부는 절박함과 만나 기적을 이뤄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입안이 휑한 사자는 희망을 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에겐 그런 기적이 아득하다. 기적을 바라며 주술을 행할 여유도 없다. 이빨이 멀쩡한 사자상이 왠지 서글프다.

이창수 한양대 경제학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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